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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 유 Nov 13. 2019

[D+318] Luna Park / 둘도 없는 지안킴

호주의 유명 놀이동산인 루나파크를 다녀오다

지난 글을 이후로 시간은 어느덧 세 달을 향해 접어들었다. 그간 새로 들어간 스시집에서 도통 적응하기 힘들었던 나는 출근 전이면 매일 트레인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울기 바빴고, 점심시간 그 짧은 시간에서조차 우울함을 견디지 못하고 10분을 멍하니 허공만 응시하다 복귀하는 날의 연속이었다. 왕복 2시간 통근시간에 12시부터 9시까지라는 비효율적인 근무시간, 소규모 가게의 웨이트리스임에도 불구하고 잡다한 일을 모두 스스로 해야 한다는 부담감까지. 그 모든 것들에 지쳐 집에 오면 그대로 뻗어 자기 일쑤였고, 주말에는 무슨 보상심리에서인지 밖에 쏘다니기 일쑤였다.


무엇보다 나는 도무지 펜과 종이로는 글을 쓸 수 없는 사람이었기에, 노트북이 제 기능을 못한 시점부터 제대로 된 글을 쓸 수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어영부영 지나다 보니 어느덧 세 달이 지났고, 아침마다 ‘이건 사람 사는 게 아니야’를 속으로 외치며 출근하는 날 이어졌다. 게다가 그 기간에 나는 외국에서 처음 생일을 맞이하게 되었는데, 한국에서도 생일을 꽤나 유난스럽게 보내는 축에 속했던지라 외국에서의 생일 역시 조용히 지나가고 싶진 않았다. 다행스럽게도 이곳에서 친동생처럼 느껴지는 지안이가 있어 외국에서 보내는 첫 생일을 꽤나 왁자지껄하게 보낼 수 있었지만.

지안이가 사준 생일상과 채스우드 도서관

생일에 루나파크를 가게 된 것은 순전히 내 의견이었는데, 워낙 아기자기한 것을 좋아하고 놀이공원을 좋아하는지라 나에게 있어 ‘루나파크’는 시드니를 떠나기 전에 꼭 한 번은 가보아야 할 관광지 중 하나였다. 루나파크는 시드니와 멜버른의 유명 관광지로 뽑히는 명성과는 다르게 사실 호불호가 꽤나 강한 관광지 중 하나이다. 한국의 롯데월드 내지는 에버랜드를 상상하고 온 사람들이라면 어린이대공원보다도 적은 놀이기구 수와 그 규모에 크게 실망한 나머지 주위 사람들에게 ‘정말 볼 것 없더라.’를 전할 것이며, 큰 기대 없이 그저 놀이동산이 주는 동심과 그 밝고 명랑한 분위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만족하며 구경할만한 그런 곳이랄까. 그러니까, 쉽게 말하자면 루나파크는 에버랜드보다도 용마랜드에 가깝다.


애당초 나 역시 그런 말을 들었던지라 별 기대 없이 지안이에게 시드니를 떠나기 전 가볼 만한 곳은 다 가보아야 하지 않겠냐며 권하였고 그렇게 우리는 다소 흐린 날씨에도 불구하고 루나파크로 향하게 되었다. 루나파크로 가는 길목에서 우리는 운 좋게 주말 마켓을 구경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간단한 요깃거리와 눈요기를 한 뒤에 루나파크로 입성하였다.

루나파크 입구는 ‘놀이동산’의 이름이 무색할 만큼 거대하고도 기괴한 피에로 얼굴을 하고 있는데, 그 앞에서 꽤 많은 사람들이 기념사진을 찍고자 북적거렸다. 오죽하면 놀이기구가 목적인 사람들은 그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것으로도 충분하다는 말이 나올까. 그러나 막상 루나파크로 입성한 우리는 그곳의 밝고 명랑한 분위기에 금세 기분이 들떠버렸다. 입구에 위치한 기념품 가게에서 한참을 구경하다가 연신 사진을 찍어댄 뒤, 생각보다 재밌어 보이는 놀이기구들에 마음에 뺏겨 20불이나 주고 이용권을 끊을 정도로. 심지어 ‘에이- 저걸 타고 왜 소리 지르는 거야’라고 생각하였던 롤러코스터조차 재미를 느꼈을 정도였다. 에버랜드의 무시무시한 T-익스프레스에 익숙했던 내가 고작 청룡열차보다도 규모가 작은 어린이 열차 수준의 롤러코스터에 소리를 지르다니. 우리는 어이없게도 그 조악한 롤러코스터에서 내린 뒤 다리가 후들거렸다.

그 후에 우리는 서로의 인생 샷을 남겨주기 위해 여러 장소를 물색하다가, 마음씨 좋아 보이는 인도 아저씨에게서 그럴듯한 사진을 건질 수 있었다. 게다가 생일이라는 이유로 아이스크림을 한 덩어리를 더 받기도 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나는 지안이에게 마치 여행하러 온 사람 같다며 말했고 지안이는 내게 ‘나는 그냥 여행 왔다고 말해.’라며 답했다. 지안이가 대답한 그 말에 들어있는 사소한 힘이 꽤나 신기하게 느껴졌는데, 서로가 다음날 다시 출근해야 하는 처지임에도 불구하고 ‘여행하러 왔어’라는 말 한마디가 우리를 여행자의 신분으로 금세 탈바꿈시키는 것이다.

뒤이어 우리는 루나파크 한가운데에서 보이는 퍼레이드를 보며 놀이공원에서 일하면 재밌을 것 같다며 이야기를 나누다, 문득 퍼레이드 직원 두 명이서 꽤나 심각한 이야기를 나누며 화장실로 들어가는 것을 기억하고는 어쩌면 저 사람들도 겨우 웃으며 일할지도 모른다며 우스갯소리를 나눴다. 세상에 즐거운 노동이라는 게 당최 존재하긴 한 걸까. 누군가 자신의 일에 있어 즐거움 내지 보람을 느낀다면 그 일에 어떤 단점들이 수반된다 할지라도 그 일을 하는 것에 주저함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다시 사서로 일하고 싶은 이유의 전부일지도 모른다.


누군가와 우연히 만나 다시 낯선 도시에서 조우하여 서로 의지하며 생활해왔다는 것은 어렵고도 대단한 일일 것이다. 시드니로 경유하는 광저우에서 우연찮게 만난 우리는 서로가 그 1년 동안 꽤나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었는데, 생각해보면 잠시 스쳐 지나가는 인연으로 치부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친구로 시드니를 공유해왔다. 낯선 도시에서 생일을 맞이하였을 때 마치 ‘당연하듯이’ 시간을 내어줄 수 있는 친구, 각자 살던 도시로 찢어진다 하더라도 그것에 크게 개의치 않고 시간을 만들어 만나러 가고 싶은 친구. ‘친구’라는 단어가 나이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 동생. 한 사람에게서 이토록 수많은 수식어가 붙을 줄이야. 나에게 있어 그녀는 나의 호주 생활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비중 있는 사람이었다.


루나파크를 함께 다녀온 뒤로부터 한 달 후, 지안이와 나는 어느덧 각자의 호주 생활을 청산하고 돌아가야 할 입장에 놓였다. 지안이는 유럽여행을 돌연 취소하고 스페인행을 택했는데, 모두가 한다고 해서 퍽 내키지 않는 일은 하고 싶지 않다는 그녀의 결정과 결단이 새삼 멋있게 다가왔다. 어쩌면 시드니보다 더 낯설 유럽 국가에 두 달 가까이 거주할 그 친구가 걱정되지 않는 것은, 누구보다 강단있는 그녀가 낯선 곳에서 그만의 행복을 찾을 것이라는 어떤 확신 들어서일지도 모르겠다. 벌써부터 나는 그녀와 한국에서 다시 만나 서로의 생활을 공유하며, 우리가 여전히 좋은 친구임을 다시 달을 것을 확신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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