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한 달 쓰기 도전 프로젝트, 2024.12.15.
며칠 전 회사 노조 여성부의 주최로 진행되었던 여성 리더와의 좌담회. 그날 굉장히 감사하게도 두 분의 여성 리더분들을 만날 수 있었고 그중 한 분은 예술을 잘 모르는 나도 기억하는 '김치앤칩스' 대표 손미미 작가님이었다. 가슴이 벅차오르는 알찬 3시간 동안의 좌담회를 돌아오는 길 글로 기록할 생각으로 가슴이 벅차올랐으나, 저녁에 피자와 함께 곁들인 맥주와 함께 돌아와 그대로 잠이 들었다.
그리고 다시 그날의 이야기를 차곡차곡 써 내려가 보려 하였지만, 역시 알콜과 함께 그날의 기억과 감정들은 많이 휘발되었다.(물론 어느 정도는 기억하지만, 그게 그게 아니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미미 작가님이 마지막 당부말씀으로 하신 '사유하는 삶을 살아가길 바란다'는 이야기는 오랫동안 머릿속을 콕콕 두드리고 있다. 사유하는 삶을 살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국 악의 평범성에 들어서기 쉽다는 논지의 이야기였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게 참 생활의 지혜는 아닐지언정 삶의 지혜를 받았다는 생각이 든다.
악의 평범성을 처음 이야기 한 한나 아렌트에 대하여도 이미 알고 있었지만, 여성리더십을 이야기하는 자리의 마지막 당부로 접하게 될 생각은 상상도 못 했으니, 참 의외의 결론이라 더 기억에 남았던 것 같기도 하다. 크게는 나라의 명운을 좌지우지하는 한 사람의 아집, 작게는 직장 내에서 누군가를 향한 작은 오해와 그로 시작되는 악의. 그 모든 악은 특출 나지 않고 대단하지도 않다. 다만 그만큼 내가 '악'이 될 수 있는 가능성 역시 무지각의 평범함에서 시작될 수 있음을 생각하고, 경계하며, 깨어있자는 이야기로 이해했다.
세상을 아우르는 여러 관계와 그 속에 얽힌 감정들은 크게 선의, 악의, 무관심 정도로 나뉘는 것 같다. 나는 꽤 오랫동안 이해할 수 없는 악의에 대해 많은 감정을 소모했다. 타인의 나를 향한 악의, 그리고 나 자신의 타인을 향한 악의. 특히 과거에 겪었던 그 악의의 감정들을 뒤늦게 깨닫으며 분노하고, 부끄러워하고, 이해해 보려고 부단 노력해보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제와 생각하면 결국 부질없는 노력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때 그 시절의 나와, 타인의 악의는 대단한 이유와 명분을 지닌 건 아니었을 것이다. 누군가, 혹은 나에 대한애정, 실망감, 오해, 질투, 원망 뭐 처음엔 일상 속에서 순간 느낄 수 있었던 소소한 감정들이 잘못된 시기와 선택으로 지극히 평범한 누군가가 누군가에게 참 지독한 악으로 발현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남들의 지독한 악의의 대상자가 되어보기도 하고, 또 누군가에게 지독한 악의를 품어보기도 한 나를 돌이켜 보았을 때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가를 따져 생각해 보아도 도통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실 그 악의 발현은 그리 인상적인 순간이 아니었다는 것을 새삼 또 생각해 본다.
어찌 되었든 생각보다 미미한 시작이기에 빠지기도 쉬운 그 잘못된 길을 경계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건 역시 멈춰 생각해 보고, 멀리서 바라보고, 잠깐 뒤돌아보는 그 사유의 시간들이라 생각한다. 내가 누군가에게 큰 고통과 시련을 주는 이가 될 수 있음을 경계하며 살아간다면, 아주 작은 악의 탄생은 미연에 방지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생각들을 서로 하고 살아간다면 좀 더 덜 고통스러운, 악의가 사그라드는 세상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무작정 한 달 글 쓰기를 해보고 싶어 시작했는데 결국 일주일도 못 가 슬슬 며칠씩 빼먹어 이 빠진 모양새가 썩 좋지 않게 되었다. 부끄러우면서도 그럼에도 계속 글을 쓰고,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이유를 또 생각해 보았는데 아무래도 글쓰기만큼 사유하기 좋은 수단이 없기 때문인 것 같다. 정돈된 생각을 다시 정돈하는 일련의 과정들이 나를 좀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가는 의문이 든다. 하지만 내가 좀 더 추한 사람이 빠져드는 것은 경계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고로 나는 좀 더 이 모자란 글쓰기를 계속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