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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 유 May 10. 2022

<다른 삶> 그때의 나는 잠시 타인이었다

몇 해 전 이민까지 결심하며 한국을 뜨고자 마음먹었을 때, 나는 분명 다른 삶에 대한 열망이 있었다. 한국에서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에게서 해방되고 싶었고 실제로 호주로 떠나 있는 1년 동안 적잖은 해방감도 맛본 것 같다. 그 후로 한국에 돌아와 그때의 삶을 묻어두고 지낸 지 4년이 지났다. 당시 서로를 기억하는 친구 D와 나는 끊임없이 호주에서의 이야기를 꺼낸다. 우리는 서로 알고 있다. 호주에서의 이야기가 끊임없이 나오는 것은, 인생의 한 순간에 지나가는 추억이 아닌 잠시나마 살아본 또 다른 삶에 대한 그리움이라고.


<다른 삶>은 작가 곽미성이 20년 넘게 프랑스에 살며 느낀 이방인으로서의 삶과, 그곳에서 만난 각기 다른 인생들에 관하여 엮은 한 편의 에세이이다. 이토록 잘 지어진 부제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강렬하게 내 뇌리에 안착한 문장 덕분에 책을 읽기 전까지 가슴이 두근거렸다. '다른 삶을 살기 위해 어떤 이는 기꺼이 이방인이 된다'라는 말이 지금 이 순간에도 머릿속에 남아 내 마음을 어지럽힌다. 그래, 그때 내가 원한 것은 단순한 삶의 일탈이 아닌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다는 열망이었다.


외국에서 단 몇 개월만이라도 거주하며 해방감을 맛보았고, 한국에 돌아와 이도 저도 아닌 중간계 그 어딘가에 위치한 외계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낀 이라면 이 책의 모든 문장이 구구절절 아로히 새겨질 것이다. 다른 문화를 온전히 수용하지도 못한 채로, 여태 살아온 문화가 낯섦을 체감하는 일. 오히려 시드니에서 살았던 1년보다 그 이후 한국에서의 삶에서 문화 차이를 실감하였다. 처음에는 이상하리만치 낯설고 이상하게 느껴졌던 자국의 문화가 서서히 익숙해지고 이도 저도 아닌 불편한 안정감을 안은 채로 삶을 다시 살아가다 보니 그때의 다른 삶은 어느덧 가슴 깊이 묻어두게 된다. 그렇게 그때의 나는 내가 아닌, 잠시 나의 몸을 빌린 채로 철저히 다르게 살아온 타인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내가 발 딛고 있는 이곳이 앞으로 내가 살아가야 할 곳임을 실감하게 된다. 그렇게 다른 삶에서 익숙한 삶으로의 회귀는 스스로에게 적극적으로 환영받지 못한 채 맞이하게 된다.


나처럼 한국에 영영 다시 돌아오지 않았더라도 20년 동안 파리에서 살고 있는 곽미성 작가의 삶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때때로 한국에 잠시 들릴 때마다 그녀가 느끼는 그 어중간한 감정, 불편하면서도 익숙한 파리와 익숙하면서도 불편한 한국 그 사이 어딘가에 놓인 작가의 심정은 겪어본 이라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이방인으로서의 삶을 쉽게 행복하려 들지 않는다. 이방인으로서의 삶을 애써 전시하지도, 한국에서의 삶이 애써 불행했으리라 단정 짓지 않는다. 그저 모두의 삶이 달랐을 뿐이라며, 공감할 뿐이다. 너와 나의 삶이 다르듯,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의 삶이 다르듯. 그때의 우리는 비록 없을지여도 지금의 우리는 남아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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