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의 꼬리표
언제 완성되죠?
글을 쓰는 사람이든,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든, 도자기를 빚어내는 사람이든, 작가라는 타이틀을 가진 사람에게는 항상 마감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닌다.
누군가에 의해 마감 기한이 정해진 경우도 있을 테고, 본인 스스로 마감 기한을 정하고 작업을 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전자인 경우가 대부분이겠지만.
사실 작가들에게만 마감 기한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모두는 학교를 다니며, 직장을 다니며 마감 기한을 경험한다. 정해진 기간까지 과제를 제출하거나 업무를 마치는 것이 그것이다.
올해부터 내게 새로운 마감 기한이 주어졌다. 올해 초 카카오에서 운영하는 '브런치'라는 SNS를 시작했다. 일반적인 SNS와는 조금 다르게 이 서비스는 '글'이 중심이 된다. 사진이나 동영상 위주의 다른 SNS와는 그 태생이 조금 다르다.
브런치는 메인 홈페이지부터 '작품이 되는 공간, 브런치'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다. 작가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의 새로운 무대가 생긴 것이다. 특히나 이 SNS에서는 브런치 작가들이 쓴 글을 모아 책을 내주는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다.
그 프로젝트의 이름이 바로 '브런치북 프로젝트'이다. 지금까지 총 2회의 브런치북 프로젝트가 진행됐고, 1회에서 수상한 작품들은 이미 출간이 된 책도 종종 발견할 수 있다. 내가 지원했던 프로젝트는 이번 2회 프로젝트였다.
이 브런치북 프로젝트에 응모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주제로 매거진을 만들어 최소한 10편의 글을 발행하면 된다. 매거진 안에 최소한 10편의 글이 있으면 응모가 되고, 한 매거진뿐만 아니라 여러 매거진으로 응모가 가능하다.
과감하게 두 개의 매거진으로 응모하기로 했다. 20개의 글쯤은 금방 쓰겠지라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이미 글의 재료들을 많이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응모 조건을 갖추는 것은 시간문제라 생각했다.
그렇게 느긋하게 글쓰기를 시작했다. 원래 하루를 가득 차게 보냈던 터라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래도 대략 한 달이라는 시간의 여유가 있어 되겠거니 했다. 어림잡아 생각해봐도 하루에 한편만 발행하면 응모 조건을 맞추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사람 일이란 뜻대로 되는 일이 별로 없다. 하루 한편만 쓰면 충분하다 생각했는데, 다른 할 일도 많다 보니 글쓰기가 더뎠다.
브런치에 글을 쓰는 방식은 이랬다. 처음에 어떤 주제에 대한 글을 쓸지 머릿속으로 구상을 한다. 어느 정도 구상이 끝나면 개인 블로그에 글을 쓰기 시작한다. 맞춤법이나 구성, 문체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쭉 써 내려간다.
그렇게 한편의 글을 써내면 진이 빠져 좀 쉬어야 한다. 산책을 하며 걷다 보면 빠졌던 에너지가 조금은 다시 충전된다. 그러면 다시 노트북 앞으로 돌아온다. 블로그를 다시 열어 올렸던 글을 보며 퇴고를 거치며 브런치에 올린다.
올리고 나서도 여러 번 다시 읽어본다. 주제와 관련 없는 이야기를 쓰지는 않았는지, 글의 방향이 애매하다든지 등 글을 점차 다듬어 나간다. 어째 글을 쓰는 시간보다 퇴고하는데 드는 시간이 더 많이 걸린다.
생각보다 오래 걸리는 시간에 결국 마감에 쫓기에 됐다. 작가들이 흔히 마감 기한을 앞두고 경험하는 기분이었을까. 독방에 갇혀 발목엔 쇠고랑을 찬 기분이었다. 글을 다 써낼 때까지는 절대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았다.
마감을 3일 앞두고 글을 6개는 더 써야 했다. 물론 하나의 매거진만 응모하려면 2개만 더 쓰면 완성이었다. 그런데 처음에 했던 계획을 쉽게 무너뜨릴 수는 없었다.
사실 대충 쓰면 하루에 글 두개쯤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왕 응모하는 거 끝까지 최선을 다해보고 싶었다. 모든 사람은 이벤트에 응모할 때 당첨되리라는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 써온 글이 너무 아까웠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계획대로 두 개를 응모할 수 있는데, 그 잠깐을 못 버텨서 하나는 포기할 수가 없었다. 대신 '계획대로 다 마무리하고 실컷 놀자'라는 보상을 나 스스로에게 주기로 했다.
마지막 글 3편을 남기고, 앞의 두 편은 너무나 수월하게 썼다. 초고도 술술 써 내려갔고, 퇴고도 순조롭게 진행됐다. 그러나 문제는 마지막 한편이었다. 성공과 실패의 차이는 정말 한 끗 차이었다. 계획을 성공리에 마무리하려면 그 마지막 한편이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
오기로 자리에 앉아 글을 썼다. 능력이 부족한 탓인지 마지막 한편은 애를 좀 먹었다. 잘 써지지도 않았고, 퇴고도 좀체 진행되지 않았다.
도저히 머리가 돌아가지 않아서 노트북을 덮고 밖으로 나왔다. 햇빛을 쬐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니 무거워졌던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지는 듯했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머리가 복잡할 땐 마냥 걷기만 해도 쉽게 안정을 되찾는 경우가 많다. 가볍게 산책을 하고 다시 노트북 앞에 앉으니 무거운 체증이 많이 가벼워진 상태였다.
좀 전보다는 훨씬 쉽게 글을 마무리하고 발행을 해버렸다.
그러자 금세 기분이 날아갈 듯 가벼워졌다. 답답한 독방에 과식을 한듯한 체증은 모두 자취를 감춰버렸다. 그렇게 난 하나의 계단을 더 올랐다.
응모한 글의 결과도 중요하겠지만, 그보다 우선은 마감을 했다는 것에 더 큰 기쁨을 느꼈다. 실제 작가들은 이런 기분을 항상 느끼는 걸까? 고작 글 몇 편을 써내는 데도 이렇게 힘들었는데, 책을 한 권이 될 분량의 글을 마감 기한에 맞춰 써내는 고통은 얼마나 클지 상상조차 안 된다.
그래도 좋았다. 고통 끝에는 빛이 있다는 걸 알았으니까. 그 빛은 고통마저 잊게 만들 만큼 환했으니까.
나는 다시 글을 쓰기 시작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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