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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 유 May 09. 2019

[D+69] 한국이 그리운 순간

이따금 나의 고향이 미치도록 보고 싶을 때

한국에서 나는 혼자 있어도 괜찮은 사람이었다. 사랑하는 가족들은 종종 갑갑한 울타리처럼 느껴졌고, 오랜 친구들은 어느덧 익숙해져 새로울 것 없는 오래된 연인처럼 덤덤하였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들, 예를 들어 한국 안팎의 문제들이라던가 경력을 쌓음에도 불구하고 올라가지 않는 급여와 사서 대한 인식 부재 등등 말이다. 이런 문제가 나의 문제인지 사회의 문제인지 도통 모를 정도로 나는 우울하였고, 그 모든 문제들은 결국 '한국이 싫어서'로 귀결되곤 하였다. 그래, 사실 말하자면 내가 이곳까지 온 이유는 한국이 싫어서였다.


우습게도 나는 한국만 벗어나면 모든 것이 해결될 줄 알았다. 눈부신 해외에 살다 보면 나도 반짝이는 사람이 될 거라 생각했고, 근거 없는 숱한 기대와 희망을 안고서 한국을 출국했다. 그렇게 어느덧 70일이 지난 지금. 스스로 '그래서 너는 행복하니?'라고 묻는다면 선뜻 그렇다고 대답할 수 없었다.


종종 한국에서 정해진 기준에 내가 뒤쳐져 있다는 것을 실감할 때마다 나도 모르게 시무룩해지는 순간들이 있었다. 그 기준이라는 것은 지극히 주관적이면서도 보편적인지라, 일찍 자리 잡거나 이력서에 들어갈 대단한 이력들을 만들어놓은 친구들을 보면 나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되는가 하고 막막한 것이다. 대학 졸업 후 쉼 없이 일했음에도 불구하고 제자리에서 그저 발을 열심히 굴리고 있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 때다, 남들과 비교하는 나 자신이 그렇게 초라해 보일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러한 기준들에서 벗어난 지금. 20대 후반에 접어들었다 생각한 이 나이가 아직은 한창 젊은 나이라는 것을 몸소 실감하고 있고,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이 여전히 어렵고 설레며, 가끔 내가 있는 이 공간이 몹시 이질적인 느낌을 받을 때마다 내가 외국에 있다는 것을 실감하곤 한다. 문제는 이러한 장점과 그리움 사이에서 나는 여전히 방황하고 있고 때때로 그리움이 밀려와 장점들을 모조리 덮을 때마다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싶다는 것이다.

하우스메이트들과 Silver Spoon Bistro

사랑하는 가족들과 친구들이 보고 싶은 것을 제외하고는 한국이 그리운 순간은 몹시 단순하였다. 한글로 된 책 사이에 파묻히고 싶을 때, 새로 나온 영화를 볼 때마다 영어와 씨름하여 내가 영화를 본 건지 2시간짜리 영어 듣기 평가를 끝내고 온 것인지 알 수가 없을 때, 인터넷 속에 이쁜 옷을 3일 안에 받아보고 싶을 때, 아끼는 전자기기가 돌연 고장 났을 때, 무엇보다도 내가 그토록 싫증 내던 내 직업이 가끔 미치도록 그리울 때. 한국에서 익숙하여 당연시된 것들이 몹시 그리워지는 순간, 나는 우습게도 내가 외국에 있다는 것을 실감하였다.


문득 유럽여행에서 돌아와 친구들에게 되려 유럽 향수병에 걸려 돌아왔다고 으스대던 기억이 떠올랐다. 40일 남짓 여행하고 돌아온 주제에 향수병을 운운했다니. 낯선 도시에서 여행자가 아닌 이방인이자 노동자로 살고 나서야, 향수병이란 단어는 그 문장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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