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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 유 Dec 05. 2022

<올빼미> 보이지 않거나 보려 하지 않거나

미디어에서 주로 익숙하게 보아온 시각장애는 주로 완전한 실명이었다. 김하늘배우가 주연한 영화 <블라인드>와 같이 극 중 주인공들은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핸디캡을 지닌 채 시련을 맞이하게 되고, 관객들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주인공과 악역 간의 사투를 바라본다. 영화 <올빼미>는 이러한 캐릭터의 특수성일부만을 차용함으로써 국내에서 최초로 주맹증을 앓고 있는 주인공을 전면에 내세웠다. 조선왕조 내 독살의 의심을 받은 왕자 중 가장 유력한 가설이라고 볼 수 있는 소현세자 독살설과 몇몇 역사적 사실을 융합하여 시대적·공간적 특성을 잘 살려낸 웰메이드 궁중스릴러를 만들어냈다. 그렇게 왕과 천민이라는 하늘과 땅 같은 위계는 어느새 보이지 않지만 보이는 이와 보이지만 보이지 않은 이로 분하여 관객을 끌어들인다.

맹인 침술사인 경수는 우연히 어의인 이형익에 눈에 들어 궁궐에 입성하게 된다. 맹인이지만 완전한 실명은 아닌 경수는 몸이 아픈 동생의 약값을 대기 위하여 밤에는 어렴풋이나마 보이는 주맹증을 숨긴 채 궁궐생활을 이어나간다. 소현세자의 병환이 심해지던 어느 날, 촛대에 불이 꺼지는 바람에 잠시나마 볼 수 있던 경수는 눈앞에서 독침으로 소현세자를 살해는 장면을 목격하고 만다. 자신이 주맹증임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되려 확대경을 선물로 하사한 은혜를 베푼 소현세자가 살해되는 과정을 목도하고만 경수는 그렇게 진실을 알고 있는 유일한 목격자가 된다.


영화 <올빼미>는 실록에 적힌 소현세자의 독살에 착안하여 주맹증을 앓고 있는 유일한 목격자인 주인공이 진실을 파헤치는 과정을 그린다. 관객은 소현세자를 독살한 범인이 누구인가를 어렴풋이 예측하지만, 막상 극의 배후가 밝혀지자 예상치 못한 반전처럼 느낀다. 영화의 초중반까지는 이처럼 유일한 목격자인 주인공이 진실에 다가가는 과정을 그린 것처럼 하지만, 배후가 밝혀진 영화 후반부에서의 이야기는 전혀 다른 국면을 맞이한다. 역사적 견해가 이미 스포일러이지만 주인공은 몇 번의 위기를 이겨냈고, 영리하며, 주인공을 믿고 일을 도모하는 인물의 권력은 왕 못지않기 때문이다. 관객으로 하여금 주인공이 거대한 고난을 이겨내고 해결해내는 과정처럼 그리고 있지만 종국에 가서는 이야기에는 어떠한 해피엔딩도 없음을 깨닫게 만든다. 애초에 이 영화에서는 관객이 예상하는 바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 <올빼미>에서는 다양한 대립구도가 나타나 있지만 이들은 어딘가 혼재되어 있다. 정안인과 맹인이 등장하지만 정안인은 보지 못하는 것을 맹인은 알고 있다. 심지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정안인들은 맹인 앞에서 서슴없이 부정을 저지른다. 신체적으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서 출발한 이 영화는 조금 추상적인 '진실'과 '정의'를 기준으로 정안인과 맹인을 분류한다. 주인공이 지난한 과정을 겪고 드디어 고난에 빠트린 장소를 벗어났는데도 전혀 시원치 않다. 이미 관객은 진실이 무엇인지 알기 때문이다. 이유 때문인지 구태여 다시 소굴로 돌아간 주인공의 선택은 영화의 개연성을 조금 포기하되, 어떤 교훈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눈을 감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하여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공조2: 인터내셔날> 때문인지 혹은 출연한 예능프로그램의 색채 때문인지 친근하고도 웃음 유발 캐릭터로 더욱 익숙한 유해진배우는 편집증적이고 정신적으로 결핍되어 있는 인조를 누구보다도 잘 소화해내었다. 낮과 밤에 따라서 동공의 차이를 섬세하게 표현한 류준열배우의 호연도 돋보인다. 러닝타임 내내 숨 가쁘게 극이 진행되지만 곳곳에 등장하는 숨통을 트일만한 장면들 덕분에 못 따라갈 정도는 아니다. 이론적으로는 말이 안 되는 부분이 분명 존재하지만(특히 결말에 치닫을수록) 각본의 허점이라기보다는 메시지를 조금 더 효과적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선택처럼 보인다. 오랜만에 나타난 반가운 수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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