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사서 유 Apr 30. 2019

<어벤져스:엔드게임> 나의 오랜 영웅에게

10년간 함께한 MCU와 팬들이 서로에게 보내는 애석한 고별사

(위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누군가 말했다. 마치 10년 지기 남자친구와 헤어진 기분이라고. 영화를 보기 전에는 나는 그 말을 어림잡아 짐작만 할 뿐 도통 실감이 가지 않았다. 영화의 긴 러닝타임이 끝나고 10년을 함께한 MCU 세계관이 마침내 한 챕터 정리되는 순간, 나는 그토록 오래된 애인은 없더라도 그 말이 무슨 의미인가를 짐짓 알 수 있었다. 영화 속 은퇴한 두 주역들이 다시금 새 영화에서 나타날 것만 같은 기분, 세대교체를 앞둔 이 상황에서 떠나간 이들을 향한 그리움과 동시에 새롭게 맞이할 이들을 향한 반가움 등등. 10년 동안 마블 영화를 차근히 봐온 MCU팬으로서는 이 순간이 헤어질 것을 서로 목전에 두고는 연애를 이어가는 장거리 연애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나는 10년 지기 친구의 굿바이 인사를 어쩔 도리 없이 바라보며 나 역시 마지못해 인사를 건네야만 하는 것이다.

영화 <어벤져스 : 앤드 게임>은 전작 인피니티 워의 바로 뒷이야기를 그린다. 타노스의 핑거 스냅으로 인하여 인구의 절 반이 사라져버린 현재. 황망하기 그지없는 가운데에 우주를 정처 없이 떠돌게 된 아이언맨과 네뷸라는 언제 구조될지 모르는 채로 그저 우주선 안에서 버텨낼 뿐이다. 운 좋게도 우주를 돌던 캡틴 마블에 의해 구조된 두 사람. 이미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지쳐버린 토니와 함께 남겨진 이들의 빈자리를 공허함으로 채워온 어벤져스 멤버들은, 우연찮은 기회로 다시 한 번 더 사랑하는 이들과 인류를 구할 결정적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이 들의 앞에 놓인 절망과 환희 속에서 14000분의 1은 과연 지켜질 수 있을까.


<어벤져스 : 엔드게임>은 보기 불편한 영화이다. 이 말이 무슨 뜻인가 하면, 나처럼 그간 나온 모든 MCU 영화들에 애정을 갖고 관람한 관객이 아니고서야, 영화의 내용을 전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다. 영화는 10년간 개봉한 모든 영화들 중 몇 편만 보지 않더라도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지난 10년의 세월을 고스란히 담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명성과 입소문에 의해 덥석 이 영화를 관람한 관객들은 '난 사실 영화 그렇게 재미있는지 모르겠어.'라며 호불호가 갈린 의견을 내놓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영화 <어벤져스 : 엔드게임>은 마블팬들에게 보내는 고별인사이자 스스로에게 보내는 하나의 회고록과도 같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는 10년의 세월 동안 영화를 하나둘씩 개봉하면서, 히어로물은 킬링타임용으로 제격이라는 고정관념을 천천히 깨부숴왔다. 개인과 영웅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뇌하다가 결국 영웅으로 마감하는 아이언맨과, 마치 군인이 아닌 삶은 존재하지 않다는 듯이 살았지만 점차 개인의 삶과 자유에 대하여 골몰하게 된 캡틴 아메리카, 멜서스의 인구론을 몸소 실천해버린 신념 있는 악당 타노스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보이며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겪던 로키, 여성으로서의 삶을 포기하고 영웅으로서의 삶을 선택해야만 했던 블랙 위도우와, 미국에서의 흑인 문제를 디즈니식으로 풀어낸 블랙 팬서까지. MCU는 10년 동안 원작에서 갖고 있던 각 히어로들의 고유한 장점들을 살린 채 자신들의 왕국을 견고히 쌓아올렸다. 그러니까 단순히 킬링타임용으로 보고 잊힐 영화들이 아닌 어른이 되어서도 공감해볼 만한 영화들인 것이다. 현실에서는 도저히 불가능할 것만 같은 일들을 화려한 액션으로 해치우는 그들을 보며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인간 내면에 자리 잡은 외로움과 불안함 그리고 존재 이유에 대하여 골몰하는 영웅들을 보고 나면 먼 이들이 제법 가깝게 느껴진다. 게다가 작품을 관장하는 전체 스토리라인이 촘촘히 연결되어 실제로 대체 우주 어딘가에는 어벤져스가 활보할 것만 같은 사실감마저 주는 것이다.


이러한 마블이, 두 주역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의 은퇴를 통하여 세대교체를 알림과 동시에 벌써 10년 동안 아이에서 어른이 되어버린 관객들에게 이만 고별사를 보냈다. 백만장자로 태어나 영웅으로 삶을 마감한 아이언맨과 영웅으로 태어나 평범한 남자로 은퇴한 캡틴 아메리카의 결말은 그래서 더욱 애석하다. 세계관 내내 줄곧 대립하던 두 인물의 결말은 어느덧 서로가 서로에게 때려야 땔 수 없는 관계였음을 시인하듯 닮아있기 때문이랄까. (캡틴 아메리카는 아이언맨의 조언을 받아들여 사랑하는 연인 앞에서 평범한 삶을 살아보고 싶었노라 답했다.) 게다가 마블의 개국공신이자 MCU가 자리 잡기까지 감독과 함께 진두지휘하며 영화 안팎으로 힘을 써온 아이언맨이자 로다주의 퇴장은 팬으로서 왜인지 서글픈 마음마저 들곤 한다. 마치 나의 오랜 아이돌이 시간이 흘러 나이를 먹고 이제는 편히 쉬겠노라며 은퇴를 선언하는 기분이랄까.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아시아 팬 이벤트에서 예정에도 없는 인터뷰로 이렇게 말했다. '저도 젊었고 여러분들은 어린아이였을 수도 있었을 텐데 잘 자라주시고 저를 사랑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라고. 이 인터뷰 영상을 보는 순간 괜스레 울컥한 것은 비단 내가 마블 영화의 오랜 팬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10대 마지막에서 20대 마지막을 함께한 나의 오랜 배우의 잘 자라주어서 고맙다는 그 한마디. 그 말에 위로를 받은 나는 그의 말처럼 잘 자라났는지는 여전히 자신 없지만, 최소한 그에게 이 말만큼은 전하고 싶다. 당신 덕분에 나의 10년 역시 행복했다고.

매거진의 이전글 <500일의 썸머> 우리 모두의 썸머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