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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 유 Aug 07. 2023

<피기> 명확한 질문, 불완전한 대답

모든 영화가 질문을 던지는 것은 아니지만, 때때로 어떤 영화는 명확한 질문을 던진다. 모든 영화를 본 것은 아니지만 내가 본 대부분의 영화는 그렇게 두 분류로 나뉘었다. 메시지를 전달하는 영화와, 그렇지 않은 영화. 쉽게 볼 수 있는 영화와, 쉽게 볼 수 없는 영화. 가볍게 보지 않아야 할 영화와, 가볍게 보아도 될 영화. 그러나 모든 질문을 던지는 영화가 모두 완벽한 대답을 내놓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다시 질문을 관객에게 던지는 영화와 질문의 해답을 스스로 찾아가는 영화로 나뉘는데, 이도저도 아닐 경우에는 영화가 던진 질문이 그저 공중에서 사라지고 만다. 영화 <피기>는 이처럼 좋은 질문으로 시작하여 끝내 알 수 없는 대답으로 관객에게 모호함 만을 던진다.

고등학생인 사라(라우라 갈란)는 남들보다 뚱뚱하다는 이유로 교내 괴롭힘을 당하는 10대 소녀이다. 어느 날 수영장에서 자신을 괴롭히던 학생들이 괴한에게 납치되는 것을 목격하고, 괴한은 사라를 발견하지만 해코지를 하는 대신 수영복차림의 사라를 위해 바닥에 큰 타월을 떨어트린 후 떠난다. 이후 실종된 학생들의 부모가 그 들을 찾기 시작하고, 사라는 자신이 본 것을 진술해야 할지 혹은 침묵할 지에 관하여 갈등한다.


영화 <피기>는 학교폭력으로 시작하여 폭력으로 마무리되는 영화이다. 단편영화를 장편으로 늘렸기 때문인지 영화의 중반부와 후반부는 마치 다른 영화를 이어 붙인 것처럼 느껴진다. 영화는 초반 사라가 납치된 학생들의 행방에 대해서 말해야 하는 지를 갈등하는 모습까지는 매우 사실적으로, 그리고 관객들의 공감을 사기에 충분하도록 그려지지만 후반에 범인과 유대감이 쌓이며 이윽고 범인과 납치된 남은 학생들을 발견하면서부터는 영화가 주제를 잃고 그저 결말만을 위해 극이 진행된다. 주인공의 마지막 선택이 머리로는 이해가 가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찜찜하며, 범인에 관해서는 그저 '원래 그런 사람'으로 규정되어 마치 판타지를 보는 것과도 같다. 나를 괴롭힌 친구들의 행방을 말하느냐, 혹은 말하지 않느냐에 대한 윤리적인 갈등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것이 아닌 그저 그 갈등이 극의 전개였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영화 <피기>는 어찌 보면 사라의 판타지에 가깝다. 자신을 구해주는 백마 탄 왕자, 응징받는 친구들까지. 다만 사라의 소원이 과하게 이루어져 왕자가 살인자일 뿐이며 친구들은 납치가 되었고 가족들까지 위협에 빠졌을 뿐이다. 영화 <피기>는 사라가 납치범에 대해 진술할지 말지에 대한 심리적 서스펜스를 그린 영화로 홍보되었지만, 실은 사라의 판타지를 그린 편에 더욱 가깝다. 그렇기에 사라의 윤리적 갈등과 판타지 중에서 한 가지에 집중했더라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적어도 영화는 본인이 의구심을 가진 질문에 대하여 자신만의 대답은 내놓았을 것이다.


영화의 결말을 떠올려보자면 한 편의 영웅서사를 보는 것 같으면서도, 악당이 모호하기 때문에 그저 찝찝함이 남을 뿐이다. 학교폭력 피해자와 살인범의 이야기로 치부하기에는 영화가 초반에 말하고자 했던 바가 꽤 괜찮았기 때문일까. '나를 괴롭힌 학생들이 납치가 되는 것을 목격한 나는 진술할까 혹은 침묵할까'라는 이 난제는 매혹적이면서도, 영화의 주제의식을 뚜렷이 보여줄 수 있었기에 질문에 대한 답이 그저 흐릿해져 간 것이 아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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