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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 유 Jul 27. 2023

2023.6.3 / 이모와 함께 춤을

미국, 크루즈여행 1일차

늦지 않게 일어나 서둘러 짐을 챙겨 롱비치 항구에 도착하였다. 이모부와 언니에게 짧은 인사를 건네고 나와 이모는 가방을 직원에게 맡긴 뒤 입국심사장으로 향했다. 멕시코로 향하기 때문에 입국심사를 진행하는 것으로 보였는데, 나의 비자가 문제였다. ESTA승인서를 집에 놓고 오는 바람에 나는 황급히 로밍을 켜서 사이트에 접속해 직원에게 캡쳐화면을 보여주었고 다행히 별 문제 없이 승선할 수 있었다. 혹시모르는 병으로 로밍을 해놓은 덕에 쉽게 넘어갈 수 있는 일이었다. 이후 로밍 덕에 여러 차례 곤란한 상황에서 위기를 모면하였다.


난생처음 크루즈에 탑승한 나는 모든 것이 신기했다. 안전교육을 받은 뒤에 방으로 들어오자, 직사각형 모양의 창문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방은 생각보다 꽤 넓어서 이모와 둘이 쓰기에는 어려움이 없어 보였다. 카니발허브 어플을 깐 뒤에 앱을 통하여 와이파이를 연결하였고 이모에게 간략히 앱을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허브앱은 앞으로의 항해 일정, 이벤트 일정, 식당 예약, 와이파이 연결 등 배 위에서 모든 것을 한 번에 작동할 수 있는 어플이었다. 이 앱을 까는 과정에서도 나는 로밍을 하고 오지 않았으면 꽤 애를 먹을 뻔했다.

이 날의 메인 이벤트는 항해를 축하하는 파티같은 것이었다. 모든 직원들과 승객들이 나와서 출항을 축하하는 자리였는데, 배의 모든 이벤트를 주관하는 매니저가 앞으로 나와서 흥을 돋웠다. 매니저가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면 사람들은 그의 동작을 다 같이 따라하기도 하였다. 그 장면을 운이 좋게도 나와 이모는 정중앙에서 구경하게 되었는데 흥겨운 이모의 춤사위를 보자니 쭈뼛쭈뼛하던 나도 한국에서 가지고 온 어색함을 내려놓고 동요될 수 있었다.


매니저는 승객들 중에서 가장 자신의 장기를 뽐낼만한 사람을 뽑기를 시작했고 그렇게 총 4명의 승객이 앞으로 나와 음악에 맞추어 자신이 준비한 춤을 추었다. 이 행사를 보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어르신들도 흥겹게 젊은이들과 함께 섞여 춤을 추는 모습과, 거리낌 없이 앞으로 나온 사람들의 용기 그리고 그들을 환영하는 사람들의 환호성이었다. 나도 모르게 한국이라면 어땠을까를 시종 상상하게 되었는데 한국이었다면 이런 분위기는 필시 젊은이들만의 전유물처럼 되었을 것이다. 아마도 한국에서 이런 류의 파티를 가게 되었다면 젊은이들이 즐길만한 EDM이 흘러나오고 나는 그 자리조차 마음 편히 즐기지 못했으리라. 나이로 양분화되는 우리나라의 문화적인 특성이 이국에서는 조금 더 야속하게 느껴졌다. 흥겹게 춤을 추는 노인들의 모습과 그런 노인들과 함께 어울리기를 꺼리지 않는 젊은이들의 분위기는 다소 낯설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또 다른 행복을 느끼게 해 주었다.

그렇게 파티를 구경 후에 방으로 돌아와 일주일치의 짐을 풀고 나자 뒤늦게 아차 싶었다. 짐을 당시에는 부담스러웠던 오프숄더 원피스 두 벌이 이곳에서 가장 어울리는 같았고 가지고 시폰 원피스는 생각보다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수없이 짐을 챙기고 옷을 갈아입은 이모와 함께 저녁을 먹으며 도란도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렇게 저녁을 먹은 뒤에 자꾸만 올라오는 기침을 애써 참으며 이모와 나는 산책 겸 배 안을 돌아다녔다.


크루즈 안에서는 곳곳에 라이브밴드들이 다양한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고, 우리는 사람이 다소 적은 곳에 앉아 밴드의 음악을 감상하였다. 어느 순간 신나는 음악이 나오며 보컬리스트들이 함께 나와 춤을 추자는 제스처를 취했고 그렇게 하나 둘 앞으로 무대로 향했다. 나는 꽤 몸치이므로 이런 자리는 제대로 끼지도 못하며 쭈뼛쭈뼛하곤 했는데 이모는 먼저 무대로 향하시더니 꽤나 화려한 춤사위를 보이셨다. 이런 이모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만으로도 꽤 재미있었고, 나는 흥겹게 춤을 추는 사람들 속에서 민망함을 끝내 다 못 떨치며 어색한 웃음을 띤 채 춤을 추다 돌아왔다. 이모의 춤사위는 왕년에 이모가 얼마나 젊음을 즐겼는지를 알 수 있게 했다. 이모는 내가 당신의 젊은 시절을 꼭 닮았다고 하셨지만, 아마 이모의 청춘은 내 젊은 날에 비해 더욱 화려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자못 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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