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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 유 Jun 14. 2022

그때도 알고 지금도 알게 되는 것들

<책 읽기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 아닌가>를 읽고

<자기만의 방>을 저술한 것으로 유명한 버지니아 울프를 한번 즈음 들어보았을 것이다. 여류작가에게 필요한 것은 글을 쓸 수 있는 자기만의 방이라는 것을 말해왔던 그녀의 산문이 최근 한 권의 책으로 나왔다. 그렇게 고전소설은 읽어보았어도 고전산문은 처음이었던 내게 그녀의 글들은 때때로 잘 쓰인 글처럼, 때로는 어려운 전공서적처럼 다가왔다.


<책 읽기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 아닌가>는 버지니아 울프가 생전 기고했던 다양한 산문들 중 12개를 뽑아 완역에 가깝도록 번역한 산문집이다. 책 제목은 그녀의 산문 중 한 구절을 붙인 것인데, 글의 내용은 주로 이러했다. 사실 책 읽기를 좋아하는 이들은 무엇을 얻겠다는 것이 아닌 그저 읽기를 사랑하는 이들이노라고. 이 산문은 책에 수록된 그녀의 다른 글에 비하여 쉽게 읽히도록 쓰인 글인데 난이도가 다소 낮은 글을 책 앞에 배치한 것이 영리한 편집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 수록된 산문을 통하여 당대 선구적인 여성주의자인 그녀의 생각을 직관적으로 엿볼 수 있었다. 당시 노동자계급이었던 여성들은 경제활동에 직접적으로 참여할 수 있었으나, 되려 중산층 여성들은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설계할 수 없었다고 한다. 또한 100년 전 영국은 여성참정권을 이제 막 허용하던 때였으니 글에서 느껴지는 그녀의 심정이 자뭇 이해가 된다. 그녀는 글에서 소설 속 주인공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에 대한 작가의 입장과, 중산층 여성들이 경제활동을 하지 못하는 것에서 오는 사회구조의 갑갑함 그리고 런던거리를 묘사한 일상적인 글들이 담겨있다. 책을 꽤 좋아하고 다양한 글을 읽는 것에 거리낌이 없는 애서가라고 생각해왔지만, 울프의 산문은 명확히 당시의 시대상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으면 이해하기 어려웠다. 어쩌면 고전 소설과 고전 산문의 차이점이 아닐까. 또한 등장하는 인물들에 대한 설명은 주석으로 채 알기가 어려우니 글마다 난이도가 제법 다르게 느껴졌다.


울프는 자신의 글에서 제인 오스틴과 브론테 자매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수록작 <『제인 에어』와 『폭풍의 언덕』>은 두 작가에 대한 존경과 예찬이 보이는데 그도 그럴 것이 오래전 활동한 여류작가들의 인생을 보자면 저절로 겸허해지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차마 빛을 보지 못하였던 여성예술인들의 작품이 시대가 흐를수록 더욱 재조명받는 것은 그 들을 향한 뒤늦은 예우가 아닐까. 100년 전 울프의 글이 지금도 많은 이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우리 속에 아직 해결되지 못한 오래된 관습을 스스로 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더불어 그녀는 앞으로 여성들이 소설과 더불어 비평과 시, 역사 분야에 진출할 것이며 그간 여성에게 허락되지 않은 여가와 자신만의 방을 마침내 갖게 되는 황금시대가 도래할 것이라 예견했다. 그녀가 말한 그 황금시대의 살고 있는 한 명의 글 쓰는 여성으로서 당시의 시대를 살아간 수많은 여류작가들에게 안타까운 감사를 보낸다. 덕분에 지금도 나는 글을 쓰고 있다고.



그래서 한번 예견해보자면, 앞으로 많은 여성들은 소설을 덜 쓰게 되겠지만 더 훌륭한 소설을 쓸 것이다. 소설 외에도 시와 비평과 역사 분야에도 진출할 것이다. 그리고 틀림없이 이는 오랫동안 여성들에게 허락되지 않았던 여가와 돈과 자기만의 방을 마침내 여성들이 갖게 되는 그 황금시대, 아마 환상적일 그 시대를 내다보는 일이기도 하다.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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