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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 유 Nov 08. 2020

추도문

고등학교 시절 내 별명은 '박지선'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별명을 최초로 이름 지은 사람은 지금까지 인연을 유지하고 있는 친구인데, 그 친구에게 남은 악감정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별명은 어린 시절 상처로 남았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그 별명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별명을 소스라치게 싫어한다거나, 별명의 대상인 당사자를 싫어한다는 일은 없었다. 어린 시절에도 외모 비하로 놀림감이 된다는 것이 문제라는 것은 인지하고 있었고, 별명을 지은이조차 무언가 깊은 뜻이 있어서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저 무지함과 무례함과 애정이 혼합된 이상한 현상이라는 것을 당시에도 나는 알았다.


신기하게도 어릴 적부터 그 별명을 들어와서인지, TV에 등장하는 지선언니가 친근하게 느껴졌다. 그 경쟁률 높다는 고려대에 들어가서 본인만의 신념으로 희극인의 길을 택한 것도 퍽 멋있어 보였다. 오로지 '외모'만을 이유로 그녀의 이름을 별명으로 붙여준 친구들에게 겉으로는 웃어넘겼지만 '그래도 그 언니는 공부도 잘했어'라며 속으로 대수롭지 않은 양 넘겼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녀가 멋지고 좋은 사람이었기에 나 역시 상처받지 않고 넘길 수 있던 것 같다.


그런 그녀가 별안간 세상을 떠났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마도 그녀가 어릴 적부터 겪었던 피부질환이 그 이유였을 거라는 추측들이 돌았다. 차마 그녀를 혼자 보낼 수 없어 함께 가는 길을 선택한 그녀의 어머니까지 모두 다 안타깝고 서글픈 마음에 하나 둘 추도문을 올렸다. 그 추도문에 아무런 연고도 없던 나이지만, 보태보려 한다. 언니 덕분에 나 역시 덜 상처받을 수 있었노라고. 그리고, 부디 그곳에서는 언니가 겪지 않아도 되었을 모든 고통들에서 자유롭기를. 언니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과, 언니 곁을 함께하고자 선택한 언니의 어머니와 함께.





photo : Felix Mittermeier 님의 사진, 출처: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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