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서 유 Jul 27. 2021

평균이 될까봐 불안한 삶에 대해

<대화의 희열 3 Ep2: 제시편>을 보고

KBS2 제공 / 대화의 희열 3 2화

어릴 적부터 줄곧 나는 어딘가 별나다고 생각해온 것 같다. 살아오면서 생기는 무리 집단 내에서 겉으로는 누구보다 대인관계를 잘 유지해오고 있다고 생각해왔지만 사실 그 속에선 홀로 겉돌게 하는 어떤 벽들이 존재했다. 그것들이 켜켜이 쌓이고 쌓이다 보니 종국에는 '나는 이 나라와 맞지 않아'라는 일반화가 신념처럼 자리 잡기 시작했고 그렇게 별안간 이민을 꿈꿨다. 물론 영어실력도, 자본도, 서빙과 요리 등 이민국에서 당장 먹고살려면 해야 했던 직종에서 재능이 바닥을 보인 나는 그 사회에서도 적응하기 힘들었고 한국에서 확실한 정체성을 가지고 일하던 시절을 그리워하다 1년 만에 그 생활을 청산했다. 돌아오면 줄곧 한국에서의 삶에 만족해하며, '한국이 최고야'를 입에 달며 살 것 같았지만 이제 나는 그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시기를 기점으로 대인관계에 대한 관점이 꽤 많이 바뀌었다. 종종 호주를 가기 전에 내가 더 그립다는 말을 대놓고 듣기도 했지만 나는 그저 내가 오랫동안 가진 생각들을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을 뿐, 내 관점이 변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그저 내가 유난스러우리만큼 예민한 사람은 아니었다는 안도감을 얻었을 뿐이었다.


어느덧 한국에서 정착한지 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 시간 동안 나는 되려 호주에서는 입지 않았던 스타일의 옷들에도 관심을 보이며, 끊임없이 팝송을 듣고 미드를 찾아보며 다른 문화권에 대한 관심이 되려 증폭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외국에 대한 환상과 미련 같은 것들이 남아서는 아니었다. 한국을 벗어난 그곳 역시 유토피아가 아니었음을 이미 나는 처절히 실감했고, 한국인이 한국에서 살았으면 겪지 않았을 부조리와 부당함을 몸소 체험하며 오히려 언어가 안된다는 이유로 내 주장을 힘껏 펼치지 못하며 좌절할 때도 있었다. (그렇다고 한국에서 할 말을 시원하게 내지르는 것은 아니다) 그러다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속 마크 테토의 말이 벼락처럼 떨어졌다. 미국인도, 한국인도 아닌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외로움을 느꼈다는 그의 말에서.


고작 1년의 외국생활로 내가 호주인 특유의 문화를 적극 체험했다거나 그들의 문화에 동화될 만큼 교류한 것은 아니다. 그저 나는 내가 살아오며 느꼈던 갑갑함과 이해되지 못하는 선 같은 것들이 어떤 문화에서는 효용 된다는 것을 알았을 뿐이다. 그저 나는 인생을 다시 시작하는 느낌을 들게 만들었던 낯선 도시에서, 아이가 이제 갓 말을 배우듯이 인생을 다시 설계해야 했고 그 속에서 체득한 다양성들을 잃지 않으려 한국에서도 애를 썼던 것이다. 서툰 영어일지라도 분명 한국어로는 체감할 수 없는 당당함 같은 것들이 존재했고, 이런 나의 다양한 경험들과 한국에서 자란 나의 고유한 정체성들이 두루 섞여 나는 그 어느 것 하나도 쉬이 잃어버리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



제가 회사 생활을 10년째 하고 있는데

살다 보면 인생이 자꾸 평균으로 수렴하는 편이라고 했잖아요.

저는 이걸 너무 느끼는 게

10년 전에 있었던 내 삶의 굴곡이 진짜 많이 깎여나가는 게 느껴져요.

그러면 마음이 되게 갑갑하고 가끔 공허해요

돌아보니까 나의 고유한 특징이 다 사라지려고 하는 거예요.

그럴 때 생각나는 게 나보다 오래 산 사람이나,

나랑 다르게 사는 사람 얘기를 자꾸 찾아보고 싶어요.

어디 참고서가 있나.


다른 사람들은 이런 정체성의 위기를 어떻게 극복했나 보는데

제시처럼 이렇게 다르게 사는 사람 있잖아요.

나는 나대로 살거야, 나는 남들과 다른게 두렵지 않고 오히려 그게 나야

라고 얘기를 해주는 게 되게 위안이 돼요.


대화의 희열 3 : 제시편, 신지혜 아나운서



KBS2 제공 / 대화의 희열 3 2화

현재 나는 누구보다 보수적이라고 칭할 수 있는 집단 내에서 소수의 직종으로 일하고 있다. 그런 곳에서 직장인으로서 산다는 것은 이제 곧 얼음이 되기를 기다려야 하는 물과도 같다. 자연의 섭리대로 자연스레 녹고, 어는 그런 것이 아닌 정갈히 씻겨진 얼음틀에 내 몸을 온전히 뉘여야 하는 그런 물. 신지혜아나운서의 말이 좀처럼 동감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내 삶이 안정적일수록 평균에 수렴하는 삶을 살아야만 할 것 같은 불안감도 더러 따라왔다. 자리 잡기 전에는 그토록 갈망하였던 '안정적인 직장'을 얻자 나는 평범한 삶의 궤도에 올라왔다는 안도감에도 불구하고, 나라는 사람이 차츰 희석되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들이 더러 따라왔다.


그럴수록 팝송을 찾아듣고 미드를 보며, 의미 없이 웃고 떠들 수 있는 1회성의 영상들보다는 남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영상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별종으로 취급받던 제시가, 불호를 넘어서 대중적인 호감을 얻기까지 버틴 그녀의 수난을 들으며 나는 신지혜 아나운서처럼 모종의 위로를 얻었다. 외적으로 보이는 것들에 비하여 나는 꽤 진취적인 사람이라 스스로 자부하고 있고, 때때로 공직사회에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생각들을 품으며 사는 내가 별종임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다. 이곳저곳 어디에도 어울릴 수 없을 것 같은 나 스스로를 채근하는 것을 그만두고, 그저 어울리지 않은 채로 이 사회에서 살아가면 된다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잃지 말아야 하는 나만의 어떤 것들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다시금 되짚으면서.


더불어 때때로 예술로서 결국 대중에게 인정받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나는 더욱이 마음이 동화되어 눈시울이 붉어지곤 한다. 예전에는 좀처럼 알려지지도 않고 알아주지도 않는 글들을 써서 뭐하나 싶을 때도 더러 있었지만, 나 역시 언젠가 꾸준히 버티고 써오다 보면 이렇듯 내 글들도 어느 날엔간 빛을 볼 일이 있을 거라고. 그렇게 나의 자리에서 찾아온 기회들을 내치지 않고 해내고 버티다 보면 나 스스로 내 어깨를 두드리며 잘했다고 위로할 날들이 찾아올 거라고.


매거진의 이전글 더디고 더딜지 몰라도 끝끝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