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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 유 Aug 11. 2022

불완전한 한국인의 완전한 한국적인 치유법

<H마트에서 울다>를 읽고

지난여름 내 친구가 자신의 친구 어머님의 장례식장에 다녀왔다고 말했다. 부모님을 암으로 여의는 것은 주변에 흔히 볼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여긴 내게는 그 사실이 적잖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8년 전 같이 일했던 우리 과 옆 팀 팀장님이 갑작스럽게 암으로 돌아가실 때에도 그분의 아들이 초등학생인걸 알았지만 그저 그들이 운이 좋지 않아 겪는 불행이라고만 여겼다. 이후 몇 년 뒤 근무했던 곳의 직장동료가 나보다 고작 대여섯 살이 더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를 여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도 원래 지병을 앓으셨구나라는 생각으로 짐짓 넘겨짚었다.


그러나 이번엔 나와 동갑인 사람이 겪고 있는 일이라 생각하니 별안간 공포가 밀려왔다. 부모님을 잃고 싶지 않은 마음에 나는 직접적으로 이렇다더라는 이야기를 전하며 두 분께 종합검진을 꼭 받으시라 당부했다. 다행히 부모님 모두 몸에 별다른 이상은 없으셨다. 그때 나는 그분들이 이 세상에 없을지도 모른다는 실존적인 불안을 잠시나마 느꼈던 것 같다.


지난 2022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에서 재패니즈 브렉퍼스트의 공연을 보았을 때, 나는 <H마트에서 울다>를 이번 우리도서관 도서구입 목록에 넣었음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보컬리스트인 것을 그제서야 알았다. 친구가 미리 알려주었지만 여러 가지 일이 곂쳐 챙겨볼 여력이 없었고 그나마 내가 그 책에 대해 어렴풋이 알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해야 했다. 그룹의 보컬이자 프론트맨인 미셸 자우너는 'For 엄마'라며  말한 뒤 <The Body Is a Blade>를 부르며 눈시울을 붉혔고 공연 중 울음이 터진 듯했다. 무대 뒤 전광판으로는 그녀의 어머니가 젊었을 적의 사진이 재생되고 있었고 알고 보니 이들의 앨범에는 어머님의 사진이 쓰였다고 한다. 책을 읽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공연장에서 울음을 터트리는 그녀를 보자 나와 내 친구도 덩달아 눈시울이 붉어졌다. 엄마의 나라에서 엄마를 추억하며 만든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철저한 타인이 보아도 감정이 휘몰아치는 일임이 분명했다.


<H마트에서 울다>는 미셸 자우너가 엄마가 암 선고를 받으시기 전과 후 그 모든 이야기들을 덤덤하게 풀어낸 회고록이다. 유대계 미국인 남성과 한국인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그녀는 1살에 이민을 떠나 미국인으로 자랐다. 엄마가 내 곁에 없어도 여전히 나는 한국인일까라며 자문하는 그녀의 글들은 놀랍게도 한국으로 점철되어있다. 그녀와 어머니 사이에는 이민 1세대와 1.5세대라는 특수성으로 인해 문화적, 세대적 차이가 존재했음에도 그녀는 분명 어머니의 유산이었다. 그녀가 한 때 억압적으로 느꼈던, 결코 이해할 수도 없고 도리어 벗어나고 싶었던 엄마의 어느 부분은 모두 한국적이었고, 그 한국적인 것들은 도리어 엄마가 세상에서 사라지고 난 뒤 그녀를 떠올릴 수 있도록 하는 가느라단 실낱처럼 미셸에게 남았다. 마치 저자는 엄마가 자신에게 숨겨놓은 한국적인 것들을 음식이라는 매개를 통하여 끊임없이 상기시키려 애쓰는 것처럼 보인다. 엄마가 곁에 없어도 여전히 한국인일 수 있도록.


저자가 회고하는 엄마의 특징들은 놀랍도록 일부분 우리엄마와 닮아있었다. 아마 한국에서 나고자란 50대의 어머니를 둔 이 들이라면 한번 즈음은 공감할만한 한국엄마들의 특징일 것이다. 자식이 다치면 다정한 말로 아이를 들쳐업고 위로하며 병원부터 데려가는 서구권의 다른 엄마들과는 다르게 미셸의 엄마는 그녀가 다칠 땐 고함을 질렀다. 어릴 때 그녀는 이러한 엄마의 점들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나이가 들어 엄마가 그만큼이나 자신을 사랑했기에 함께 느끼는 고통이었음을 알게 된다. 어느 부분은 결코 엄마를 이해할 수 없으면서, 집을 벗어나 잠시 서로에게 떨어져 시간을 갖은 뒤 속에 쌓인 응어리가 해결되는 것, 그리고 나이를 먹을수록 엄마를 이해하게 되는 것까지 어쩌면 이 일련의 서사는 모녀관계라면 쉽게 보이는 수순처럼 보인다. 그렇기에 이 책은 결코 보편적이지 않으면서도 보편적이다.


미셸의 글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외국인의 시선으로 한국의 문화와 음식을 설명한 것이 꽤 생경하게 느껴진다. 애당초 독자가 미국인임을 가늠해서인지 책 속에 등장한 음식들을 마치 우리가 외국음식을 설명하듯 적어놨는데 그것이 어색하면서도 놀랍도록 향토적이다. 밥에 미친 한국인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밥심으로 살고 식사로 삶의 안부를 묻는 한국의 면면이 글에 녹아있다. 어쩌면 그것은 미셸이 결코 잃고 싶지 않은 엄마의 남은 일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 <H마트에서 울다>에서 미셸은 엄마를 엄마로서가 아닌 한 인간으로 반추한다. 자애로운 어머니가 아닌 사랑스러운 어머니로서 한 객체로 기억하고자 하는 그녀의 노력은 그간 엄마께 저질렀던 자신의 불온함에 대한 속죄이자 엄마를 한 명의 인간으로서 복원하고픈 그녀만의 애도이기도 하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상실과 그가 남겨준 유산을 되짚어 보는 젊은 예술가의 성장은 그렇게 독자에게 깊은 파동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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