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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 유 Feb 04. 2023

<바빌론> 성스럽고 타락한 도시를 비유한 아름다운 애증

나는 아직도 <라라랜드>의 첫 오프닝 시퀀스를 잊지 못한다. 경적소리와 함께 시작된 경쾌한 뮤지컬 음악과 화려한 춤사위 그리고 LA도로 한복판을 비추는 따사로운 햇살까지. 영화 <라라랜드>는 표면적으로는 남녀의 사랑이야기를 그렸으나 감독이 사랑한 주체는 청춘 햇살이 가득한 도시 LA였다. 그 영화에 미쳐 이윽고 실제로 가볼 수 있는 영화촬영지를 샅샅이 돌고 오자, 영화 <라라랜드>는 감독이 LA라는 도시의 애정이 없이는 결코 만들 수 없는 영화임을 실감하였다.


영화 <바빌론>도 어찌 보면 <라라랜드>에 이은, 감독의 두 번째 사랑고백일 것이다. <라라랜드>가 실패와 좌절을 일삼아야 하는 청춘을 그렸으나 실은 감독이 사랑하는 도시 LA에 대한 경쾌한 찬양과도 같았다면, 영화 <바빌론>은 한 개인의 흥망성쇠 기저에 헐리우드에 대한 감독의 애증이 가득 담겼다. 중요한 것은 이 영화는 애정어린 시선으로 LA를 그려냈던 전작과는 달리 애증으로 범벅된 헐리우드에 대한 감독의 헌사라는 것이다. 이 영화를 두고 한 기자는 헐리우드를 향해 보내는 데이미언 셔젤 감독의 러브레터이자, 헤이트레터라 칭했다([리뷰] '바빌론', 영화&할리우드에 쏟아내는 애증 < 영화 < 문화 < 기사본문 - 문화뉴스 (mhns.co.kr)). 이 영화를 이토록 적합하게 표한한 문장을 아직까지 발견하지 못했다.

할리우드 인사가 모인 유명 파티에 동원된 코끼리를 운반하는 한 남자 매니 토레스(디에고 칼바). 온갖 잡심부름을 위해 고용된 그이기에 동료와 함께 코끼리의 똥까지 받아내며 난잡한 파티장에 도착한다. 짐승처럼 마약과 섹스가 판을 치는 그곳에 유명배우 잭 콘레드(브래드 피트)도 도착하게 되고, 유명인들의 파티에 참석하기 위하여 넬리 라로이(마고 로비) 역시 경비와 실랑이를 벌인다. 그런 그녀를 흥미롭게 보던 매니는 넬리를 파티에 참석할 수 있도록 도와주게 되고, 단숨에 파티의 중심에 선 넬리는 영화관계자의 눈에 띄어 조연으로 헐리우드에 입성하게 된다.


영화 <바빌론>은 이동진기자의 표현처럼 쉴 새 없이 질주하는 영화이다. 실제로 3시간이란 긴 러닝타임 동안에 영화는 잠시라도 관객이 다른 생각을 할 수 도록 빈틈을 쉽게 허용하지 않는다. 영화 속에서는 총 세명을 주인공이라 볼 수 있는데 이미 유명배우인 잭, 각광받는 신인이 된 넬리, 잭의 심부름을 도우며 아직 지망생에 가까운 매니가 그 들이다. 데이미언 셔젤 감독은 이동진기자와의 인터뷰를 통하여 실제 배우와 극 중 인물들의 인지도에 차이를 두지 않았다고 하였다. 이러한 연유 덕분인지 관객은 극초반 디에고 칼바에 이입되어 이토록 아름답고 추접스러운 헐리우드를 그저 입을 벌린 채 바라보게 된다.


더불어 단순히 무성에서 유성으로 넘어가는 것뿐만 아니라 배우와 영화를 향한 대중의 인식 및 영화찰영 현장의 변화를 시간순으로 보여주기에, 영화사에 대한 지식이 없을지어도 헐리우드 역사의 흐름을 자연스레 체득하도록 만든다. 그렇게 급변과 격동 그리고 혼의 시기였던 헐리우드를 영화 <바빌론>은 오로지 중립적인 시선으로 명과 암을 설파한다. 영화를 찍다가 사람이 죽는 환경을 지나 사람을 컴퓨터가 대신하는 영화가 등장하기까지 오랜 시간 동안 헐리우드가 쌓은 업보와 업적은 굳이 인물들을 통해 보여주지 않더라도 충분할 정도이다.

영화는 격동의 변화를 맞이하는 헐리우드를 보여주며 급변하는 시대에 따라 갈리는 세 인물의 가도를 서술하였다. 이 영화가 헐리우드를 조명하고 있지만 사실 모든 시대가 그러하지 않나. 개인이 가진 안목과 능력으로 인하여 일약 스타가 된 세 주인공은 모두 각기 다른 결말을 맞이하였지만 그 과정을 오로지 그들 과오 탓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자신이 가진 능력이 우연히 시대가 요구하는 바와 크게 뒤떨어지지 않아 살아남았지만 끝내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은 부족한 사람, 타고난 재능을 지녔지만 그것이 시대와 맞아떨어져야지만 빛을 발할 수 있는 사람, 타고난 안목을 지녔지만 시대의 비정함은 알지 못하는 사람. 이들은 사실 헐리우드에도 있었고, 헐리우드 밖에도 있었다.


마지막으로 영화 <바빌론>은 순수함으로 시작하여 순수함으로 끝난 한 사람만을 살려둠으로써, 지난한 과거를 모두 조명하고자 한다. 그가 살아남은 이유는 우리가 이 모든 역사와 미래를 기억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실제 도시지명인 바빌론은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고대유적으로서 주로 성경에서 바빌로니아에 대한 증오를 품은 유대인들의 악의 소굴이자 타락한 도시라고 한다. 영화 <바빌론>은 이 성스럽고도 타락한 도시를 그 누구보다도 아름답게 비유하였다. 더불어 경이롭기까지 한 이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를 기억하는 이라면, 스스로 영화를 사랑한다고 자신 있게 대답하기를 바란다. 이 영화에 대한 호불호는 <바빌론>이라는 영화 한 편이 아닌 영화라는 대중예술 그 자체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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