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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 유 Nov 17. 2019

[D+347] Nielsen Park / 다시 한국으로

1년간의 워홀을 뒤로하고 한국행을 결심하다

호주로 오기 전 나는 내심 외국에서 생활하는 친구들에 대한 시기와 질투에 몸서리치던 시절이 있었다. 외국에서 사는 것이 얼마나 외롭고 힘에 부치는 일인가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마음이었다. 한국에서 사는 것이 힘들게만 느껴지고, 외국에서 사는 것은 마치 나에게 있어 하나의 유토피아처럼 다가왔던 그때. 고백하자면 호주로 오기 전 삶의 태도는 지금보다 더욱 절박하였으며, 때로는 치열하기까지 하였다.


모든 일에 적성이 맞기가 힘들겠지만, 좁은 가게에서 완벽하지 않은 언어로 외국인 손님들을 매일같이 상대해야 하는 것은 내게 큰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웨이트리스로 일하면서 내 영어 실력이 얼마나 형편없는지 깨달았고, 비효율적인 근무 시간과 통근거리 등을 생각하였을 때 다니던 일식당에서 오래 버틸 자신이 없었다. 사실은 비자가 만료되기 직전 불법으로 세컨비자를 구입할 계획이었고, 퍼스트 비자가 만료되는 4월 초순까지만 버틸 작정이었는데 그 시점 주위 사람들이 하나둘씩 한국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세컨비자를 구입하는 것을 차일피일 미룬 것도 한국으로 돌아갈지 말지에 대해 갈등이 많았던지라 덜컥 시도하지는 않은 이유에서였는데, 그즈음 한국으로 돌아가야겠다고 마음먹은 계기가 있었다.


피노키오 일식당에서 같이 일하던 현선이가 먼저 한국으로 출국하게 되었는데, 당시 그녀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언니 우리 고생 그만하고 가자. 이즈음 되면 많이 버텼어’ 힘든 일식당에서 함께 동거동락하며 의지하던 동생이 보낸 그 메시지를 보자마자 마음 한구석에서 왠지 울컥함이 밀려왔다. 비단 그 친구를 떠나서 주위에서 하나둘 1년 가까이 열심히 돈을 모아 여행으로 마무리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며 나 역시 처음부터 목표를 잘 잡았어야 하나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생각의 생각이 꼬리를 물며 기어코 나도 ‘여행이나 하고 돌아가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자, 그만 돌아가야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Wynyard 역에서 Town Hall까지

일하던 곳에 노티스를 내고 2주가량을 가득 채워서 일하면 여행경비가 조금 넉넉할 것 같다는 생각에 다윈에 사는 친척언니네부터 시작하여 퀸즐랜드 쪽을 돌아볼 심산으로 계획을 세웠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보지 못한 곳들을 둘러보아야 한다는 압박감도 있었는데, 결과적으로는 다음 사람이 일찍 구해진 터라 일을 생각보다 금방 그만두게 되었고 없는 돈으로 알뜰살뜰 여행해야 하는 짠내투어객 신세가 되어버렸다. 사실 얼마 없는 통장잔고를 보자 도중에 오지잡을 구해보겠다고 설쳐대지만 않았으면 하는 후회마저 들었는데, 그대로 한국에 가버렸다면 내 성격상 그 나름대로 미련을 두었을 것이 뻔하고 어찌 되었건 호주에서 시도해보고 싶던 일들을 모두 해보았으니 그것으로 만족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 되었건 후회는 남을 수밖에 없으니.


그렇게 한국행을 결정하고 돌연 생각보다 이르게 백수가 되어버린 나는 하루하루를 그저 보내지 않기 위해 노력하곤 하였다. 매일 걷던 거리도 이제는 곧 떠날 신세가 되니 매일이 새로워 보였고, 그 기간 안에 시드니는 많이 둘러보아야겠다는 마음에 구글 지도를 켜곤 어디를 가야 할지 매일을 물색하였다. 그 기간 동안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커피를 마시고 맥주도 한 잔을 기울이는 등 나 나름대로의 작별 인사들을 고해 왔고, 1년 동안 그래도 내 옆에 새삼 친구들이 많았다는 것에 감사할 수 있었다.

Darling Harbour Wharf
Watsons Bay
Manly Wharf
Shelly Beach

마지막으로 페리를 타고 돌아오며 노을 지는 하버브리지를 본 순간, 시드니가 살기 좋은 도시라는 것을 실감할 수밖에 없었다. 닿으면 코 닿을 거리에 해변가가 즐비하게 있는 데다 그곳에서 비치타월을 깔고 잠시 누워있다 오면 모든 근심과 걱정들이 한순간 해소되는 기분이 든달까. 물놀이를 좋아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주말마다 비치를 다녔던 도연이의 말에 공감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일요일의 시드니

마지막으로 시드니에서 혼자 가는 여행지일지도 모르는 닐슨 파크는 그러한 내 생각에 더욱 힘을 실어주었는데,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다소 휑한 공원의 끝자락에 해변가가 있는 것이 묘한 이질감을 주면서도 꽤나 아늑해 보였다. 마치 본다이비치의 축소판 같다고나 할까. 조그만 비치에는 어른이나 아이들 할 것 없이 태닝과 물놀이를 즐겼고 조그만 공원에서도 커다란 비치타월을 깔고 피크닉을 즐기는 모습이 마냥 평화로워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해변을 따라 공원 내부를 걷다 보면 밀크 비치로 향하는 산책로가 이어졌는데, 그 산책로를 따라 걸으면 광활한 바다가 펼쳐지는 진귀한 광경을 볼 수 있었다.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산책로의 끝자락에 이토록 아름다운 바다가 펼쳐질 줄이야. 그렇게 산책로를 걷다 보며 넋이 나가 바다를 보고 있자니 어느새 해가 저물고 있었고, 바다 너머 즐비한 건물들에 마치 바다 위에 건물이 지어진 것 같은 착각이 들곤 했다. 산책로를 끝자락에 다다르다 보면 조그만 밀크 비치가 나오는데, 그곳은 닐슨 파크에 위치한 비치와는 다르게 젊은이들이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놀고 있었고 씨끌벅쩍한 분위기와 다소 조그만 규모에 곧바로 산책로를 따라 닐슨 파크로 돌아왔다.

시드니에서 1년가량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낯선 곳에 홀로 떨어진 데다가 해도 저물고 있는 상황에서 나도 모르게 잔뜩 긴장하고 말았는데, 버스가 1시간에 1대밖에 없는 것을 미처 미리 알지 못한 나는 20분가량을 뛰고 걸으며 겨우 다른 버스 정류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때때로 시간을 맞춰 오지 않는 시드니의 버스시스템을 익히 겪어온 나는 버스가 미리 가 버린 것은 아닐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오매불망 버스를 기다렸고, 마침내 버스를 타고 익숙한 시티로 돌아오자 마음이 놓였다. 여행을 마치고 늦은 밤에도 영롱히 빛나는 타운홀을 볼 때면, 드디어 돌아왔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 정도였다.


호주의 바다와 우리나라의 바다가 풍겨오는 느낌은 사뭇 다른데, 어쩌면 그것은 바다를 즐기는 사람들의 문화 차이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몸매와 나이가 상관없이 비키니를 입으며 해변을 즐기는 문화와 주변 시선에 상관없이 태닝을 즐기고 여유를 부리는 모습 등. 시드니의 바다에 편안함을 느끼는 이유는 아름다운 ‘바다’ 자체보다도 그 바다를 즐기는 문화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홀로 느끼는 자격지심 일지 모르겠지만 나는 ‘몸매에 자신이 없어’라는 이유로 성인이 돼서 비키니를 입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Darling Harbour

그렇게 사람들을 만나고 나 홀로 짧은 여행을 간간이 하다 보니 어느새 다윈으로 떠나는 날짜가 코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달링하버에 있는 기념품 숍에 가 가족들의 선물을 무얼 하면 좋을지 고르고, 다윈에서 처음 만나게 될 조카의 선물마저 구입하자 여행을 떠나는 것이 실감되었다.


문득 여행을 끝내고 시드니로 돌아오는 계획을 짠 것에 있어 잘한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호주에서는 내 도시 같았던 시드니로 돌아와 미처 보지 못한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미처 다 가보지 않은 곳을 한 번 더 가보며 마무리를 할 수 있을 테니. 문득 지안이의 지인이 해주었다는 말이 떠올랐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이곳에서의 삶이 꿈같고 나 없이도 잘 돌아가는 시드니가 심지어 야속하게까지 느껴졌다는 그 말. 그 꿈같은 시간 안에 살고 있는 지금, 더 많은 꿈을 꾸기 위하여 더욱더 열심히 움직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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