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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 유 Jan 20. 2023

미완된 행복과 그 조각을 안고 사는 삶에 대해

2022 영화의 전당 영화감상문 공모 : 라라랜드

어떤 영화를 미친 듯이 좋아하여 기어코 영화촬영지까지 모두 가본 적이 있는가. 무려 12시간이 넘는 비행 끝에 영화 속에서 보았던 장소들을 내 눈으로 담았을 때의 희열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나에겐 그렇게 시간과 돈과 마음을 모두 쏟아가며 사랑하는 영화가 있는데, 바로 뮤지컬영화의 붐을 일으켰던 <라라랜드>이다. 외롭고, 막막하고, 삶이 고단하다고 느낄 때 심지어 온전한 해피엔딩도 아닌 그 영화를 나는 몇 번이고도 다시 보았다. 20대에는 이 영화를 이토록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 나 스스로도 미처 알지 못했지만 30대에 도래하고 보니, 이 영화를 내가 왜 그토록 사랑하였는지를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나는 어쩌면 마음속으로는, 미완의 행복이어도 그것 역시 삶이라는 것을 누군가 말해주기를 기다려왔는지도 모른다.


영화 <라라랜드>는 할리우드가 위치한 LA를 배경으로, 정통재즈를 고집하는 변변치 못한 살림의 재즈피아니스트 세바스찬과 배우지망생인 미아의 찬란한 청춘과 사랑을 그린 뮤지컬영화이다. 그러나 이 영화가 사실은 사랑이야기라는 탈을 쓴 예술과 삶에 대한 영화라는 것을 영화의 막이 오른 뒤에야 알 수 있는데, 많은 관객이 바로 이 지점에서 영화에 대한 호불호를 느끼는 것처럼 보였다. 누군가는 꽉 막힌 해피엔딩이 아니라는 것에 원통해했고, 누군가는 적당히 현실적이어서 오히려 더욱 감동적이었다고 말했으며 뮤지컬영화를 싫어하는 이들은 대체로 이 영화에 대해 불호를 택했다. 게다가 미아가 처음 교제하던 남자친구를 뒤로하고 세바스찬을 만나는 과정에서 불쾌감을 느끼는 이들도 여럿 있어 보였고 누군가에게는 인생영화이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도대체 왜 인기가 있는지 모르겠다’라는 양극단의 평을 받는 영화 중 하나였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 이 영화는 처음부터 극 중 인물들에게 동화되어 쉽게 빠져나올 수 없던 작품이었다. 아마 이토록 이 영화를 좋아하는 배경에는 어린시절부터 작가를 꿈꿔왔으나, 매번 공모전에서 탈락하며 과연 내가 책을 출판하고 작가로서 성공할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감을 품던 나의 개인적인 서사 때문일 것이다. 사실 1차원적으로 본다면 이러한 서사 때문이 맞을 수도 있겠으나 굳이 작가로서의 꿈을 떠나서 매우 불안정하고 불안하며 또 스스로도 돌이켜 생각해보니 인생에서 매우 이상한 시기였던 20대 중후반의 나는 이 영화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각자가 쫓던 꿈을 결국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냈으나, 그 시절 미처 다 지키지 못한 그들의 사랑은 사실 사랑이라기보다는 이미 어쩔 수 없이 지나가 버린 그들의 청춘일 것이다. 마음 한구석으로는 나도 그러한 감정을 느껴봐도 좋으니 꿈을 이루기를 바랐던 것 같고, 다른 한 편으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인생에 있어 꽉 막힌 행복은 없다는 것이 나를 위로하게 했다. 이 영화에서 이루어지지 못한 것은 그 둘의 사랑이 아니라, 미처 추스르지 못하고 흘러가 버린 그 들의 미성숙했던 날들일 테니.


그토록 사랑하는 이 영화를 30대가 되어 경제적으로 조금의 안정을 찾은 뒤 다시 떠올리게 되자, 또 다른 방식으로 나에게 위로를 건넸다. 여전히 불안하고 어디로 흘러갈지 모르는 삶일지여도, 꿈을 실현한 서로를 위해 옅은 미소를 띠던 둘처럼 나도 나 스스로에게 그러한 미소를 띠는 어른이 되어야겠다는. 비록 어린 시절 꿈꾸던 어른이 되지 못한 나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대하던 영화찰영지를 홀로 찾아올 만큼 성장하였노라고. 비록 여전히 나의 삶은 미완일이지어도, 나는 앞으로도 살아갈 거라고. 미아의 찰나와도 같던 재회 끝에 미처 이루지 못한 만약에를 상상하다 다시 건반을 치고 현실을 살아가는 세바스찬처럼. 그리고 자신이 그를 위해 지은 이름으로 운영되는 가게의 문밖을 나가기 전, 세바스찬에게 찬란했던 서로에 대한 애정의 미소를 보내던 미아처럼.


실제로 LA로 가서 영화 <라라랜드>의 수많은 촬영지를 가보았지만, 그중 몇 번이고 내 머릿속에서 잊혀지지 않았던 곳은 바로 Thomas Suriya라는 화가가 그린 ‘You Are The star’라는 이름의 벽화였다. 미아가 세바스찬을 처음 만나게 되는 스모크하우스 레스토랑의 입구 옆에 있었던 바로 그 벽화. 실제로 벽화의 위치와 스모크하우스의 위치는 달랐지만, 감독이 왜 굳이 이 벽화를 두 사람의 첫 만남에 활용하였는지는 별도의 코멘터리를 듣지 않더라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할리우드의 스타들이, 무대에 오른 스타인 ‘나’를 바라본다는 설정의 이 그림은 꿈을 좇는 두 사람의 현실을 대비한 그림이자, 꿈을 이룬 그들의 복선일 테니.


아직도 삶이 막막할 때마다 나는 그때 찍었던 벽화 사진을 들여다본다. 거대한 그 벽화에 압도되어 마치 내가 그 순간만큼은 스타가 된 것 같이 느꼈던 순간, 나는 분명 행복했고 스스로가 대견했으니. 영화 <라라랜드>의 결말을 누군가는 새드엔딩이라고 말하겠지만, 나는 그 누구보다도 영리하고도 필수불가결한 선택이었노라 믿는다. 이 영화의 장르는 판타지가 아니기 때문에. 이 영화의 장르는, 판타지가 아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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