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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 유 Sep 24. 2020

마이 리틀 포레스트

숲길 예찬

왕릉을 끼고 있어 개발과는 거리가 먼 우리 동네가 어릴 적엔 꽤 벗어나고 싶었다. 이 시골 동네에서는 변변찮은 카페도 찾기 힘들고, 심지어 패스트푸드점에 가려면 버스를 타야 하는 시절도 있었다. 이 근방에서 중학교까지 나온지라 어릴 적에 소풍이라면 빠지지 않고 등장했던 릉이 너무도 지겨웠고, 화려한 대도시의 삶을 꿈꾸던 때도 있었다. 이러한 연유로 최대한 고향과 멀어지고자 구태여 먼 고등학교로 진학을 하는 수고도 해보았지만, 결국 첫 직장을 집에서 도보 10분 거리로 잡으며 이순신 동상을 보며 출근하길 바라던  기대는 사라져 갔다. 집 근처에 이토록 좋은 숲길이 있는 것도 잊은 채.


어릴 적 다이어트를 한답시고 한두 번 올라가 보는 것이 전부였던 이 숲길을 좋아하게 된 계기는 그 후 1년간 정말 '이순신동상'을 가로질러 출근한 이후였다. 평생을 한적한 동네에 살아온 나는 한여름이면 열기가 발바닥부터 올라오는 아스팔트가 도통 적응되지 않았고, 어릴 적 로망이었던 광화문은 막상 출퇴근을 하고 보니 곤욕이 따로 없었다. 출근길은 그저 출근길이었을 뿐이라는 것을 출근을 하고 나서야 알았다.


그 이후, 호주에서 최대한 우리 동네와 비슷한 환경의 동네를 고르고 집 앞에 넓지막한 공원에서 햇살을 만끽하며 책을 읽는 호사를 누릴 때마다 종종 우리 동네의 숲길이 떠올랐다. 접근성이 좋지 않은 시티에서 조금 벗어나 30분을 버스 타고 들어가야 하는 동네에 살면서도 만족했던 것은 그 동네의 분위기가 마치 고향을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었다. 반대로 시드니에서 돌아와 동네에서 살 때면 종종 시드니에서 살았던 작은 동네가 떠올랐다. 나는 어쩔 수 없는 시골 사람이라는 것을 실감하며 그렇게 주말마다 숲길을 올랐던 것 같다. 봄이면 흐드러지게 피는 벚꽃과 여름이면 맡을 수 있던 싱그러운 숲 냄새. 가을에 볼 수 있던 단풍들과 겨울이면 쓸쓸하고 적막한 기운을 내뿜던 이 숲길을 10년이 지나고 나서 사랑하게 된 것이다.


이후로 종종 서울로 나갈 때가 되면 친구와 함께 공원을 찾는 일이 잦아졌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실내에서 커피를 마시던 일상이 공포가 되기 그전부터, 회색 도시에서 풀색이라도 보이는 날에는 곧장 그곳에 터를 잡았다. 30대 중반 이 되면 부모님과 독립하여 1인 가장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막상 이 숲길에서 멀어져 살 생각을 하니  아쉬움이 먼저 들었다. 앞으로 1인 가구의 삶을 살게 된다면 집 근처에서 도보로 공원을 갈 수 있는 곳으로 정해야지. 이토록 좋은 가을날에 원하는 만큼 풀 내음을 잔뜩 맡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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