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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 유 Apr 29. 2019

[D+38] 언니 오빠 결핍증

언니라고 불리는 것이 종종 어색해질 때

근 40일 동안 가장 외로웠던 순간을 꼽아보라면 일터에 들어온 후임과 충돌이 있던 그제였을 것이다. 그 아이의 고충을 내가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나 역시 바쁘고 힘든 주방 일에 다소 날카로워 있었고 그저 '죄송합니다'를 바라는 마음 역시 없지 않아 있던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 역시 잘 모르고 어색한 이곳에서 누군가를 가르치고 뒷수습마저 해야 한다는 사실이 못내 부담스러웠고 내 마음처럼 움직여주질 않는 동생에게 나도 모르게 버럭 짜증을 내고 말았다. 뒤이어 어색한 분위기를 수습하고자 굳이 내가 보아도 되지 않을 눈치까지 살피면서 괜스레 어쭙잖은 농담도 던지며, 스스로 나는 아직 미성숙한 인간이라는 것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일터에서 막내를 벗어난 순간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대학교를 졸업 후 나보다 거진 5살 이상 차이나는 분들과 동료로서 일해온 나는 사실 또래집단이 몹시 어색하다. 집에서는 애교 없는 무뚝뚝한 장녀일지라도 밖에만 나오면 나도 모르게 없던 애교도 만들며 언니 오빠들 사이에서 이쁨을 톡톡히 받던 이중생활을 해오던 탓일까. 나는 사실 호주에서 친구로 지내는 아이들과 나이 차이가 제법 난다는 사실이 종종 어색했다. 물론 그 친구들과 나이 차이가 꽤 나는 것도 아니며 '나는 동생들과는 대화가 통하지 않아. 난 어른인걸'류의 자기 허세에 빠져 사는 것은 아니었다. 때때로 좁고 낡은 내 시선과는 다르게 진취적이고 도전적인 동생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나 역시 더불어 어려진 기분마저 들었고, '언니도 아직 어리잖아요'를 들으면 아직 20대 중반이라는 사실에 안도했다. 물론 때때로 공유하곤 하는 대학생활에 다소 거리감이 느껴졌지만.


다만 스스로 언니 오빠 결핍증에 걸린 것 같다며 진단을 내린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었다. 때로는 '나 너무 힘들어요'를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 그 들보다 어리다는 이유로 마음껏 징징대 볼 수 있다는 것.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어떠한 조언을 기대하게 되고 굳이 조언이 아닐지라도 한번 즈음 그런 경험을 갖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말해줄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 그래서 사실 말하자면 집에서는 도저히 못 부리겠는 투정들을 밖에서나마 부려볼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 말이다.

침대이자 작업실

여전히 체력이 부족해 몸이 일의 강도를 따라가질 못하는 요즘. 어제 입은 화상이 빨갛게 익은 것을 보며 못내 서럽고, 손톱에 든 피멍이 유달리 못생겨 보이며 도무지 단장을 하고 밖에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아 하나뿐인 휴일을 오늘도 집에서 보내고 말았다. 출근시간에 똑같이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일어나기 싫어 침대에서 한 시간을 멍하니 천장만 보다가 하릴없이 남의 SNS를 염탐하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내가 그토록 외치는 '외로워'가 굳이 애인의 부재는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


결국 이른 아침부터 카페 학원에서 만난 언니들, 동문 대학 언니 오빠들, 그리고 친애하는 나의 동료 사서쌤들에게 보고 싶다며 문자를 보냈다. '나 힘들어요'를 마음껏 징징대고 싶으면서도 자칫 이 나이 먹고 그거 하나에 힘들어할까를 더불어 걱정하고 마는 것. 그럴 때마다 '어려서 그렇지 뭐'라는 말이 얼마나 유용한 방패였는지를 새삼 실감하곤 한다. 문득 5년 전에 실수를 저질러놓고 눈물바람으로 일터를 돌아다니자 동료 사서쌤께서 '이 나이에 울면 더 욕먹어요, 어릴 때 한번 즈음은 울어도 돼.'가 떠올랐다. 그래, 그 시절의 그분 역시 지금의 나와 같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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