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있는 게 휴식일까?
요즘은 한국사 분야의 책을 주로 읽고 있다. 어릴 때 암기과목을 싫어했는데 역사는 그 당시 나에게 암기만 해야 되는 과목이라 재미가 없었다. 덕분에 성인이 되어서도 역사 지식은 형편없이 부족하다. 언젠가 역사 공부를 해야겠다 싶었지만 결코 시작하지 않았다. 그래서 생각난 김에 시작하자 했다.
호기심을 가지고 시작한 공부는 즐거웠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것도 아니고 스스로 필요를 느껴 공부를 하다 보니 하나씩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런데 공부하랴 일하랴 데이트하랴 시간을 너무 빡빡하게 쓰다 보니 조금씩 지쳐감을 느꼈다.
수많은 책이 꽂혀있는 책장을 살피다, 전에 읽었던 <휴식>이라는 책을 발견했다. 울리히 슈나벨이라는 사람이 쓴 책이다. 책은 첫 장부터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사람의 편의를 위해 기술이 발전했지만 우리는 그 이전 세대보다 훨씬 더 바쁘다'라는 말을 했다.
처음으로 든 사례는 흥미롭고, 또 묵직했다. 면도기에 관한 사례였는데 우리는 면도하는 시간을 줄이고, 편하게 면도를 하기 위해서 면도기를 사용한다. 기술이 발전해 면도하는 시간은 줄었다. 그런데 그 남은 시간은 어디 갔을까? 남은 시간으로 더 성능이 좋은 면도기를 만들고 있었다. 그렇게 더 좋은 면도기가 나오면 남는 시간을 또다시 면도기를 개발하기 위해 투자한다.
이는 자동 면도기에 대한 사례지만 모든 곳에 적용된다. 스마트폰은 이미 있음에도 더 좋은 스마트폰을 개발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과 시간이 투자된다. 먼 거리를 이동하기 위해 자동차를 이미 개발했지만, 더 빠르고 멋있고 강한 자동차를 만들기 위해 남는 시간을 다시 자동차 개발에 투자한다.
인간의 시간을 아끼기 위해 기술을 발전시키고 인간의 편의를 위해 기술을 발전시키지만, 결국 남는 시간은 다시 기술을 위해 사용하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편의를 위해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더 좋은 것을 위해 기술을 개발하는 걸까?
결국 기술의 개발과 동시에 휴식은 사라졌다. 요즘 사람들에게 시간에 여유가 생긴다면 무얼 하고 싶으냐 물으면 대부분의 사람이 '쉬고 싶다'라고 할 것이다. 열심히 일하면 일할수록 힘들어지는 사회, 그것이 정녕 우리가 나아가야 하는 미래일까?
많은 사람들은 가만히 쉬고 싶어 한다. 가만히 소파에 누워 텔레비전을 보거나, 평소에 못다 한 잠을 청하거나, 멋진 어딘가로 여행을 떠나고자 한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과연 휴식이라 부를 수 있을까? 평일에 열심히 일을 하고 주말이 돼 집에서 하루 종일 늘어져본 사람을 알 것이다. 다음날 결코 개운한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책을 읽다가 단순한 이야기에 심장이 두근대는 일이 있었다. 한 행인이 작은 배에서 한가롭게 물고기를 잡고 있는 어부를 보았다. 행인은 어부에게 그렇게 느긋하게 물고기를 잡아서 돈이나 벌겠냐고 물었다. 그러자 어부가 이야기했다. "돈 벌어서 뭐하는데요?"
어부가 이어서 말했다. "물고기를 빨리 많이 잡아서 돈을 많이 벌고, 그 돈으로 더 큰 배를 사야죠!"
"더 큰 배를 사면 뭐하는데요?"
"더 큰 배를 사면 어부들도 더 고용해서 고기를 더 많이 잡을 수 있잖아요."
"그렇게 해서 고기를 더 많이 잡으면 뭐하는데요?"
"돈을 더 많이 벌어서 좋은 집도, 차도 살 수 있죠."
"그렇게 해서 좋은 집을 사면 뭐하는데요?"
"돈 걱정 없이 편안하게 자고, 푹 쉬면서 고기도 편하게 잡을 수 있죠."
"제가 지금 그렇게 하고 있잖아요."
우리는 왜 이렇게 치열하게 살아야 할까? 물론 이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그 때문에 일을 안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돈만 보며 힘들게 살아야 할까?
가끔은 일하는 의미와 휴식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게 좋겠다.
'브런치' 구독하기 :
1. 브런치 구독 - 상단의 '구독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