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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 유 Nov 08. 2019

[D+276] 신년 불꽃축제 / 길을 잃다

향수병에 길을 잃어버리다


스트라스필드 역 앞 트리
도연이와 함께 간 Coogee Beach

한국에서의 나의 신년행사는 가족들과 함께 연말 시상식을 보며 귤을 까먹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니까 한창 누가 최우수상을 타고 누가 대상을 타는지에 대해 말하다 MC들이 돌연 카운트다운을 외치며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를 말하는 순간, 아 새해구나 하고 실감하는 것이다. 나는 연말과 신정은 가족과 함께라는 생각이 어렸을 적부터 있던지라 커서도 친구들과 혹은 새해의 카운트다운을 함께 외친 적이 없었는데, 이번 새해는 그런 연유로 해외에서 보내는 첫 새해임과 동시에 가족이 아닌 사람들과 보내는 첫 새해가 되었다.


시드니 불꽃축제는 사실 주변 친구들에 비하여 큰 관심은 없었는데 그런 축제가 한다는 것조차 몰랐고 무엇보다도 새해를 외국에서 보낸다는 사실이 퍽 덤덤하게 다가왔다. 물론, 막상 12월 31일이 임박해올수록 해외에서 보내는 첫 새해에 대한 기대감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커져갔지만. 드디어 2017년의 마지막 날, 친구들과 함께 노스 시드니의 작은 공원에서 불꽃놀이가 시작되기만을 기다렸다가, 이제 곧 얼마 있을 진귀한 광경을 위하여 사람들을 따라 도로변 한가운데에 자리를 잡았다.


곧이어 하버브리지 위로는 곧 2018년도가 시작됨을 알리는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고 사람들 모두 ‘하나 둘 셋!’을 외치는 순간, 사람들의 탄성과 함께 세계에서 유명하다던 시드니의 불꽃축제가 시작되었다. 폭죽 소리와 함께 하늘 위로 수놓아지는 현란한 불꽃들에 나 역시 그저 넋 놓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고 나는 연신 ‘이쁘다’를 외치며 카메라 뒤로 보이는 불꽃들을 놓칠세라 발꿈치를 들고는 조금 더 눈에 담으려고 애썼다. 사실 이토록 커다란 불꽃축제는 생애 고작 두 번째인지라 나는 마치 처음 불꽃놀이를 본 아이처럼 그저 ‘우와’만을 외칠 수밖에 없었는데 ‘외국에서 새해를 맞이하고 있는 지금’이라는 다소 낭만적인 배경이 나를 조금 더 들뜨게 만들었다.


그렇게 아름다웠던 새해를 보내고, 정확히 14일이 흐른 지금까지 나는 꽤 다사다난한 일들을 겪었다. 그토록 원하던 로컬 카페에서 일자리를 구했지만 직원 수에 대비하여 현저하게 적은 손님 탓에 보스는 결국 인당 주 쉬프트 10시간을 감행하였고, 나는 결국 다시 스시집에 지원한 것이다. 사람 마음이 참으로 간사한지라, 생소하고도 어려운 카페 일에 내심 일식당이 그리웠었는데 다시 스시집에 돌아와 일을 시작하니 ‘내가 왜 이곳에서 이러고 있지?’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아무리 동종업계에서 경력이 있다 한들 새로운 곳으로 가면, 그곳에 또 적응해야 하는지라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고 더군다나 새로 들어간 식당은 기존에 있던 직원들이 대거 빠져나간 탓에 사장님 눈치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가뜩이나 손님이 많은 곳은 아닌 데다가 저녁에는 사장님과 나 단둘이 일하다 보니 실수를 하게 될까 연신 긴장하였고, 그 덕에 잦은 실수가 늘어나게 되니 더욱 눈치를 보이는 악순환이랄까. 사장님께서 일을 더 빨리 배워야 한다는 압박감을 주시는 것은 전혀 아니었지만 아르바이트생 입장에서 오너와 단둘이 일한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적잖은 스트레스를 주기에 충분한 환경인 것이다.

Curl Curl Beach

꽤 여러모로 골치 아픈 일들을 겪고 난 후 기분이 가라앉아있던 와중, 지안이와 마미 그리고 지영이가 컬컬 비치로 놀러 간다는 말에 귀찮음을 무릅쓰고 따라나섰다. 당초 계획은 하루 종일 집에 있으면서 밀린 예능프로그램들을 보면서 요양에 가까운 여유를 부릴 계획이었지만, 이곳에서 남는 것은 관광이라는 생각에 무려 2시간이나 되는 이동시간을 무릅쓰고 합류한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는 성인이 된 후 처음으로 바닷물에 온몸을 적셔가며 파도에 소리를 지르고, 젖은 모래에 그림을 그리며 놀았다. 다만 신기한 것이 하나 있다면 그토록 재밌게 물놀이를 하고 한적한 모래사장 위에 누워 바닷소리를 들으며 잠을 청하는데도 시드니에 살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되려 이제 해볼 만한 것들을 모두 해보았으니, 오히려 미련이 없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모든 일에는 3,6,9에 한 번씩 권태기가 찾아오듯 나 역시 다시 그 시기가 돌아온 듯하다. 요즘 들어서 한식이 아니고서는 굳이 돈을 써가며 사 먹진 않고, 최근에 한국 예능을 몰아서 보는가 하면 내가 좋아하는 예쁜 팬시문구류들을 볼 때마다 한국이었으면 당장 샀을 텐데를 연발하게 된다. 더군다나 한국에서는 어찌 되었건 나 스스로가 무언가를 기획하고 진행하는 자기주도적인 업무를 할 수 있던 반면에 이곳에서는 철저히 누군가의 밑에서 잦은 지적과 주의를 받아 가며 일을 해야만 하는 상황인지라 그 괴리감이 더욱 크게 찾아오곤 한다. 심지어 이렇게 몸으로 하는 일의 경우, 순간적인 실수와 판단이 곧이곧대로 결과로 보여는 지라 사무직에 익숙한 나로서는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는다. 물론, 이는 굳이 한국과 호주의 문제가 아닌 근무환경의 문제일 테지만. 심지어 장녀 콤플렉스마저 있는 나는 부모님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크게 전달하지 않는 편이어서 부모님과 통화할 때면 나의 밝은 면만 보여드려야 할 것 같은 마음에 쉽게 전화를 드릴 수 없었다. 오롯이 혼자 고립된 듯한 이곳에서, 나는 몸서리치게 외로워 도무지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결국 나는 약속을 마치고 홀로 집에 돌아와 침대 방구석에 앉아 엉엉 울어버렸다. 하도 울어서 더 이상 눈물이 나오지 않고 심지어 머리마저 아프고 눈이 부어 아플 정도로. 한국에서는 아무리 서러운 일이 있었더라도 그저 조금 눈물을 훔치는 것이 고작이었는데, 누군가 나에게 험한 소리를 하지도 않고 욕설을 퍼붓는 일 따위도 없었음에도 그렇게 서럽게 울어버리다니. 그렇게 울고 난 후 오히려 속은 시원해지기보다도 되려 어지러웠다. 이곳에서 나는 도대체 무얼 하고 있는 것일까. 속된 말로 나는 호주에서 스시를 팔려고 온 것은 아닌데. 한국에서는 비록 지금보다 노동시간 대비 적은 월급이었을지라도 뚜렷한 목표가 있어 그것을 향해 힘을 낼 수 있던 반면, 지금은 여기서 내가 도무지 무얼 하고 있는지를 도통 모르겠다. 호주에서 80여 일이 남은 지금, 나는 향수병에 치여 길을 잃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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