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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 유 Aug 03. 2023

2023.6.4~5 / 가족 간에도 우정이 필요하다

크루즈 2,3일차

가족 간에 우정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이 글을 쓰면서 떠올렸다. 형제자매 간에도 친하고 덜 친하고가 있는 와중에 이모와 조카사이가 적용되지 않을 리 만무했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이모와의 우정이 꽤나 두터운 편이다. 어렸을 때에 미국이모가 한국에 입국하시면 이모와 함께 자겠다고 때를 쓰던 나는 커서는 이모와 맥주 한잔을 함께 기울이며 사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어른으로 성장하였다. 아직 이모가 보시기에는 어리디 어린 조카이겠지만, 나이를 먹고 이모와 몇 해를 건너 만날 수록 서로 대화하는 폭이 넓어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크루즈는 이틀가량의 항해 후에 멕시코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짐을 풀고 적응하느라 다소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도 몰랐던 첫날과는 달리 멕시코로 향하는 이틀 동안은 크루즈 내부를 마음껏 누릴 수 있었다. 비록 목감기가 심하여 기침이 멎지 않았지만, 이모가 끊임없이 홍삼을 챙겨주신 덕분에 기침만 나올 뿐 다른 증상은 없었다. 비록 그 기침이 여행 내내 지속되어, 이모께 죄송한 마음과 주변사람들의 눈치를 봐야만 했지만.


이른 아침 조식을 먹은 뒤에 맨 위층으로 올라가 이모와 함께 수영장에 방문했다. 이모는 수영을 좋아하셔서 곧장 풀장으로 들어가셨고, 나는 원체 물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서 수영복 차림을 하고 비치체어에 누운 채 따뜻한 공기와 여유로움을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여행 중에 나는 비싼 노트북 대신에 태블릿 pc를 들고 갔는데, 여행 중에 전자책을 읽거나 블루투스키보드로 여행기를 쓸 요량이었다. 다만 한국에서 미리 밀리의 서재에서 전자책을 다운로드하지 않아 구글북스에서 만 원을 결제하고 무료로 볼 수 있는 책을 구입했지만. 이모가 돌아오시자 우리는 널찍하고 둥그런 소파 위에서 여유를 부리며 담소를 나누었다. 이모와의 대화는 언제나 즐거운 편이다.


이모와 나는 무려 30년이 넘는 세월이 차이남에도 불구하고 많은 부분에서 서로 공감할 수 있었다. 우리집형편이 그다지 넉넉하지 못한 데다가 뒤돌면 벼랑이라는 생각으로 인생을 살아온 나는 앞서 산 이모의 궤적을 비슷하게나마 밟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모는 집안형편이 어려운 상황에서 홀로 뛰쳐나와 진취적으로 삶을 건설하셨고, 나는 비록 30대에도 부모님 집에 얹혀살고는 있다만 스물한 살부터 노동현장에 뛰어들었다. 게다가 우리는 '외국생활'이라는 커다란 공통점이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외국이라면 노래를 부르던 나는 비록 짧지만 1년 동안 외국에 체류해 본 경험이 있었고, 남의 나라에서 서럽게 돈을 벌며 영어를 배웠던 고단함을 이모는 이미 경험하신 터였다. 게다가 나는 지금 직장을 다니면서 임용고시란 큰 시험을 준비하고 있고, 이모는 가정이 있는 채로 법정통역사 시험을 준비하시어 4년 만에 합격하셨다. 나이를 먹어 공부를 하는 것에 대한 피로감은 겪어본 사람만이 절실히 공감할 수 있는 것이었다.


다행히도 가진 영어실력으로 각자도생이 가능한 나였기에 나는 저녁엔 이모와 떨어져 홀로 크루즈 내 공연을 관람했다. 홀로 크루즈를 누빈 것도 처음이거니와 영어로 인해 오랜만에 난관을 겪은 경험이기도 하였다. 대략 '옆에 자리가 있느냐'라는 옆사람의 물음을 나는 두 번이나 들은 후에야 겨우 이해할 수 있었고, 이후 크루즈 내에서 이런 경험은 종종 생겨났다. 그토록 영어를 쓰는 환경에 대해 노래를 불렀지만 막상 그 상황이 닥쳐오니 원어민이 '상대방이 영어를 잘하겠거니' 생각하고 말하는 속도는 쉽게 따라갈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 오랜만에 겪어보는 당황스러움이 마냥 불편하지만은 않았다.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며 그래도 감을 잃지 않고 두 번을 들어도 알아듣는 게 어디냐는 묘한 자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모와 내가 굳이 혈연관계로 묶이지 않고 남으로 만났다 하더라도 제법 좋은 친구가 되었으리라 믿는다. 함께 대화를 나누다가도 구태여 둘이서만 있으려고는 하지 않았던 여행스타일도 잘 맞았던 데다가 앞서 말한 여러 공통점들이 세월을 뛰어넘어 나와 이모를 묶어주었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이모의 조카이기 때문에 얻었던 많은 혜택들이 있었지만 이렇게 둘이서 여행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혈연관계 때문이 아닌 가족 간의 우정이 존재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나는 이모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언젠간 잘 풀릴 거라는 희망이 생겨 좋았고, 이모는 나의 이야기를 들으시면서 지난한 젊은 날을 떠올리셨다. 그렇게 우리의 대화는 서로에게 과거와 미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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