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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서관에 사는 남자 Mar 31. 2016

#7. 누구에게나 한 번쯤 고비는 있다

내가 실패에서 배운 것들(1)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언제였나요?


왠지 면접을 보러 갔을 때 면접관이 던질 법한 질문이다.


 누구에게나 힘들었던 시기가 적어도 한 번쯤은 있다. 없다고 하는 사람은 굉장히 긍정적인 사람이거나, 자신을 속이는 사람일 것이다. 사람은 걸음걸이를 배우며 한 번쯤은 넘어져 다치기 마련이다.


 걸음걸이를 처음 배우면서 넘어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하며 차츰 '넘어지지 않는 법'을 배우게 된다. 넘어지지 않고 걸을 수 있게 되면 그 기쁨에 탄성이 절로 난다.


 그런데 이내 넘어지던 시절에 대한 기억은 사라진다. 넘어지지 않고 걷는 것이 당연해지는 시기가 온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하니까. 그래서 힘들던 시기가 있었던 사람들도 성공하고 나면 힘들었던 시기를 잊는 경우가 종종 존재한다.


 우리는 넘어짐이 없었더라면 제대로 된 걸음걸이를 배우지 못했을 거다. 걸음걸이를 배우던 시절, 그때의 넘어짐을 아파해야만 하는 걸까?


또 다른 걷기의 도전



 군에 입대하기 전 책을 읽기 시작했고, 군생활 내내 나름 많은 책을 읽었다. 책을 전혀 읽지 않던 과거와 책을 읽기 시작한 후의 생활에서 큰 차이는 느껴지지 않았다. 내 안에 많은 변화가 있었더라도 세상은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었으니까.


 드넓은 바다에서 물고기 한 마리가 미친 듯 헤엄을 쳐도 물결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처럼.


 군대를 다녀온 분들은 아시겠지만, 남자들은 대게 군대를 다녀오면 많은 변화가 있다. 그것이 겉으로 드러나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내 경우에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군생활 내내 책을 옆구리에 끼고 살았다. 군생활을 했던 부대도 다른 일반적인 군대와는 조금 달라 보초를 설 때 항상 혼자 있었다.


 책을 읽기만 한 것이 아니라, 수없이 많은 생각을 하기도 했다. 멋진 말로 사색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책도 나름 많이 읽고, 사색을 하는 패턴의 반복이었다.


 군생활을 마칠 때쯤에는 다른 사람들과 같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다. '이것도 했는데 못할 게 뭐가 있어'라는 생각이었다.


 그 자신감으로 어렵다는 시험인 고시 준비를 하게 됐다.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단순히 학교를 다니며 학점을 잘 받는데 힘을 쏟고 싶진 않았다. 학교에 대한 흥미는 잃은 지 오래였다.


 그렇게 내 인생의 또 다른 걷기가 시작됐다. 넘어지고 다쳐도 다시 일어날 각오를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고독을 치열하게 맛보다



 고시 공부를 직접 해보지 않아도 그 시간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짐작은 할 수 있다. 주변을 둘러보면 고시 공부를 하거나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이 한 명쯤은 꼭 있다. 특히 요즘에는 더 많아졌다.


 그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저 안쓰러운 기분을 느낀다. 고시 공부를 하며 나를 쳐다보는 사람들의 눈에서 그 안쓰러움을 너무 많이 봤다. 직접 안쓰러움의 대상이 되어보기도 했고, 그 세계를 벗어나 안쓰러움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을 다시 바라보니 지난날의 고독이 떠올랐다. 그 고독은 치열했다.


 학교에 휴학계를 내고, 원룸에서 고시원으로 이사하고, 인터넷 강의를 결제했다. 어쨌든 부모님께서 금전적인 부분을 지원해주시기 때문에 줄일 수 있는 만큼 최대한 줄이고 싶었다. 부모님께 그나마 덜 폐를 끼치고 싶었다.


 고시 공부는 고독의 치열한 경쟁이었다. 마치 누가 더 고독을 잘 버텨내냐에 따라 승패가 갈리듯 세상과 단절하고 철저히 혼자가 돼야만 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간단히 아침을 먹고 도서관을 갔다. 오전 내내 책과 강의와 씨름을 하고 나면 금세 점심시간이었다. 점심을 먹고 바로 도서관으로 들어와 다시 책과 강연과 씨름을 했다. 그러자면 금세 저녁 시간이었고, 저녁을 먹고 또다시 도서관으로 향했다. 그러다 정해둔 시간이 되면 집으로 가 바로 잠을 청했다.


 처절한 고독의 시간이었다. 그리고 이제껏 살아온 생활 중 가장 단순한 생활의 반복이었다. 공부와 잠뿐이었으니. 얻는 것은 없고, 잃는 것만 있는 기분이었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먼저 연락을 하지 않게 되니, 내게 연락을 하는 사람만 관계가 유지됐다. 직접 만나지는 못하고 카톡이나 전화로 어쩌다 한 번씩 연락을 하니 그것도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내게 남은 것이라곤 책과 가족뿐이었다.


넘어짐의 고통



 수없이 많이 넘어졌다. 몸도 마음도. 처음에는 공부가 재밌었다. 내 의지로 선택한 일이었고, 새로운 도전을 한다는 것에 엔돌핀이 솟아올랐다. 새로운 것을 알아감에 대한 희열을 느꼈다.


 그런데 그런 기분은 오래가지 않았다. 책 한 권에 적게는 수백 페이지, 많게는 천 페이지가 넘는다. 그런 책을 한 권도 아니고 10권을 가까이 봐야 한다.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을 말이다.


 몇 주가 걸려 책 한 권을 마치고 나면 다른 두꺼운 책을 시작해야 했다. 그렇게 몇 달을 걸려 한 번씩 다 보고, 다시 처음 했던 공부로 돌아오면 새로 시작하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기억과 망각의 연속이었다.


 공부를 해서 외우면 머지않아 잊어버리고, 잊어버린 걸 또 외우면 다시 잊어버리고. 어제 했던 생활은 오늘도 이어지고, 내일도 이어질 것이었다. 모양새가 같은 하루가 수백 개나 되었다. 그렇게 나의 2년은 단 '하루'로 기억된다.


 고시를 포기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내가 가진 건 하나 더 줄었다. 책과 가족뿐이었는데 책마저 사라지고 가족만 남았다. 꿈도 목표도 사라졌다. 방향도 잃어버렸다. 마음 편히 연락을 해 술 한잔 하자고 할 사람이 없었다.


 매일 밤,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었다. 고시 공부를 할 때는 그렇게 바른생활을 하고, 정확히 규칙에 따른 생활을 했는데. 그렇게 난 넘어졌고, 쉬이 일어날 수 없었다. 넘어져도 하필 깊은 동굴 속 어둠에 혼자 넘어졌다.


'인생은 자전거를 타는 것과 같다. 균형을 잡으려면 움직여야 한다.'

_ 알버트 아인슈타인




다음화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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