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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 유 Oct 04. 2019

<동감> 어바웃 타임 이전에 이 영화가 있었다

로맨스를 표방하여 과거를 대하는 방식에 대해 말하다

(위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우디 앨런 감독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의 주인공 '길'은 우연한 기회로 1920년대로 돌아가는 마차에 탑승하게 되고, 낭만이 가득하던 그 시대를 동경하게 된다. 2019년의 서울에서는 세기말 아이돌로 활동하던 그 당시 가수들이 등장하여 사람들의 향수를 자극하기도 하며, 아날로그 시대와 디지털 시대 그 중간 어디 즈음에 태어난 8090세대들은 지금 세대의 편리함의 만족하면서도, 때때로 철없이 운동장에서 뛰어놀던 그 시절을 추억하기도 한다. 영화 <동감>은 과거에서 사는 여자와 현재를 사는 남자의 타임슬립 로맨스를 표방한, '시간'에 관한 영화이다.

1979년에 살고 있는 여자 소은(김하늘 분)은 짝사랑하는 선배(박용우 분)를 몰래 좋아하던 중, 우연찮은 기회로 오래된 무전기 하나를 얻게 된다. 의도치 않게 갖고 오게 된 무전기 너머로 어느 날 낯선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오게 되고, 그렇게 2000년에 살고 있는 남자 지인(유지태 분)과 1979년에 살고 있는 여자 소은은 서로 교신하게 된다. 서로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음에도 만나지 못하며, 심지어 전기코드가 빠져있음에도 작동하는 무전기에 의심을 품은 인은 두 사람이 서로 21년의 시간차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이  신기한 교신을 믿지 않던 두 사람은 어느덧 시간차를 띄어 넘어 서로 소통하게 된다. 그렇게 서로의 일상과 사랑, 과거와 미래, 그리고 현재를 공유하며 서로에 대한 마음이 깊어지던 두 사람. 그러던 어느 날 두 사람 사이에서의 인연이 소은의 현재 사랑과도 연관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이 둘 사이에 놓인 동감과 그리움은 과연 21년이란 시간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임재범의 '너를 위해'를 유명하게 만든 영화 <동감>은 한번 즈음 들어보았지만 의외로 많은 사람이 보지 않은, 한국 로맨스 영화 부흥기를 이끈 영화들 중 한 작품일 것이다. 로맨스 영화로 분류되는 덕에 어쩌면 몇몇 이들은 이 영화를 흔하고 낡은 이야기로 치부해버릴지도 모른다. 우리는 벌써 꽤 많은 시간 여행들에 둔감해져 있는 데다, 이미 유명한 영화들은 어쩐지 보지 않아도 본 것 같은 착각에 빠지므로.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작품은 시공간의 차원을 뛰어넘은 두 남녀의 사랑 이야기가 아닌, 각자의 사랑에 동감하는 두 남녀의 모호한 감정을 다뤘다. 그러니까 흔하디 흔한 로맨스 영화이기보다는 로맨스를 표방하여 과거를 대하는 방식을 다룬 영화 <어바웃 타임>에 가깝다고나 할까.


극 중 소은과 인은 오로지 서로를 직접 대면하지 못한 채 무전기로만 교신한다. 21년이란 시간차는 무색하게 두 사람의 대화는 전혀 독특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일상적이고도 평범하여 두 사람의 통화(교신) 내용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이제 막 서로를 알아가는 풋내기 커플처럼 보인다. 과거의 사람인 소은은 미래를 궁금해하지만 두 사람의 대화에서 주제는 시간 차이에서 벌어지는 놀라움보다는 각자 개인이 느끼는 감정을 주로 다룬다. 영화의 제목처럼 두 사람은 각자 하는 사랑을 통하여 서로 동감하며 위로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알게 된 소은의 사랑과 어쩌면 자신 때문에 그녀의 사랑이 끝났다고 믿는 인이 갖는 미안함은, 바로 그 지점에서 찾아오는지도 모르겠다. 서로 우정과 호감이 섞인 그 묘한 감정 안에서 그 둘의 사랑은 서로 방향은 달랐음에도 그 성질은 똑같았으니. 영화 포스터에 적힌 문장처럼, 그들은 다른 시간 속에서 같은 사랑을 꿈꿨다.


어쩌면 인이 2000년의 소은을 마주하자 끊겨버린 교신과, 서로를 알아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지나칠 수밖에 없었던 두 사람은 마치 영화 <어바웃 타임>에서 시간 여행을 그만하기로 한 주인공의 선택과도 같다.  과거의 아픔은 묻어지기 마련이며, 우리는 그저 현재를 살아갈 뿐이다. 19년이 지난 지금에야 과거의 낭만을 추억하며 2000년도 영화를 볼 지어도, 우리는 그저 그때의 낭만을 추억할 뿐이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등장한 그 대사처럼, 현재란 언제나 불만족스럽고 과거는 언제나 아름다워 보이듯. 소은과 인이 서로 공감했던 그 들의 사랑과 소은이 인에게 했던 '1979년도의 감정을 2000년도에도 느낄 수 있을 거예요.'라는 말처럼 감정은 결코 퇴색되지 않는다. 다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저 무뎌지며 견뎌낼 뿐이다.


20년이나 지난 영화를 지금에서야 보는 이유 역시 어쩌면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아날로그 시대에 태어나 디지털 시대를 살고 있는 90년 대생의 눈에는 아날로그 시대의 그 낭만과 감성이 종종 그립다. 누군가에게는 낭만이었고, 누군가에게는 추억이었으며 누군가에게는 겪어보지 못한 아득한 과거일지 모르는 그때 그 과거.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현재 역시 시간이 지나 추억할만한 과거가 되리라. 부서지지 않는 무전기처럼 세월은 다만 흘러갈 테니. 그렇게 우리는 오늘도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라는 말에 기대어 살아간다.




“그 세상은 예뻐요? 살맛 나는 세상이냐고요."

“늘 그렇듯이 세상은 살맛 나는 곳이에요.
물론 갑갑해진 부분도 있겠죠.
공기도 오염됐고 사람도 바글바글.
그래서 옛날이 좋았어라고 추억하는 사람들도 많아요.”

“그래요? 이 시절을 추억하는 사람은 이 시절의 무엇을 추억할까? 2000년이 보고 싶어요.”

“정말로 보여드리고 싶네요.
여기 세상은 소은씨가 상상만 하던 거, 아니 상상하지도 못했던 수많은 일들이 현실로 이뤄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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