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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 유 Sep 26. 2019

[D+101]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

주말에 Rocks Market을 탐방하다

시드니에서 생활한 지 무려 100일이 지났다. 그간 나에게 있어 100일이란 남자친구와 우리의 연애를 더욱 돈독히 하자며 보내는 일종의 약속뿐이었는데. 그 누구도 없이 혼자 낯선 외국으로 건너와 100일이라는 시간을 보낸 나에게 괜스레 어깨를 토닥여주고픈 마음마저 들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나는 도망치지 않고 이곳에 꿋꿋이 발을 딛고 서 있노라고. 비록 여전히 외로움과 설렘 그 어딘가 즈음에서 방황하고 있을지라도.


100일 동안의 시드니 생활을 간추려보자면, 나는 비행기에서 만난 소중한 동생인 지안이와 무려 동거인 생활을 한 데다가 한국에서부터 알고 지낸 감사한 인연들 덕에 그럭저럭 외롭지 않게 견뎌낼 수 있었다. 처음 시드니에 도착하여 집을 알아볼 때의 막막함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마치 남양주와도 같이 한적한 동네에 방을 빌려 살고 있으며, 우습게도 '나는 반드시 호주인과 일할 거야'라는 다짐을 뒤로하곤 얼떨결에 일식당 주방보조로 들어와 한껏 튀김 냄새를 풍기며 하루를 마친다. 낯선 일터는 어느새 나에게 익숙한 장소가 되었고(그럼에도 여전히 일은 힘들다), 결코 지루하지 않을 것 같았던 일상 이곳 역시 차츰 지루해져 갔다.


한국에 있을 당시 나는 집순이 속했다. 주말 중 하루는 온전히 집에서 보내야 비로소 충전이 되는 류의 사람이었고, 주말 내내 외출이라도 하는 주에는 그다음 주가 몹시 힘들어 견딜 수 없었다.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는 오후에도 그저 '날이 좋다'라며 생각할 뿐, 그 햇살 아래로 뛰어들어가고 싶은 충동은 느끼지 못하는 전형적인 집순이었달까. 아니나 다를까, 나는 시드니에 와서도 한동안 그 집순이 성격을 버리지 못하여 무려 3주간은 휴일에 집에만 있던 적도 있었다.


그런 내가 요즘 들어 햇살이 내리쬐는 일요일에는 귀찮음을 훌훌 털고 한껏 단장 후 집 밖으로 탈출하는 일이 잦아졌다. 주 하루뿐인 휴일을 집에서 보내기에는 내가 이곳에 있는 시간이 너무 아깝게 느껴졌고, 한껏 단장 후 집 밖으로 나가 연신 사진을 찍으며 새로운 풍경을 담아내자 오히려 집에 있을 때보다 한결 기분이 산뜻했다. 주중에는 도통 느낄 수 없던 외국살이를 주말에야 비로소 몰아 체감하는 기분이랄까. 시드니에 지낼수록 영주권을 얻겠다는 목표의식 역시 희미해지자 되려 이곳에 있는 하루하루가 더욱 아깝게 느껴졌다. 100일이라는 숫자를 눈으로 보았을 때,  '100일 밖에' 대신 '100일이나'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절로 스쳐가는 것이다.

시티로 향하는 343버스 안
The Rocks 가는 길

                          

그러한 연유로 이 날도 평소 벼르기만 했던 록스 마켓을 찾았다. The Rocks는 영국에서 온 이주민이 최초로 정착한 역사 때문인지 마치 유럽의 분위기와도 비슷하였는데, 위로 길게 뻗은 언덕 밑으로는 서큘러 퀘이가 한눈에 보였고, 그 위 쪽으로는 작은 부스들이 줄지어 서있어 마켓의 시작을 알렸다. 나는 그 광경이 너무도 예쁜 나머지 마켓 입구에서 한참을 서성거리다가 이내 올라갔는데, 그 순간 나는 내가 내일 다시 출근해야 하는 생활자임을 잠시 잊고 이쁜 옷에 가방을 멘 여행자로 온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언덕 위쪽으로 조금만 더 올라가다 보니 시계탑을 기준으로 골목길을 통과하자 다른 부스들도 줄지어 보였는데 마켓 입구보다 더욱 북적거렸던 것이 마치 재래시장에 온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길거리 공연으로 마켓 안에는 늘 음악이 울러 펴졌고 관광객들 사이에서 나는 오늘 처음 시드니에 도착한 사람처럼 오랜만에 설레어 연신 눈으로, 사진으로 풍경을 담고자 애썼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가 배가 고파진 나는 푸드 부스에서 음식을 산 후 간이 테이블에 앉았는데, 먼저 친근하게 말을 걸어주던 앞에 앉은 독일인 언니에게 용기를 내어 말을 걸었다. 아들이 입원한 보스 대신에 시드니에 출장을 온 그녀는 서른 살의 나이로 뮌헨에서 거주 중이었는데, 그녀와 이야기를 하면서 나는 새삼 사람 사는 것은 다 비슷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처음 외국인과 이야기했을 당시 나에게 있어 외국인은 뭐랄까, 나와는 가치관과 생각 내지는 삶의 방향 등이 크게 다른 사람들일 것이라 예측하곤 했었는데 실제로 외국인들과 이야기를 하는 빈도가 잦을수록 나는 그들에게서 쉽게 공통점을 찾을 수 있었다. 이를테면 독일인 언니에게 여기선 맥주를 살 때 늘 여권을 검사하는 것이 불편하다는 이야기를 하자 서른이 넘으면 오히려 고마울 것이란 우스갯소리부터, 나이에 비해 어려 보인다고 칭찬하자 서른을 기점으로 몸에 변화가 온다는 말까지 말이다.


뮌헨이 생각보다 작은 도시라는 말에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고, 한국을 한 번도 가보지 않아 어디가 좋은지 묻는 언니에게 나는 이왕이면 큰 도시보다는 바닷가 같은 시골을 추천한다고 말했다. 재작년 다녀온 유럽여행에서 프랑크푸르트보다 뉘른베르크가 더 아름다웠다는 말에 언니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상업도시는 주로 매력이 없다는 말로 답하였고, 우리는 그렇게 시골과 도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헤어졌다. 새로운 사람과 서슴없이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의 나라에 대해 주고받는 것. 그 일련의 과정들이 내가 외국에 있다는 것을 비로소 실감하게 만드는 순간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는 때때로 외롭다. 어느 날은 미치도록 시드니가 사랑스럽다가도 원망스럽고, 어느 날은 미치도록 한국이 그리우면서도 돌아갈 생각에 마음부터 내려앉는다. 한국을 떠나면 무엇이던 잘 풀릴 것이라는 희망찬 포부는 점점 도대체 한국에서 이룬 모든 것을 내던지고 이곳에 영주권 하나를 따기 위해 아등바등 살아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 의구심이 들다가도, 호주에서만 누릴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하다 보면 나 역시 저절로 고개를 끄덕이고 마는 것이다. 어쩌면 나는 1년여간의 생활이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 올라탔을 때, 이 곳에서 못다 한 것들이 뒤늦게 떠올라 후회로 남는 것이 몸서리치게 두려운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나는, 이곳에서의 삶이 언제나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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