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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 유 Jul 30. 2019

[D+87] 유키와 나의 울룰루

일본인 룸메이트와 일본 영화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를 보다


중학교 시절 처음으로 산 연애소설이 바로 이 영화의 원작이었다. 당시에는 제목이 낭만적이라는 이유만으로 책상 서랍에 고이 모셔두며 읽곤 하였는데, 결국 다 읽지 못하고 책등이 너덜너덜해져 버리고 말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떠나간 사람이 남기고 간 예우와 미치도록 순수했던 첫사랑의 잔열을 고작 중학생인 내가 이해할 리 만무했다.


그 책과는 무관하게 책을 원작으로 한 영화의 O.S.T였던 Hirai Ken의 '눈을 감고'를 퍽 좋아했었다. 가수 정재욱이 '가만히 눈을 감고'라는 제목으로 리메이크되었던 이 곡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삽입된 주제곡인데, 곡의 하이라이트인 'I wish forever'이란 가사에 왠지 모르게 가슴이 뭉클해졌다. 어느덧 시간은 흘러 좋아하던 곡이 쌓일수록 그 곡은 차츰 잊혀갔고, 그 곡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것은 그로부터 거진 5~6년이 지난 최근이었다.


일본인 룸메이트인 유키와 나는 서로 음악 취향이 비슷하여 종종 유키의 음악을 같이 따라 부르곤 하였는데, 유키가 흥얼거리는 노래가 화요비의 '당신과의 키스를 세어보아요'인 것을 듣곤 (알고 보니 그 곡의 원곡 가수는 일본인이었다) Hirai ken의 눈을 감고를 떠올린 나는 유키에게 그 노래의 한 소절을 불러주게 된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신기하게도 다른 나라였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시대에 유행했던 노래들에 대해 이야기하였고, 그날 우리는 Hirai Ken의 눈을 감고를 적어도 5번은 넘게 들으며 흥얼거렸다.


그리곤 며칠 후 우리는 그 곡이 주제곡으로 쓰인 영화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를 함께 보았다. 어릴 적 이해할 수 없었던 주인공들의 감정은 10년이 지난 지금 후에야 조금은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 두 주인공이 함께 가기로 약속한 그 '세상의 중심'이 호주 울룰루라는 것에 새삼 반가운 마음마저 들었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이 영화를 본 것에 대해 감사한 마음마저 들었고, 유키는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의 배경인 킹스 캐니언을 먼저 다녀왔다는 말에 나 역시 울룰루를 꼭 한 번 방문해보고 싶다는 마음마저 들었다. 우리는 그렇게 영화의 엔딩크레딧이 다 올라가기 전까지 누구 하나 먼저 일어날 수 없었다.


10년 전 그저 제목이 좋아 산 연애소설과 그 연애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주제곡. 그리고, 그 곡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영화를 볼 수 있는 일본인 친구가 생긴 것과 세상의 중심이 위치한 나라에 살고 있는 것까지. 어쩌면 이 모든 것들이 나를 이곳에서 살게 하는 이유는 아니었을까. 긴 유럽여행을 마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유럽 여행을 다시 갈 수 있다는 상상만으로 행복하던 그때처럼, 나 역시 굳이 먼 비행을 하지 않아도 세상의 중심에 도착할 수 있다는 사실에 잠시 행복해졌다. 그 들이 그토록 원했던 세상의 중심과 같은 땅에 발을 딛고 살고 있다는 상상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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