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글들의 무덤에는

지난 글에서 연애의 흔적을 발견하고 지우는 일에 대해

by 사서 유

작가이력에 새롭게 생긴 커리어를 추가하기 위하여 브런치를 둘러보다가 문득 내가 쓴 글을 다시 읽고 싶어졌다. 최신 글부터 눈으로 대충 훑으며 읽어가다가, 영화 <her>의 리뷰에서 전 애인에 관해 내가 어떤 문단을 적은 것을 발견했다. 문단의 내용은 대충 이러했다. 지금 만나고 있는 나의 애인은 관계에 있어 끊임없이 흔들리는 나를 단단히 잡아주는 사람이라고. 그 문단처럼 우리의 연애가 끝끝내 한 명의 노력으로 유지될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곧 얼마 못가 헤어졌고 뒤늦게 그 문단을 발견한 나는 고민하다 이내 통으로 그 문단을 삭제해버렸다. 지나간 사람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했고, 한 편으로는 이제는 덧없고 의미 없어진 그 문단을 구태여 남겨둘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이윽고 LA여행기 마지막 글에서도, 나는 또 그와 비슷한 문장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영화 <라라랜드>를 늦은 시각 극장을 찾아가 홀로 보며 울던 내게 이제는 그 영화를 같이 볼 사람이 생겼다는 말. 그 문장은 마치 잘못 그려진 부적같았고 나는 끝내 그 영화를 함께 보지 못하고 헤어졌다. 만난 시간이 짧아서일 수도 있겠지만 그저 그 영화를 함께 공유하지않을 만큼 우리는 서로에게 의미 없는 사람으로 향해가고 있었을 뿐이었다. 나는 그 문장을 지우고, '이제는 이별에도 의연해하며 애쓰는 법을 아는 사람이 되었다.'라고 고쳐 적었다.


글을 적은 당시 나의 감정을 위하여 그 글들을 남겨두어야 하는지 고민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글을 지운 이유는, 그런 글을 적었던 과거의 내가 낯간지럽다거나 혹은 지난 과거이기에 전 애인과 함께 찍은 사진을 지우듯이 지워버리는 그런 유치한 이유에서도 아니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나는 그때 부던히도 애를 써왔던 것같다. 이번만큼은 상처 받고 싶지 않다는 불안함, 관계가 허망하게 끝나면서 찾아오는 공허함을 느끼고 싶지 않다는 애씀, 이번만큼은 나라는 사람이 놓치기 얼마나 아까운 사람인지를 아는 이이기를 바라는 희망과 사랑받고 싶다는 어떤 허망한 바램까지.


애석하게도 그런 불안함과 공허함 그리고 애씀, 바램을 느끼게 하는 연애가 이미 서로에겐 끝이 정해진 연애였다는 것을 당시엔 알지 못했다. 서로가 너무도 다르고 맞지 않은 사람들끼리 만나면서 따라오는 불협화음인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관계가 깨지기를 원치 않았고 그러다 보니 애써 노력하고 애쓰며 헤어지는 것이 서로에게 답인 것을 부정하며, 부정할수록 좋았던 점들만을 집중하며 그런 글들을 적은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지웠다. 의미가 되기를 바라며 썼던 글이 실은 의미가 없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과도 같아서.

영화 <클로저>에서 자신을 사랑한다는 댄에게 앨리스는 사랑이 어디 있냐며 물었다. 볼 수도, 만질 수도, 느낄 수도 없는 사랑을 몇 마디 공허한 말로 들을 수 있겠지만 그 공허한 말로는 아무것도 할 수없다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사라진 글들의 무덤에는 과연 무엇이 남아있을까 하고. 어쩌면 지워진 내 글들은 그녀의 말들과 함께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그런 덧없는 사유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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