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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 유 Feb 14. 2023

<성덕> 죄 없는 죄책감을 주고 간 오빠에게

나는 세븐의 팬이었다

영화 <성덕>을 리뷰하면서 그의 이름을 밝힐지 혹은 그저 '그'라고 지칭할 지에 대하여 꽤 고민했다. 나는 그렇게 영향력 있는 작가도 아니고 고작 브런치 안에서만 활동하는 작가였지만 마음에 걸린 것은 그에게 아직 남아있는 팬들이었다. 그렇지만 이 글은 오로지 영화 <성덕>을 위한 글이자 그 가수에게 상처받았던 팬들을 위한 글이기도 하니, 서문에 밝히려 한다. 나는 세븐의 팬이자 팬클럽 회원이었으며 팬카페에서 우수회원으로 활동한 중고등학교 시절을 모두 바쳐 세븐을 좋아한 소녀팬이었다.


영화 <성덕>은 정준영의 일명 성공한 팬으로 방송출연까지 한 오세연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이자, 죄지은 연예인들로 인하여 마음의 상처를 입은 팬들을 위한 영화라 할 수 있겠다. K-pop열풍과 더불어 쏟아지는 연예인 범죄기사를 생각해 보면 이 시국에 참 잘 어울리지 않는 영화일 수 없다. 작가는 영화를 촬영하는 동안 적은 필름에세이 <성덕일기>에서 영화를 구상할 당시에 20대 초반인 지금만이 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영화 <성덕>은 그런 그의 마음이 십분 이해되는 영화이자 감독이 아직 그를 미워할 잔열이 남아있는 지금 시기에만 만들 수 있는 영화였다.


앞서 서문에서 밝혀둔 바와 같이 물의를 빚은 가수의 팬카페 회원이자 오래된 팬으로서 나 역시 영화 <성덕>에 깊은 공감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이 영화가 개봉했을 즈음 바로 극장가로 달려가 영화를 보며 위로받고 싶었으나 차마 섣불리 영화를 관람할 수 없었다. 이미 시간이 꽤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도 오빠가 미운 마음이 조금은 남아있다는 것을 당시에 깨달았다. 아니, 그에게 미운 것은 열성적으로 누군가를 응원하며 얻어왔던 나의 대인관계, 학창 시절의 추억 그 모든 것을 그가 앗아갔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뇌리에 또렷이 남는 기억은, 그가 물의를 빚은 후 쏟아지는 언론에서의 이야기와 팬카페에서 우수회원들을 긴급소집하고자 한다는 메시지였다. 나는 비록 그를 한 번도 실물로는 본 적 없는 소녀팬이었으나 당시 그의 팬들의 연령층은 그리 낮다고는 볼 수 없었고, 나는 그의 팬카페에서 소위 내가 늘 꿈꾸었던 '언니를 가진 동생'의 위치를 간접적으로나마 느끼며 친목을 쌓아가고 있었다. 대학학과를 고민하는 친구에게 대학생이 되어 진심 어린 조언을 하기도 하였고, 팬카페에서 가수를 퇴출시키자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 연예병사의 폐지를 이끈 전대미문의 사건 당사자가 우리 오빠가 된 상황에서 팬카페에서 그를 내쫓자는 팬들의 마음이 십분 이해되었다. 그가 미국으로 가서 당시 여자친구와의 데이트 사진이 올라올 동안 팬카페에는 몇 년간 들어가 보지도 않았던 그에게 야속한 팬들은 쌓여가고 있었고, 그가 강심장에서 팬들이 자신의 공개연애를 밝힌 후 팬카페의 회원수가 감소했다는 것을 방송으로 본 나는 그에게 인간적으로 실망하기도 하였다. 당시 팬들의 연령은 그가 공개연애를 한다고 하여 속상할 만큼의 연령대가 결코 아니었으며, 팬들이 바란 것은 그저 팬들에게 소식을 전하는 그의 팬을 향한 애정이었다.


나 역시 영화 <성덕>의 오세연감독과 마찬가지로 세븐을 단순히 외모만 보고 좋아한 것이 아니었다. 어린 시절 자신의 꿈을 위하여 YG연습실에서 몇 년간 걸레질을 하며 꿈을 키운 이야기를 보고 그의 열정을 좋아했다. 지금까지도 돈독히 지내는 친구와 처음으로 소리를 높여 싸웠던 이유 역시 친구가 세븐을 욕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음악 역시 좋아했으며, 국어시간에 선생님이 그의 발라드음악을 들으시는 것을 보고는 쾌거를 불렀다. 그의 앨범이 나오면 누구보다도 먼저 사 왔으며 가사집을 보면 닳을까 봐 굳이 복사해서 보았다. 그만큼 그는 나의 학창 시절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고등학교 진학 후 학교분위기의 주눅 들어 마음 편히 지낼 수 없었던 나의 휴식처였다.


그런 그가 이제는 연관검색어에 '사건'이 뜬다. 당시 그에게는 억울한 정황도 있는 듯했지만, 나는 온갖 인터뷰를 다 찾아보았던 지라 그의 말을 신뢰하지 않았다. 실수로 팬카페를 탈퇴하였을 때에도 아쉽기는커녕 되려 속이 시원했고 나는 그 이후로도 지금까지 그가 밉다. 당당히 세븐팬이라고도 말할 수 없게 만든 그를, 그의 음악을 좋아했던 내가 다신 그의 음악을 듣지 못하게 만든 그를, 여전히 내가 그의 팬이라고 오해한 친구가 그의 팬계정에 나를 태그하였을 때 운영자가 '일코 중이시군요'라는 댓글로 나를 반기던 모습을 보게 만든 그를. 그러니까 팬을 당당하게 좋아하지 못하게 만든 그를.

다행히도 나에게는 이런 나의 마음을 이해해 줄 수연이가 있다. 국내에서도 쉽게 찾아보기 힘든 세븐팬을 영국행 비행기에서 만났다는 사실이 서로를 들뜨게 만들었고, 나의 이러한 감정들을 이해해 줄 수 있는 친구는 오직 수연이뿐이었다. 내 학창 시절은 세븐 덕분에 외롭지 않았으며 타국에서 만난 친구를 마음 열고 대할 수 있게 만들어준 그에게는 사실 고마운 마음이 남아있지만, 이젠 어느 연예인조차 덕질할 수 없게 만든 그가 여전히 밉다. 영화 <성덕>은 이런 나의 감정을 오로지 나만 느끼는 것이 아니라는 위로를 선사하는 영화이다.


내가 그 이후로 좋아한 연예인들이 물의를 빚자 친구들은 우스갯소리로 내가 보는 눈이 없다고 말하였다. 한번 들을 때는 나도 밈으로 사용했는데 은근히 들으면 들을수록 스스로 사람 보는 눈에 대해 확신을 잃게 만드는 자존감이 낮아지는 말들이었다. 그런 말을 들으며 티는 내지 못하는 내상을 입는 것도 오로지 물의를 빚은 연예인의 팬만이 느낄 수 있는 자괴감이었다. 그가 자신이 군인이라는 신분을 망각하고 연예인이라는 특권의식과 그는 억울하다고 호소하는 진실까지 그런 물의를 빚은 그를 만든 것이 어쩌면 팬들이 주는 애정이었을지 모른다는 죄 없는 죄책감. 연예인들은 공인이 맞다는 이순재선생님의 말씀을, 지금이나마 물의를 빚을 예정인 이들이 알아주면 안 되는 것일까.


영화 <성덕>은 꽤나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연예인의 상처받은 팬을 넘어서 여전히 남아있는 팬들을 향한 질문을 오로지 몰이해적인 시선으로 관망하지 않는다. 연예계에서 시작한 이 이야기는 어느덧 한 대상에 대한 맹목적인 애정으로 확장됨과 동시에, 그런 그들을 마냥 비난할 수는 없는 스스로의 모습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누군가를 열렬히 응원할 수 있는 희망적인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타인을 그토록 사랑하고 응원하는 것은 비록 그것이 연예인이 가진 이미지일지어도, 우리는 그 들을 통하여 얻는 위로가 분명 있기에 응원하는 것이다. 이 글을 모두 쓰고 나니 내 학창 시절을 송두리째 앗아가 버린 그가 미우면서도 그립다. 지금의 그가 아닌, 힐리스를 타고 상큼하게 웃으며 어린 시절 고생한 자신의 열정을 보란 듯이 무대에서 뿜어내던 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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