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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 유 May 17. 2022

<소설 마시는 시간> 음주 독서 입문서

그리고 연희동 책바 입성기

나는 술을 사랑한다.라고 말하기에는 다소 민망할 정도로 다양한 주종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주로 술이 주는 그 나른함을 즐긴다. 부어라 마셔라 하는 주당과는 거리가 멀고, 소주와 보드카는 입에도 대지 못하는 입맛이지만 볶음밥을 먹을 때에는 꼭 맥주를 반주로 곁들인다. 최근엔 친구와의 만남 이후 오로지 맥주가 고프다는 이유로 강남 한복판에 위치한 펍에 들어가 맥주를 마셨다. 이 정도면 선택적 술 애호가라고 보는 게 맞겠다.


하릴없이 TV를 보다가 우연히 유퀴즈에서 바를 운영하고 있다는 한 젊은 사장님의 인터뷰를 보았다. 인터뷰를 다 보고 난 후 그가 운영하는 <책 바>를 언젠가 꼭 가보리라 다짐하였고, 마침내 친구와의 약속을 뒤로하고 오픈 시간에 맞추어 책바에 입성해 보았다. 이미 책바에는 사람들이 손님들이 꽤 들어서있었고, 나를 끝으로 자율석은 곧 만석이었다. 책바에서 책을 읽는 2시간 내내 마치 어느 플레이리스트의 한 썸네일 안으로 들어온 듯한 기분이었다. 이토록 책에 어울리는 선곡과 고요함과, 칵테일이라니. 책으로 둘러싸여 있지 않아도 온통 책 속에 파묻힌 낭만이 바 곳곳에 가득했다.


책바 사장님인 정인성작가의 <소설 마시는 시간>은 술과 소설과 자신의 이야기가 조금씩 혼합된 에세이이다. 책에 등장하는 술에 관한 에세이라고 볼 수 있는데, 책바 안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2시간 동안 내리 집중해서 읽다 보면 어느새 책 장을 덮었을 정도로 편히 읽힌다. 구어체로 쓰인 이 책은 마치 책의 모든 문장이 꼭 주인장과의 대화처럼 느껴지는데, 작가가 들려주는 자신만의 도슨트 같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이 책은 꼭 책바에서 읽기를 바라는데, 책 한 권이 마치 작가가 운영하는 책바의 안내서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운이 좋다면 작가에게 직접 책에 대한 소감을 말해보는 호사도 누려볼 수 있겠다.


학교도서관 사서인 내가 한 때 도서부였던 이가 책을 읽으며 술을 즐기는 바를 운영하고 직접 작가까지 되었다는 이야기를 읽자니, 괜스레 친밀감이 생겼다. 어쩌면 그도 시끄러운 반에서 빠져나와 학교도서관에서 휴식을 취하며 사색에 잠겼을지 모를 일이다. 그렇게 모든 낭만의 시작은 도서관에서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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