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글쓰기, 어떻게 할 것인가>를 읽고,
도서관 서가에서 한국사 책을 둘러보다 이 책을 발견했다. 책의 제목을 읽는 순간 '역사 글쓰기가 따로 있나?'라는 의문이 떠올랐다. 먼저 읽어야 하는 한국사 책들을 뒤로하고 이 책을 집어 들게 되었다.
가볍게 읽으려는 생각에 도서관에서 대출해 읽었다. 원래 책을 읽을 땐 밑줄을 그으면서 읽지만 빌린 책은 그럴 수가 없다. 아쉬운 김에 노트에 끄적이며 책을 읽어나갔다. 그런데 몇 장 넘기지도 않고 메모할 내용이 너무 많아졌다. 결국 사기로 결심하고 빌린 책을 반납하고 인터넷으로 책을 주문했다.
'사실들은 역사의 이야기를 구성하는데 필수 요소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두 군대가 어디서 서로 마주쳤고 어느 측이 승리했는지 안다고 해도 그것만으로 그 사건을 이야기로 꾸밀 수 있는 것은 아니다.' _ p.23
우리는 흔히 '역사'라고 하면 과거의 '사실'을 떠올린다. 그러나 제대로 역사를 공부했다면 '하나의 사실'만 떠오르지는 않을 것이다. 역사는 과거의 사실에 '해석'을 덧붙일 수 있다. 그래서 하나의 사건에도 수많은 해석이 나올 수 있다.
이 책에서는 그 해석에 집중을 하라고 말한다. 하나의 증거만 보고 그 사건을 판단할 것이 아니라, 여러 개의 증거에 해석을 더해 사건을 판단하는 것이 역사 글쓰기라고 한다. 아무리 저명한 역사가가 밝히는 견해라도 '나'는 다른 해석을 내놓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역사다.
역사 글쓰기에 누가 관심이 있을까 싶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글쓰기보다는 오히려 역사공부에 흥미를 느끼게 됐다. 책의 내용은 역사 글쓰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지만, 역사를 어떤 식으로 바라봐야 하고 일정한 사건에 대해 어떻게 조사하고 판단을 내릴 수 있는지 그 과정이 모두 담겨있다.
일반 글쓰기에도 사실 수많은 형식이 있다. 글의 목적에 따라 방법이 달라지기도 하고, 글의 분야에 따라 방법이 달라지기도 하는 등 하나의 정해진 형식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역사 글쓰기는 더욱 특별한 상황에 놓여있다. 변하지 않는 사실인 '과거'에 대해 는 것이 역사 글쓰기다. 과거에 있었던 사건에 대한 증거를 모아 조사하고 분석하여 자신만의 해석을 쓰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증거들 역시 조작되었을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역사 글쓰기와 일반 글쓰기의 가장 큰 차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자료의 유무'다. 책에서는 역사 글쓰기를 자료와 자료 사이의 공백을 해석으로 메우는 글쓰기라고 했다. 역사 글쓰기가 특별한 점은 자료와 자료 사이에 빈 공간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라는 말을 한 번쯤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패자들의 이야기는 쉽게 전해지지 않는다. 간혹 패자들의 이야기가 '야사'로 전해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해석도 있지만, 그 역시 확실치는 않다.
어릴 때는 역사 공부를 정말 싫어했다. 외워야 할 인물은 수없이 많았고, 사건이 일어난 연도를 외우는 것 또한 지루함의 연속이었다. 그 이후로 역사를 공부해야 할 의무는 없었고, 할 필요도 크게 느끼지 못했다.
공부의 시작은 호기심이다. 물론 내가 역사 공부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단 하나의 원인은 아니다. 우리의 역사는 책으로도 많이 알려지고 있지만 텔레비전이나 영화를 통해서도 대중들에게 알려지고 있다. 특히나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역사를 이야기하는 경우는 훨씬 흥미롭다.
이순신 장군의 전투를 그린 영화 '명량'이며, 사도세자의 아픔을 그린 영화 '사도'며, 김종서와 수양대군의 이야기가 나오는 '관상'이며, 우리는 이미 역사를 재미있게 읽고 있었다. 여기서 역사 공부를 좀 더 깊게 하려면 호기심이 필요하다. 영화 '명량'이 나오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은 이유는 무엇인지, 수양대군이 김종서를 살해하게 만든 이유는 무엇인지를 궁금해하는 것이 역사 공부의 시작이다.
이렇게 과거의 사건에 작은 궁금증을 가지고 호기심을 해결하다 보면, 지루한 역사가 아니라 흥미로운 역사를 마주하게 된다.
호기심을 가지고 한국사 공부를 처음으로 제대로 시작했다. 그러다 역사 글쓰기에 대한 주제까지 관심을 가지게 됐다. 역사 글쓰기란 재미없을 것 같지만, 이 책을 읽고 역사 글쓰기에 대해 배우면서 오히려 역사에 더 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어떻게 하면 역사의 한 사건에 대해 깊이 파고들 수 있는지, 이렇게 파고든 내용을 글로 정리할 때는 무엇을 주의해야 하는지 등 역사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됐다. 그것만으로도 이번 책의 선정은 성공이 아니었나 싶다.
'과거를 알면 미래의 실수를 피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도 지나친 단순화에 속한다. (...) 새로운 발명, 새로운 사고방식, 새로운 발상의 조합은 모든 예측을 뒤집어버릴 수 있다.' _ p.74
역사를 왜 공부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사람들은 대게 '과거의 실수를 다시 하지 않기 위해서'라는 말을 많이 한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깨달은 점이 있다면, 단순히 역사를 아는 것만으로는 실수 피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역사는 끊임없이 변화한다. 그래서 역사를 끊임없이 해석하고 그 안에서 지혜를 배워 현재를 살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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