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 이야기

01.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겠다

by 해보기


일본의 유명한 작가인 무라카미 하루키는 마라토너로도 잘 알려져 있다. 본인의 달리기에 관한 회고록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2008)에 보면 그는 33세에 달리기를 시작한 이래 23년 가까이 거의 매일같이 조깅을 하고 매년 적어도 한 번은 마라톤 풀코스를 달려왔다고 한다. 아마 지금도 일정 시간만 되면 운동복과 운동화를 챙겨 달리기를 하고 있지 않을까? 또한, 그 책에서 그는 전업 소설가가 된 이후 직면한 심각한 건강 문제 해결을 위하여 달리기를 선택했다고 말하고 있다. “이제부터의 긴 인생을 소설가로 살아갈 작정이라, 체력을 지키면서 체중을 적절히 유지하기 위해 방법을 찾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나는 (...중략...) 달리기를 선택했다.”. 만약 묘비명 같은 것이 있다면, 그리고 그 문구를 자신이 선택하는 게 가능하다면, 묘비명으로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라고 적고 싶다는 마라토너 겸 작가!

필자는 동료 직원의 꾐에 넘어가 처음 참가한 마라톤 대회에서 10km를 완주하고 2-3일을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절뚝거렸던 기억이 생생하다. 왜? 무엇 때문에 힘들게 달리는 거지? 돈까지 내면서 왜 고생을 사서 하는 거지? 하면서도 어느 순간, 제대로 연습해서 더 잘 달려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다음 대회를 찾아 준비하고는 했었다. 2013년 10월 드디어 춘천국제마라톤에서 첫 풀코스를 완주한 뒤, 현재까지 일 년에 2-3번씩 총 8번의 풀코스를 완주하였다. 특히 얼마 전(2016년 10월 23일) 출전하였던 춘천국제마라톤에서는 03:58:44라는 개인 최고 기록으로 완주하여 나름 기쁨을 만끽하고 있는 중이다(마라톤 용어로 Sub-4에 해당하는 기록).

달릴 때는 무슨 생각을 할까?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다. 마음속 고민들, 사랑하는 가족, 아름다운 풍경, 시원한 맥주, 냉면, 진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그러나 풀코스 완주를 위해 달려가다 보면 사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아니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최면에 걸린 사람처럼 규칙적으로 들려오는 숨소리, 발자국 소리만을 따라 한없이 가라앉는 고요함... 바람, 구름, 하늘, 시간, 공간, 물, 다리, 그 모든 것들이 의지와 상관없이 몸을 채웠다가 휘돌아 나가는 조금은 야릇한 기분만을 느끼며... 또한 수시로 찾아오는 위기에 대하여 자신과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된다. 더 가면 크게 몸 상할 것 같은 극도의 공포, 고통과 함께 이만하면 충분하다는, 이제 그만 하라는 속삭임... 그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달리는 걸 멈추면, 딱 거기까지 인거다. 그러나, ‘나만 힘든 거 아니지. 조금만 더 힘내자’ 끝없이 위로하며 견뎌 내면 곧 위기는 사라지고 다시 편안함이 찾아온다. Pain is inevitable, Suffering is optional! 아픔은 피할 수 없지만, 고통은 선택하기에 달렸다! 풀코스를 완주하기까지 수시로 찾아오는 위기는 피할 수 없는 아픔이지만, 매번 헤쳐 나가야 하는 선택과 고통은 결국 자신의 몫인 것이다.

우리의 인생도 42.195km를 달려가는 것과 비슷한 것은 아닐까... 대학 생활, 아니 20-30대에서 인생이 결정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후 80세, 100세까지 긴 장거리 레이스를 달려 나가야 한다. 젊다고 오버페이스 할 것이 아니라, 긴 호흡으로 길게 보고, 후반부 레이스에 대비하여야 한다. 그래서 인생이든 마라톤이든 ‘자신의 몸 상태에 맞는 속도를 찾아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자신의 몸이 하는 얘기에 귀 귀울이기! 그래서 절대 무리하지 않기! 남 신경쓰지 않고 나 자신에게만 집중해야 하는 매력!. 무라카미 하루키는 말한다. “어제의 자신이 지닌 약점을 조금이라도 극복해가는 것, 그것이 더 중요한 것이다. 장거리 달리기에 있어서 이겨내야 할 상대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과거의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또한 ‘꾸준하게 달려가는 것’이 중요하다. 초반에 무리할 것이 아니라 후반부에 웃는 자가 진짜 승리자! 마라톤은 분명 기록을 깨기 위해 존재하지만, 기록만 생각하며 달리다가는 분명 부상에 시달리기 쉽다. 자신의 몸 상태에 맞는 속도로 꾸준히 달리며 한 걸음 한 걸음 꿈을 이루어 갈 수 있는 자기 관리가 필수적이다. 풀코스를 달리다 보면 마지막 1km는 이제껏 달려왔던 거리보다도 더 멀게 느껴진다. 또한, 일상에서는 별거 아니라 아까워 할 틈도 없는 1분. 그 60초가 주로(走路)에서는 어쩜 그렇게 어마어마한 시간으로 다가오는지... 인생의 희노애락을 모두 경험할 수 있는 풀코스 마라톤에서의 마지막 1km, 마지막 1분... 사실 인생에서의 1분 1초가 자신에게는 꿈을 이룰 수 있는 가장 소중한 시간인 것임을 깨닫는다.

흔히 마라톤은 정직한 운동이라고 말한다. 노력한 만큼 결실을 맺는다. 반대로 노력 없이 덤비다가는 실패의 쓰라린 경험뿐 아니라, 자칫 부상으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10,000원을 투자하면 딱 그만큼의 값어치를 쏟아내는 지극히 단순하고도 정직한 매력적인 운동! 노력하고 또 하면 언젠가 꿈을 이룰 수 있는 기록에 다가가겠지! 언젠가 필자의 목표인 보스턴 마라톤까지 누군가의 말처럼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겠다는 의지로 계속 나아가려 한다.

(2016.10.23. 춘천마라톤 완주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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