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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서관에 사는 남자 Mar 31. 2016

#8. 실패 속에서 배운 것들

내가 실패에서 배운 것들(2)

 사람은 원래 약하고 여리고 결핍되게 만들어졌어. 그건 왜 그런가 하면 그 상태로부터 뭐든 하라고, 뭐든 느끼라고 신은 인간을 적당히 만들어놓은 거야. 그러니까 스스로 약한 게 싫거나 힘에 부치는 게 싫은 사람들은 자신을 그렇게 방치하면 안 되는 몇몇 순간을 만나는 거지. 그래서 불완전한 자신을 데리고 먼길을 떠나.

<내 옆에 있는 사람>, 이병률



'사람은 원래 불완전하다.' 불완전하기에 넘어질 수 밖에 없는 거 아닐까. 태어날 때부터 완벽했다면 아마도 엄마 뱃속에서 나자마자 말을 하며 걸어 다녔을게다.


 약 2년 간의 고시 공부에 몰두한 끝에 포기를 결심했다. 고시 공부를 시작하면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는데, 직접 경험해본 입장에서 말하자면 그동안 해온 공부가 아깝기도 하고, 투자한 시간이 아깝기도 하고,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은 느낌 때문이다.


 또는 '이거 아니면 안 돼'라거나 '이거 아니면 할게 없어'라는 둥 포기하지 못할 많은 이유가 존재한다. 그래서 포기가 어렵다. 본인 어떻게 살아야하는지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에, 그리고 포기하는 것에 대한 남들의 시선이 두렵기 때문에.


어둠의 고통



 지난 글에서 이야기했듯이 그렇게 넘어지고 한동안 일어날 수 없었다. 내일은 오늘보다 나음에 대한 희망이 사라진 나는 일어나기 위한 발버둥조차 치지 않았다. 일어나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목표를 잃은 시기부터 매일 술과 잠의 반복이었다. 밤에 잠자리에 누우면 오히려 머리가 맑아져 잠이 깨끗이 달아났다. 그때마다 술기운을 빌려 잠을 청했다. 그것 때문인지 아침엔 항상 묵직한 몸의 무게에 쉽게 이불을 들춰내지 못했다.


 그 무게의 정체는 어둠이었다. 대낮에도 불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어둠에, 한 두 평 남짓한 방은 감옥의 독방에서나 느낄 법한 분위기였다.


 한 달쯤 그러고 살았을까. 이렇게 약하게 방치해두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다시 도서관으로 향했다. 환한 빛을 받으며 좀 걸었더니 어둠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 어둠을 걷어내는데 그리 많은 힘이 필요한 건 아니었다.


빛은 보려고 해야 보인다



 어둠의 동굴 속 깊은 곳으로 나를 데려다 놓은 것도 나였고, 그곳을 걸어나와 빛을 마주하게 만든 것도 나였다.


 그때부터 도서관으로 나와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물론 처음에는 난독증이라고 할 만큼 책이 읽히지 않았다. 심지어는 책을 펴면 글씨가 종이 위를 정신없이 날아다녀서 글씨를 읽을 수가 없었다.


 한 장을 넘기면 읽었던 내용이 무엇인지 기억나지 않았다. 그러면 다시 돌아가서 읽었다. 물론 다시 읽는다고 머리에 기억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그거면 됐다. 앉아서 책을 읽고, 답답할 때는 책을 덮고 나가서 걸었다.


 조금씩 활력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책을 좀 더 읽을 수 있게 되었고, 사람들을 만나서 일반적인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햇빛이 나를 감싸는 만큼 어둠은 자리할 곳을 잃어갔다.


 책을 읽으며, 걸으며 조금씩 다시 일어섰다. 여기저기에서 하는 강연을 찾아다녔다. 에너지가 넘치는 연사들의 강연을 들으니 다시 예전의 자신감 있던 내 모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나도 저기서 누군가에게 이런 에너지를 줄 수 있으면 정말 좋겠다.'


 그렇게 나의 힘과 다른 사람들의 도움으로 일어나 걸었다. 얼마만에 느껴보는 상쾌함이 었을까. 나를 짓누르고 있던 어둠이 사라지자 다시 예전처럼 걸을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내 몸을 빛으로 감싸기 위해서 걸어야 했다. 그리고 그 걸음걸이가 어둠을 가진 사람들에게 빛이 되어주었으면 했다.


어둠과 빛 사이에 남은 것들



 다시 도서관으로 돌아와 수많은 책을 읽었다. 읽으면 읽을수록 다시 전처럼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강연을 들으러 다니면서 연사들에게 수많은 에너지를 받았다.


 본래의 나로 돌아오자 그동안의 고통은 추억이 되었다. 이제는 고시에 합격하지 못했던 과거를 실패라 부르지 않는다. 오히려 남들에게 자랑하듯 떠벌리고 다닌다.


 그 속에서 많은 깨달음과 배움을 얻었기 때문에 그럴 수 있었다. 남들은 실패라고 부르는 순간이, 내게는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과정이었을 뿐이다.


 아무리 세게 넘어진다고 하더라도 그저 일어서면 됐다. 일어서는 일은 그저 손을 땅에 짚는 것처럼 사소한 행동 하나에서 시작됐다. 책을 다시 읽기 시작했던 일이나, 그저 걷기 시작했던 내 모습과 같이.


 그때부터는 더욱 다른 사람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진심을 다해 손을 내밀어주는 것. 그것만으로도 많은 사람들은 일어설 수 있었고, 내 곁에 남았다.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손을 내밀기도 했고, 글을 쓰며 많은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기도 했다. 때로는 강연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따듯한 기운을 나눠주기도 했다. 떠나간 사람들을 대신해서 따스한 기운을 가지려는 사람들이 내 곁을 차지했다.


 고통을 보듬어 주기에 그 고통을 알아주는 것만큼 크게 도움되는 것은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찾는 사람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가 겪었던 고통의 깊이가 남다른 것을 알 수 있다. 깊은 어둠과 고통을 알기에 다른 사람의 고통을 이해해줄 수 있는 것이었다.


 난 그렇게 커다란 빛을 얻었다. 나를 환하게 밝혀주는 빛, 다른 사람의 어둠을 조금은 환하게 밝혀줄 수 있는 빛을. 지금도 그 빛을 열심히 나눠주고, 그 빛을 받은 사람들은 또 다른 사람에게 빛을 나눠주고 있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넘어진 사람에게 손을 내밀어주고, 일어나지 못하는 사람과 함께 앉아있어줄 거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했다. 행복은 절로 찾아오는 것도, 숨겨진 것을 발견하는 것도 아니었다. 행복은 그저 진심을 다해 보면 보이는 것이었다.



'성공이란 무엇인가'

자주 그리고 많이 웃는 것.

현명한 이에게 존경을 받고,
아이들에게서 사랑을 받는 것.

정직한 비평가의 찬사를 듣고
친구의 배반을 참아내는 것.

아름다움을 식별할 줄 알며
다른 사람에게서 최선의 것을 발견하는 것.

건강한 아이를 낳듯, 한 뙈기의 정원을 가꾸든,
혹은 사회환경을 개선하든,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

자신이 한때 이곳에서 살았음으로 해서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성공이다.

_ 랄프 왈도 에머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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