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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 유 Nov 17. 2019

[D+365] 귀국 / 미워하고도 사랑했던 나의 시드니

시드니에서의 마지막 일주일

3주간의 다소 험난하고 외로웠던 여행을 마친 후, 시드니로 돌아오자 나는 잠시 동네로 돌아온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고작 1년을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불과 재작년까지 낯설고 무섭게만 느껴졌던 그 도시가 이렇게 포근하게 느껴질 줄이야. 시드니로 돌아와 한국으로 출국하기까지 5일가량 나는 한 명이라도 더 만나 시간을 보내려 부단히 노력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처 보지 못한 사람들이 남아있었지만.


당초 계획은 시드니에서 1년간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가보지 못한 관광지들을 둘러보는 것이었는데, 5일이라는 시간은 1년을 정리하기에는 턱 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3주 내내 호스텔을 전전하는 여행객 신세였던지라 시드니에 도착하니 이미 체력이 바닥이 되어있었고, 한동안 못 볼 친구들을 몰아봐야 했던지라 하루에 약속을 2개씩 잡곤 하였다. 그렇게 남은 일주일을 가족이 없던 외로운 타지에서 믿고 의지하던 소중한 사람들과 웃고 떠들며 아쉬운 마음으로 달랬다. 하루하루 출국일이 다가올수록, 이제 이 도시를 떠나야 한다는 생각에 유독 거리 곳곳이 더 예뻐 보였고 달링하버와 오페라하우스는 유난히 더 빛나 보였다. 마치 홀로 짝사랑의 종지부를 찍겠노라 다짐하는 사람처럼 서운한 감정이 들었달까. 나라는 사람이 시드니란 도시에 구성원이 아닌 철저한 이방인이었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 순간이기도 하였다.

그렇게 시간이 촉박하던 와중 나는 지난해 집을 못 구했다는 이유로 보지 못한 로얄 이스터 쇼를 보겠노라 다짐하였는데, 우연찮게도 티켓을 공짜로 받는 행운을 누릴 수 있었다. J와 함께 구경을 간 나는 우리 앞을 지나가는 커플들에게 직원들이 티켓을 무료로 나누어주는 것을 보았고 설마 하는 마음으로 다가가니, 직원이 티켓을 샀냐며 물어보곤 39불이나 하는 티켓을 서슴없이 나누어준 것이다. 쇼 마지막 날이었던지라 놀이기구들은 모두 반값에 탑승할 수 있었고 평일인지라 다소 한산했던 것을 제외하고는 출국 전 마지막 관광으로썬 꽤 충분한 이벤트였다.

Sydney Royal Easter Show

야경이 아름답기로 소문난 달링하버에서 마치 처음 구경 온 사람처럼 사진을 찍어댔고, 그다음 날 기념품 숍에서 가족들의 선물을 간단히 고른 후 마지막으로 오페라하우스와 달링하버가 보이는 카페에 앉아 내가 가장 사랑하던 공간을 눈에 담았다. 때마침 바다 뒤 편으로는 노을이 지고 있었고, 풍경이 가장 좋은 구석자리에는 이제 막 시작하려는 연인들이 서로 질문을 해대며 눈을 마주치고 있었다. 처음 시드니가 신혼여행지로도 유명하다는 것을 알았을 때 유럽도 아니고 휴양지도 아닌 이곳이 신혼부부에게 유명하다는 것에 자못 놀랐었는데, 시드니에 머무는 동안 그곳은 내가 본 많은 관광지 중 가장 로맨틱한 곳이 되었다.


외국살이가 유난히도 힘이 들거나 권태기에 허덕이고 있을 때, 나는 서큘러퀘이로 와 지치고 외롭고 힘든 마음을 애써 다독이곤 했다. ‘이토록 아름다운 풍경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볼 수 있잖아.’라는 생각을 권태감과 향수병이 들어선 자리에 애써 밀어 넣으면 잠시나마 시드니에 사는 지금이 행복해지는 것이다.

마음의 휴양지와도 같았던 서큘러퀘이를 떠나 1년 만에 킹스포드 국제공항에 도착하여 게이트 앞에서 줄을 서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지난 1년의 시간이 시원섭섭하며 무어라 말로 다 설명하지 못할 복잡 미묘한 감정이 들어서자 나도 모르게 왈칵 눈물이 나오고 만 것이다. 그렇게 비행기에 탑승 후 말레이시아를 거쳐 중노동에 가까운 비행 끝에 대한민국 인천공항에 다다랐다는 안내방송이 나온 뒤 게이트 앞에서 마중 나와있는 가족과 포옹하자 비로소 1년간의 워킹홀리데이가 끝났다는 실감이 들었다. 두려움과 설레임을 가득 안고 떠난 시드니가 어느덧 익숙하고도 반가운 내 도시처럼 느껴지는 데에 1년이란 시간이 흐른 것이다.


한동안은 한국을 여행하는 기분이 들 것이란 예상과는 달리 익숙하고도 친근한 우리 동네는 그 자리를 묵묵히 지켜온 것처럼 그 어떤 이질감도 느낄 수 없었다. 얼굴을 보자마자 울어버릴 것 같았던 가족과 친구들 역시 마치 어제 본 것처럼 어색하지 않았고, 따뜻한 전기장판에 누워 호주에서 미처 다 챙겨보지 못한 예능프로를 몰아보자 내가 시드니에서 1년을 살다 온 것이 꿈처럼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그런 나 자신에게 배신감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한국으로 귀국 후 일주일간 만나는 모든 사람들마다, 나에게 그런 질문을 던졌다. ‘돌아와 보니 어때’ 혹은 ‘한국(또는 호주)이 더 나아?’등등. 시드니에서 1년 동안 살며 배워온 것은 반드시 무언가를 이루지 않아도 그 자체만으로도 소중하고 가치 있는 시간이란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살면서 처음으로 여행객이 아닌 생활인으로서 외국에서 자취생이 되어본 것. 한국이었으면 하지 못할 경험들을 해보고, 직장인 4년 차라는 우쭐함에 해보지 못하였을 일을 해보며 가족 대신 의지하던 소중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함께 호주를 공유한 것. 어쩌면 영어가 늘어오거나, 돈을 많이 벌어오거나 혹은 반드시 호주인 밑에 일을 해본다거나 등의 목표에 다소 모자라다 할지라도 낯선 외국에 나가 스스로 집세를 내고 밥을 벌어먹고 산 것만으로도 모든 워홀러들이 잘했다 격려받아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성공적인 워킹홀리데이는 있어도 실패한 워킹홀리데이는 없는 것이다.


4개월간 직장생활을 병행하며 치열하게 공부했던 영어는 여전히 무겁기만 하고 어쩌면 내가 영어가 조금 더 유창했더라면 더 풍부한 생활을 영위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다만 그런 아쉬움이 있기에 적어도 한국에서 영어공부를 하는 그 순간만큼은 공부가 아닌 또 다른 유희가 될 것 같아 한 편으로는 위로가 된다. 나의 공백 기간 동안 자신만의 커리어를 쌓아온 친구들을 보자니 내심 조급함이 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드니에서 살던 1년의 추억만큼은, 삶이 권태로울 때마다 이토록 찬란한 시절을 보냈노라며 꺼내볼 수 있는 청춘의 한 편이 될 것이다. 그렇게 때로는 미워하고도 사랑하였던 나의 시드니 안에서.

나의 동네 그리고 내 방안의 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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