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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 유 Apr 10. 2022

영화 포스터 뒷면에 써 내려 간 홍콩을 향한 러브레터

<헤어진 이들은 홍콩에서 다시 만난다>를 읽고

영화 <라라랜드>를 미친 듯이 좋아했던 나는 결국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에 10개월 할부로 비행기 표를 끊었다. 그렇게 영화촬영지 곳곳을 돌아다닌 후에 <라라랜드가 좋아서 라라랜드로>라는 제목의 여행기를 적었다. 여기 내가 이제 겨우 대학생 새내기가 되었을 무렵 홍콩영화를 너무도 사랑한 나머지 그 영화의 면면을 찾아가고자 한 남자가 있다. 그의 홍콩영화를, 장국영을, 왕가위를 향한 사랑이 이 한 편의 책에 모두 담겼다.


영화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오래도록 함께하기를 바라는 <씨네21>의 전 편집장이자, 일요일 오전을 책임졌던 JTBC <방구석 1열>에서 영화 전문 AI로 활약한 주성철기자의 얼굴이 익숙할 것이다. 일찍이 홍콩영화를 너무도 사랑하였던 그는 장국영에 대한 에세이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장국영>을 펴냈고, 그가 출연하고 있는 유튜브 채널 무비건조에서도 종종 홍콩영화를 향한 그의 사랑을 엿볼 수 있었다. 그런 그를 실제로 만난 것은 <넷플연가>라는 넷플릭스 문화예술 커뮤니티의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홍콩영화'라는 이름의 모임이었다. 그는 우리의 모임이 마치 자신의 클래스가 된 것 같은 우려를 종종 내비쳤지만 사실 그 모임에 모인 대부분의 이들은 그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을게다.


홍콩영화를 향한 그의 애정과 사랑은 모임이 이루어지는 내내 오롯이 느낄 수 있었다. 그런 그가 펴낸 홍콩 영화 순례기인 <홍콩에 두 번째 가게 된다면>의 개정판이 나왔다. <헤어진 이들은 홍콩에서 다시 만난다>라는, <중경삼림>의 마지막 시퀀스를 떠오르게 만드는 제목으로. 구판을 쓸 당시에는 건재하였을 홍콩의 가게들이 코로나19라는 안타까운 상황을 맞이하여 문을 닫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종종 등장할 때마다, 마치 이름만 알던 옆 반 아이가 전학을 간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것만 같았다. 장국영의 열렬한 팬인 저자는 영원한 별이 된 장국영의 당시 나이와, 자신의 나이가 같아지는 해가 오기만을 바랬다는 글로 서문을 밝힌다. 그렇게 청년은 중년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어진 이들은 홍콩에서 다시 만난다> 속 중년은 청년이던 그를 반추하지만은 않는다. 글에서 홍콩과 장국영을 향한 그의 그리움은 묻어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저 호젓하지만도 않다. 추억의 장소들이 펜데믹과 세월이라는 이름으로 사라져 갔더라도 그의 글은 덤덤하게 아쉬워할 뿐이다. 만우절에 일어난 누군가의 죽음이 누구보다도 거짓말이기를 바랐을 한 청년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지속된다는 것을 알아버린 중년이 된 것처럼. 지나가버린 세월과 지워져 버린 그때의 흔적에 관하여 그는 그저 그때를 사랑했노라 이야기할 뿐이다.


누군가 홍콩영화는 10학번인 나의 시대는 아니라 말했다. <중경삼림>은 사실 씨네필지망생이라는 입장에서 치기 어린 지적 허세에 불과했다. 인스타그램에서 종종 보게 되는 피드 속 한 장면을 온전한 하나의 작품으로 마주한 순간, 그렇게 홍콩영화는 나에게 생경함에서 생동함으로 다가왔다. <헤어진 이들은 홍콩에서 다시 만난다>의 제목 중 '헤어진 이들'은 홍콩영화의 전성기를 함께한 세대와, 지나가버린 시대를 뒤늦게 만나고만 이들이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해보았다. 펭차우섬을 소개하는 글에서 그는 그곳에 방문한다면 브라이언 하일랜드의 음악을 재생하라도 아닌 '담아가라'말한다. 스무 살이 넘어서야 스마트폰이 등장한 시대를 산 이로써 노래를 담아가라는 그의 표현을 이해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그런 의도치 않은 귀여움이 그의 글 곳곳에 묻어있다.


더불어 홍콩영화를 몇 개 본 적 없는 나로서도 책 <헤어진 이들은 홍콩에서 다시 만난다>는 낯설지 않게 다가왔다. 여행지를 배경으로 한 영화의 줄거리를 저자가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거니와, 애초에 그의 책에 등장하는 홍콩영화를 모조리 다 보고 읽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책의 마지막 장까지 모두 읽은 뒤, 프롤로그를 다시 읽기를 추천하는 바이다. 당신의 기억은 금세 조작되어, 홍콩영화가 첫사랑으로 기억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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