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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 유 Jun 07. 2022

<지금의 나로 충분하다> 독자와의 벽을 허무는 능력

초등학생 때 즐겨 부르던 노래의 가수가 돌연 뉴욕으로 떠나 변호사가 되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물론 지금도 크게 다를 바 없겠지만 당시만 해도 연예인이 해외 변호사가 된 것이 흔치 않았고 그렇게 그녀는 한국 방송계에서 차츰 잊히는 듯 보였다. 그런 그녀가 슈가맨의 소환을 시작으로 <유 퀴즈 온 더 블록>, 그리고 신간도서와 함께 다시 한국을 찾았다. 제목만 본다면 그녀의 신간은 다른 자기계발서적 에세이와 크게 다를 바 없이 보이지만, 끝까지 책을 다 읽고 나면 왜 이 제목이었어야 하는 지를 알 수 있다. 지금의 나로 충분한 이야기는 사실, 그녀가 스스로에게 건네 온 꽤 오랜 주문이었다는 것을.


<지금의 나로 충분하다>는 저자 이소은이 뉴욕에 정착하면서 느낀 여러 가지 감정들과 고난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스스로를 다독였던 일들을 담았다. 언뜻 듣기에는 흔히 볼 수 있는 성공한 자의 에세이라고 생각하겠지만, 한 번이라도 타국살이를 해본 이라면 저자의 말에 십분 동감할 것이다. 여기도 저기도 아닌 중간 그 어디 즈음에서 부유하는 기분과, 소수인종이면서 여성으로서 느끼는 불합리함 등. 사실 저자와 같은 성향을 가진 이라면 그녀가 하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구구절절 동감이 갈 것이고, 그녀와 비슷한 성향도 아니거니와 해외생활을 해본 적 없는, 혹은 하고 싶지 않은 이라면 이해 가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완벽주의적 성향이거나 혹은 스스로 더 나은 삶을 살기를 늘 바라는 이라면 그녀의 말들에 동감을 얻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저자는 자신에게 고난이 찾아올 때마다 스스로를 지나치게 몰아붙이며 깨달았던 점 혹은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러지 말아야 했다는 지난날에 대한 후회나, 스스로에게 외운 주문들을 상기하며 아직 자신이 삶은 진행 중이라 말한다. '내가 성공하기 위해 나는 이만큼 노력했어, 그러니 당신도 할 수 있어'가 아닌 '나는 이렇게 실패도 해보았고, 이렇게 도전도 해보았지만 앞으로 이렇게 살겠어'라는 화법은 그렇게 독자와 저자의 벽을 조금씩 허문다. 자기계발서적에 관해 다소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며, 성공한 이들의 에세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염세적인 나조차도 서서히 스며들 만큼. 어쩌며 그것 또한 예술인으로서 갖는 저자의 능력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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