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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 유 May 25. 2023

<인어공주> 추억을 버리면서 벽창호가 되어버린 디즈니

디즈니 르네상스의 애니메이션으로 유년기를 보낸 이들이라면, 인어공주를 한번 즈음 열렬히 사랑해 보았을 것이다. 탐스러운 빨간 머리카락과 엉뚱한 매력을 지닌 에리얼은, 그렇게 대중들에게 흰 피부에 부드러운 빨간 머리, 그리고 아름다운 외모로 각인되었다. 디즈니는 2018년에 개봉한 <주먹왕 랄프 2: 인터넷 속으로>에서도 자신들이 구축한 에리얼의 이미지를 그대로 재현해 내었지만 PC주의와 다양성을 내세우며 인어공주를 흑인으로 캐스팅하기에 이른다. 그렇게 벽창호가 된 디즈니는 흑인 인어공주에 대한 새로운 영화가 아닌, 기존의 인어공주의 이미지를 파격적으로 변화시키기에 이르렀고 결국 이런 영화가 탄생해 버렸다.

영화 <인어공주>의 스토리라인은 원작 애니메이션과는 크게 다르지 않다. 물 위 세상을 동경하는 인어공주인 에리얼이 에릭왕자를 구해주게 되고 결국 바다마녀에게 목소리를 내어주고 다리를 얻은 뒤 인간세상에 입성한다. 바뀐 설정이라면 애니메이션에서는 도구에 가까웠던 에릭왕자가 바다를 사랑하고 넓은 세상과 교류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다는 것과, 울슐라가 사실은 트라이튼의 여동생 즉 인어공주의 고모라는 것 등이다. 여기서 디즈니는 한 번의 무리수를 두게 되는데 바로 에릭왕자가 사는 섬의 여왕, 에릭왕자의 엄마가 흑인이고 그가 친자식이 아닌 난파선에서 구조하여 거두어 키운 자식이라는 것이다.


주변 이들 모두가 인어공주를 보러 간다는 말에 돈이 아깝다 할 정도로 체감되는 여론이 좋지 않았지만, 영화팬을 자처하는 사람으로서 인어공주를 무려 개봉날 보았다. 어린 시절 내가 사랑한 에리얼과는 전혀 다른 외형이었지만 영화 <인어공주>는 OST로는 그 시절 추억의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문제는 오로지 OST만이 인어공주의 유산을 지켰다는 것이다. 영화가 시작하면서 안데르센의 원작 중 한 구절을 자막으로 띄우지만 원작에서 묘사된 인어공주의 외형과 정서를 무시하면서 원작의 구절을 인용한 것은 기만에 가깝다.

이 문단을 읽은 독자에게 외모지상주의자로 비판받아도 좋다. 인어공주 역을 맡은 할리 베일리는 생각보다 귀여운 10대 소녀를 잘 표현했으나 외적인 모습이 에리얼과 확연히 거리가 있어 영화의 집중을 방해한다. 에리얼의 탐스러운 붉은 머리카락이 주황색에 가까운 레게머리로 표현 되어있어 배우가 지닌 본래의 이목구비와도 어울려 보이지 않는다. 더불어 에릭왕자 역시 원작에서 표현된 보조개가 있다는 공통점은 있으나 실제 배우가 서른을 바라보고 있는 상황에서 21살의 풋풋한 20대 청년을 연기하다 보니 거리감이 느껴진다.


이 영화가 총체적 난국인 것은 위에서 말한 주연배우들 외에도 영화의 전체적인 색감과 해양생물을 실사화하는 과정에서 지나치게 리얼했다는 점이다. 세바스찬을 굳이 왜 바닷가재에서 꽃게로 바꾼 것인지 도통 모르겠으며 플라운더는 아무리 실사화라지만 영화 <라이온 킹>에서 느낀 실사화의 단점을 고스란히 보인다. 아무리 실사화라고는 하지만 애당초 영화가 판타지장르임을 생각해 본다면 실사화를 조금 더 캐릭터같이 표현할 수는 없었던 것일까. 또한 스커틀의 경우 목소리를 연기한 배우 아콰피나가 스커틀이라는 캐릭터를 넘어 배우가 떠오를 정도로 배우가 스커틀을 연기했다기보다는, 자신의 이미지로 연기하였기에 영화의 몰입을 방해한다.


또한 전체적인 화면 색감이 어두운데 배우의 피부색까지 어두운지라, 영화가 깊고 푸른 바닷 속이라기보다는 '심해'라는 표현이 그대로 어울리며, CG 역시 <아바타>를 이미 접한 관객들은 <인어공주>를 보고는 다소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도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에서 우리는 하나라는 류의 대사와 함께 남녀노소 모든 인종의 인어들을 보여주는데 이는 마치 영화가 맹목적으로 자신의 옳음만을 설파하는 꼰대처럼 느껴진다. 만약 인어공주가 원작 애니메이션의 고증을 그대로 살리며 올드팬들의 추억의 향수를 불러일으켰다면 마지막 시퀀스가 불쾌하게 느껴지지 않았겠으나, 이미 캐스팅자체만으로도 자신들이 추구하는 메시지를 강압적으로 주입하고 있는데 영화의 결말까지 그러하니 영화가 꼰대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자연스러운 메시지를 '전달'한다기보다는 '가르치려 드는 것'에 가깝다.


다만 영화 <인어공주>가 앞서 말한 혹평들에 미루어 모든 면에서 망작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트라이튼의 공주들을 7대양의 주인으로 표현한 것과, 조연들의 호연 특히나 울슐라울슐라가 변신한 바네사의 연기는 싱크로율과 연기력이 돋보였기 때문이다. 할리 베일리의 목소리 역시 영화와 전반적으로 어울리며, 노래실력만큼은 손색이 없을 정도이다. 다만 앞서 말한 7대양에서 동양인 인어를 굳이 무쌍커풀의, 서양인들이 흔히 떠올리는 오리엔탈리즘에 부합하는 배우를 캐스팅했어야만 했는지에 관해선 의문이 생긴다. 인종차별을 앞세워 가르치려 들지만, 정작 모든 다양성을 포용하지 못한 모습을 보아하니 디즈니는 자신들의 유산이 무엇인지조차 모른 채 옳다고만 믿는 꼰대와도 같다. 안데르센이 인종차별주의자여서가 아니라, 그가 덴마크인이기에 백인 인어공주가 탄생한 것임을 디즈니는 정말 모르는 것일까. 심지어 에리얼은 빨간머리를 지닌 진저들에게는 또 다른 희망이었는데. 도대체 극을 시작하며 원작의 구절은 또 왜 인용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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