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해외마라톤참가기: 2018 일본 고베 마라톤
제목: 먼 북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북소리에 이끌려
나는 긴 여행을 떠났다.
낡은 외투를 입고
모든 것을 뒤로한 채..." (터키의 옛 노래)
"아득히 먼 곳에서, 아득히 먼 시간 속에서 그 북소리는 울려왔다.
아주 가냘프게, 그리고 그 소리를 듣고 있는 동안,
나는 왠지 긴 여행을 떠나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먼 곳에서 북소리가 들려온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먼 북소리 머리말 중에서)
언제부터 해외 마라톤을 꿈꾸게 되었을까?
보스턴 마라톤 참가를 내 인생 마지막 달리기 무대로 목표하는 내가
첫 해외 출전 마라톤으로 일본, 그리고 고베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대답할 수 없다. 아니 알 수 없다.
나른한 오후 설핏 잠이 들었을 때 슬며시 찾아오는 꿈처럼
어느 순간 고베 마라톤을 결정하고, 신청하고, 준비하게 되었다.
고베·아시야 지역은 일본 작가 겸 마라토너 무라카미 하루키가
어린 시절을 보내고, 학교를 다니던,
그래서 아마도 연애를 몇 번 하고,
아마도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무언가를 먹고 마시던 곳이었을 터이니
하루키의 고향 같은 고베에서 먼 북소리가 들려온 것은 아닐런지...
나에게도 이번 여행은 먼 북소리의 시작일지 모른다.
[출발 전]
우리는 지금 약간 긴장된 표정과 몸 상태로 START 라인에 서 있다.
해바라기 장갑을 낀 두 손을 하늘 높이 올리는 것으로 모든 준비는 끝났다.
20,000명이 달리는데 대회 스태프 및 자원봉사자 수가 7,200여 명인 대회는 어떤 느낌일까?
전날 있었던 엑스포(등록 절차)부터 대회 시작까지
기차가 정해진 선로를 따라 정해진 속도로 나아가듯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물길을 따라 잔잔하게 시냇물이 흘러가듯
가만히 서 있어도 알아서 준비해주고, 알아서 출발선에 세워주는 그럼 느낌...
당신은 대회 참가자이니 다른 모든 걱정은 우리에게 맡겨두고, 그저 편하게 잘 달리기만 하세요 하는,
아침에 출근할 때 아내와 아이들이 함박웃음으로
고된 일 잘 마치고 일찍 들어오세요. 맛있는 저녁 준비해 놓을게요~ 출근인사 해주는 듯한...
출발 전 준비하고 점검해야 하는 모든 일(복장, 몸풀기, 출발선 확인, 화장실, 출발 그룹 확인 등) 옆에는
항상 그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선수들을 보호하고, 관리하고,
질서 정연하게 화장실 줄 서는 것까지, 그룹별 안내와 통제까지...
내가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에 대접받고 있다는 느낌이 더해져
대회 관계자가 주체가 아닌, 내가 바로 오늘의 주인공이다! 잘 뛰고 올게요~ 외치게 만드는...
부러움과 감사와 긴장감이 어우러진 속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인사와 파이팅을 외치며 긴 여정이 시작되었다.
[출발 ~ 15km]
우리는 지금 고베시청을 출발하여 시내를 통과하고
이제 오른쪽으로는 지하철 철도를 따라, 왼쪽에는 반짝이는 해변을 두고서,
고즈넉한 시골길 풍경을 눈에 담으며 달려나간다.
그룹별로 나누어 출발하는데도 초반 도로 폭이 그리 넓지 않아 인파에 밀려가는 느낌이다.
치고 나가기도 어렵고 그러다가는 초반에 힘을 너무 쓸 것만 같아
그저 여유를 가지고 다양한 응원 소리와 도구들을 바라보며 달려 나간다.
전체적으로 몸은 무겁게 느껴져 속도를 내기보다는 몸이 풀려 가는 데 집중하기로 한다.
0-5km 평균 05:49초. 많이 늦어져 있다.
날씨는 가을답지 않게 무척 덥다.
조금 습한 기운도 있고, 그늘이 많이 생기지 않는 코스여서 더위에도 대비해야 한다.
출발 전 추위를 대비해 입고 있던 우비는 출발하기 전에 이미 벗어던졌다.
국내 대회의 경우 출발 지점과 골인 지점에만 응원이 집중되어 있고,
이것도 자발적이라기보다는 마라톤 동호회나 대회 주최 측 동원 인력의 응원이 많은 편이다.
길 양쪽으로 늘어서 응원하는 사람들이 과연 언제까지 보일까? 하는 의문과 기대를 가지고
시내를 통과해 나가니 고즈넉하고 조용해 보이는 마을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오른쪽에 보이는 지하철 철도와 나란히 달린다.
지하철이 지나갈 때마다 안에 타고 있는 사람들도 각자의 흥분과 힘에 맞게 손을 흔들어준다.
6-10km 평균 05:32초. 이제야 제 속도를 찾았다. 조금만 더 치고 나가보기로 한다.
미리 말하자면, 달리는 내내(정말 출발지점부터 골인 지점까지 내내) 거리 응원은 계속되었다.
응원해 주는 사람들이 본인들도 즐기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게 된다.
가족 단위로 놀러 나온 듯 편하게 자리 잡고 응원해 주는 모습,
손수 만든 음식을 직접 건네주며 힘을 전해주는 모습,
특히 42.195킬로를 달리는 동안 끝없이 들려오는 말.
그래서 내 머릿속에서도 계속 맴돌며 주로를 채우던 말.
がんばってください(간바떼 쿠다사이. 힘내주세요. 힘내라, 힘내 ...)
그 외에도
いらっしゃいませ(이랏샤이마세. 어서오십시오...),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아리가또고자이마스. 감사합니다...),
ファイト(화이또. 화이팅~)를 외치거나
달리는 사람의 이름을 직접 불러주는 등
달리는 내가 오히려 이제 목이 아플 테니 그만하고 좀 쉬세요라고 집으로 돌려보내고 싶을 정도로
그들은 응원 그 자체를 즐기고 있었다.
대회 참가를 위해 자기 마을에 찾아온 사람들을 극진하게 대접해 주고 있었다.
대단하다. 달리는 사람에게 어서 오세요. 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라니...
오히려 내가 그 사람들에게 아리가또고자이마스를 외치며 달려갔어야 하는데
인사를 제대로 못했다.
미안한 달리기였다.
제대로 예의를 갖춘 달리미가 아니었다.
11-15km 평균 05:31초. 몸은 많이 가벼워졌고 05:30 정도의 속도에 몸이 편안하게 반응하고 있다.
이제 이 속도를, 이 편안함을 언제까지 유지하느냐가 골인 지점에서의 내 분위기를 좌우하게 될 것이다.
[15km ~ 30km]
우리는 본격적으로 바닷가 코스를 달려가며, 가는 길과 오는 길이 마주 보는 코스를 접하고 있다.
19km 반환점을 돌면서 이제 왔던 곳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된다는 조금 가벼워진 마음으로,
반환점을 향해 달려오는 반대 주로 선수들을 응원해 본다.
15km 전후로 반환점을 돌아오는 엘리트 선수들이 보인다.
선두권의 선수들을 보고 있으면 내 몸이 덩달아 가벼워지는 느낌이다.
물론 그들의 몸속에서는 뜨거운 열기가 터질 듯 증기를 내뿜고,
조금이라도 더 빨리 달릴 수 있도록 치열하게 에너지를 만들어내고,
자신과의 싸움에 옆 사람과의 경쟁까지 보이지 않는 기싸움을 벌이고 있겠으나,
보이지 않는 날개가 달린 듯, 중력에서 자신이 원하는 만큼만 벗어나 달리고 있는 듯
그들은 가볍다. 숨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시원한 바람 한 점이 되어 있다.
국내 대회에서는 볼 수 없었던,
그들을 향한 박수와 응원이 반대 주로(내가 있는 쪽) 선수들에게서 흘러나온다.
진심을 다해 그들을 격려해 주는 모습, 선수가 선수를 응원해 주는 모습에서
잠깐 아름다움이란 그저 이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16-20km 평균 05:30초. 최고 구간 속도라고 하기에는 다른 대회 기록에 비해 많이 뒤처져 있지만,
즐기며 나아가기에는 정말 훌륭한, 나의 고베 몸 상태에 딱 맞는 편안한 속도였으리라.
고베 마라톤의 주로는 그리 지루하지 않다.
도심, 부도심, 지하 철도와 나란히, 해안선 따라 달리기, 특히 마지막 구간에서
엄청난 높이의 고베 대교 최상단을 기어?올라가 바닷바람을 온몸으로 느끼며 마무리되는 다양한 느낌의 코스가 준비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평지이지만 장난 아니군 하는 업다운 언덕 구간도 5번? 정도 있었다.
(다시 말하지만 마지막 구간 고베 대교 최상단으로의 진입은 말 그대로 절정이다)
그 모든 주로에 평균 10m 정도의 일정한 간격을 두고 자원봉사자들이 선수들 만큼이나 많이 자리하며
관리해 주고 응원해 주고 있다.
맘껏 달려도 되도록, 언제든 도와줄 준비가 되어 있다는,
급수대, 다양한 간식 제공 지점에서도 끊어짐 없이 물 흐르듯 편한 서비스가 느껴졌다.
주로에는 화장실 안내 거리 표시마저 완벽하고, 화장실에 가는 선수들을 안내하고 순서대로 관리해 주는 모습까지도 보였다.
자원봉사지만 정말 단어 그대로 자발적인, 봉사와 응원 분위기에
또 한 번 내가 아리가또고자이마스를 외치게 되었다.
21~25km 평균 05:35초. 더위에 몸이 약간 지쳐가고, 속도가 다소 늦어진다는 느낌이 들었으나
무리하지 않기로 한다. 풀코스의 진짜 달리기는 35km 이후에 있음을 다시 한 번 상기해 본다.
길 양쪽으로 응원해 주는 사람들 중에는 특히, 어린아이들이 정말 많다.
어린아이들의 눈에 지금 마라톤 대회는, 그리고 달리고 있는 나 같은 사람들은 어떻게 보여질까?
내내 궁금했다. 물어보고 싶었다.
그들이 멋진 어른으로 자랐을 때, 오늘 서로 마주친 손의 느낌을 기억할까? 2만 명의 땀을 기억할까?
감동적인 것은 그들이 그냥 부모를 따라 나와 있는 것이 아니라,
응!원!을 하고 있었다.
주로 쪽으로 그 조그마한 손을 앞으로 쭉 내밀고는,
손을 부딪혀 주기를 바라고,
응원 구호를 외치고,
자신의 에너지와 순수함을 직접 나누어 주고 싶어 애쓰고 있다.
초반에는 아이들의 손이 보이면 무조건 다가가 마주쳤는데,
중, 후반부에 내가 지쳐서는,,, 손이 보여도 다리가 그쪽으로 움직이지 못한다.
팔이 올라가지 않는다고, 그 힘을 아껴 내가 달려가는데 써야 한다고 아이들을 모른척해야 한다고 나를 채찍질한다.
대회가 끝나고 나니, 아이들의 내밀어진 그 손들이 끝까지 내 머릿속에 고베의 여운처럼 남아 버렸다.
조금이라도 더 많이 아는 척해줄걸...
더 많이 만져주고 더 많이 순수함을 받고, 더 많이 고마워해 줄걸...
어쩌면 그 손들이 나를 고베로 다시 이끌지도 모르겠다.
기록보다도 아이들의 그 손을 더 그리워할 것만 같다.
26~30km 평균 05:43초. 마라톤은 이제 시작이다.
[30km ~ 37km(남은 거리 약 5km)]
우리는 고통을 즐기려 노력하고 있다. 양쪽 다리 뒤로 쥐가 나고, 이전 대회에서 부상당한 무릎으로 통증이 심하게 느껴진다.
아픔은 피할 수 없지만, 고통은 선택하기에 달렸다는 말을 계속 중얼거리며 기계처럼 다리를 움직여 한 발 한 발 무심하게 나아간다.
29km 지점을 지나면서 첫 고통이 찾아왔다. 다른 대회에 비하면 야속하게도 너무 빨리 찾아왔다.
왼쪽 다리 뒤로 쥐가 나면서 페이스가 흐트러졌다.
이제는 물리적인 힘보다 정신적인 힘에 더 의지해야 할 때가 되었다.
남은 거리를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2km만 더 가면 된다고, 그렇게 2km, 2km 나아가자고 나를 속여본다.
제발 속아주라...알아도 속는 쳄 치고 웃어 넘겨주라... 고통은 우리가 함께 선택한 것이니 함께 달리면서 웃자 다짐해 본다.
결국 32km 지점에서 끝!났!다!
양쪽 다리 쥐뿐만 아니라,
3주 전 춘천 마라톤 대회에서 빗길 내리막을 달려가다가 살짝 미끄러지며 충격을 받았던 왼쪽 무릎이 엄청난 고통으로 다가왔다.
멘탈도 이 시점에서는 완전 붕괴되어 너덜 해진다. 더 이상 나와의 대화 진행도 어렵다.
완주? 10km를 이 다리로 어떻게 나아간다는 말인가? 무서움을 넘어서는 두려움...
31~35km 평균 06:01초. 이제 남은 거리 약 7km다.
대회마다 다르지만 달리다가 어느 순간이 되면 달려온 거리보다 남은 거리가 중요해지는 반면,
달려온 거리에 비해 얼마 안 되는 그 남은 거리가 엄청난 무게로 나를 압박해 옴을 느낀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질 때의 느낌일까? 동서남북에서 고래 네 마리가 나를 짓눌러오는 압박감...
터지지 않기 위해 필요한 것은 이제 물도, 간식도, 꿀물도 아닌, 그저 응원이다.
누군가 나를 기다려 준다는 것, 누군가 나의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
돌아갈 곳이 있고, 그곳에 누군가가 나를 애타게 찾고 있다는 것.
더 이상은 못 가겠다고 징징 짜고 떼를 쓰고 그만하자는 유혹에 금방이라도 넘어갈 듯 힘이 풀리다가도,
그들이 있어 한 발자국 더 나아간다.
그들은 알고 있을까? 달리는 내내 주자들이 고마워하고 미안해하고 있음을...
[37km(남은 거리 약 5km ~ FINISH]
우리는 마지막 고베 대교를 올라간다. 인생도 그렇지만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는 법.
그렇게 생각하며 일희일비하지 않으면 오르막도 그냥 오를만하다. 이쯤 되면 눈물 한 방울 흘리며 골인 지점만 생각하고 달리는 거지...
엄청난 바닷바람도, 응원단도, 고베 대교의 빨간 아치도, 강렬한 한낮의 햇살도 그 모든 게 내 편임을 그저 감사할 때인 것이다.
목표 기록이라는 건 양날의 검 같은 것이다.
끝까지 목표에 도달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성취감을 불어넣어 주는 에너지원인 반면에,
어떤 상태가 되었든 한 번 목표에 도달할 수 없다는 분위기가 감지되면,
가차 없이 발로 뻥 차버린다. 이별을 선포한다.
지금껏 달려온 노력도 버려 버리고, 앞으로 더 달리는 것도 무의미하다는 결론을 서둘러 내려버린다.
목표 기록에게는 도달 아니면 실패 두 단어만 존재하는 것이다.
약 5km 남은 현재 무릎 통증이 가시지 않아 절뚝거릴 때 이놈을 버리지 못하면 완전히 무너져 버린다.
목표 기록 도달은 어려워졌으니 그냥 걸어 걸어 걸어 걸어 걸어. 이제 이 유혹을, 이놈에게 내가 먼저 이별을 고할 때이다.
원하던 기록에는 못 미치지만, 난 여전히 잘 달리고 있고,
고통을 즐길 수 있고, 내 뒤에 수많은 사람들이 내 등을 보며 달리고 있는데 실패라니...
고베 대교를 올라가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다 힘들고, 다 포기하고 싶어 한다.
나만 힘든 게 아닌데 나만 힘든 척 울고 있을 이유가, 여유는 없는 것이다.
나만 힘든 거라고 쉬엄 가라고 하는 그놈을 바닷속으로,
엄청 높게 오른 고베 대교 정상에서 고래 밥으로 던져줄 수 있어 이제 상쾌한 기분마저 든다.
이제 내 몸이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그저 달려가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순간을 즐긴다.
고통도, 숨소리도, 나를 바라보는 응원단도, 저 멀리 FINISH 골인 지점도...
내가 지금 여기서 달리고 있다는 그 자체를 행복으로 느끼고 그저 감사하며
마지막 포즈를 어떻게 할지 마지막 행복한 고민을 할 때가 왔다.
36~40km 평균 07:19km초.
그리고 마지막 41~42.195km 평균 06:07초.
[완주 후]
후반부에 가서 부상이 생기고, 고통스러운 부위가 나타나고,
그래서 페이스가 흐트러지고, 온몸의 에너지가 바닥나고,
드러눕고 싶고, 그만 달리고 싶고,
남은 1킬로가 이제껏 달려온 거리보다도 더 길게 느껴질 때가 되면,
한편으로
그러니까 미리미리 좀 더 연습하고, 좀 더 신경 쓰고, 좀 더 준비했더라면
지금 상태에서도 좀 더 잘 달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후회와 아쉬움이 항상 가득해진다.
특히 이번 대회의 경우 국내에서 달리는 것보다
더 많은 돈과, 시간과, 사람들을 투자하여 참가한 첫 해외 마라톤인데,,,
관광을 우선하여 돈 쓰러 여행하듯 떠난 여정이 아니지 않는가.
만족할 만한, 기대했던 좋은 기록이 '덤'으로 주어졌다면 더 좋았을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마음 덕분에...
나의 마라톤은 끝나지 않는다.
이번 대회 종료와 함께, 다음에는 오늘보다 나아져야 한다는 숙제가 주어지기에...
그러니 언덕이 나타난다고 슬퍼하거나 내리막이 있다고 기뻐하거나 하는 일희일비할 필요가 전혀 없는 것이다.
또한 이번 기록이 너무 안 좋다고 기분 나빠하거나,
첫 해외 마라톤이었던 고베 마라톤에서 목표했던 기록보다 덜 나왔다고 해서 슬퍼할 필요도 더더욱 없다.
이제 삶이 좀 더 '치열'해져야 한다.
아니다 삶에 대해서 치열해지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에 대해서 치열해져야 한다.
미리미리 대비하고, 준비하고, 목표에 맞게 생활 리듬을 조율해야 한다.
숙제를 잘 해내기 위해 책상도 깨끗하게 정리해 놓고, 연필도 적당히 깎아 놓아야 하고,
끝이 까매진 지우개를 하얗게 만들어놓고, 노트를 펼칠 준비를 해야 한다.
이 숙제가 바로 고베에서 먼 북소리로 나에게 전해준 최고의 선물인 것이다.
고베 마라톤을 달리는 내내 생각했다. 무라카미 하루키도 이 길을 달린 적이 있을까?
시간을 빼버리면 같은 공간에서 하루키와 내가 함께 달린 것이 맞을까?
그럼 반갑게 손이라도 흔들어 줄 것을...
손을 마주치며 큰 소리로 말해 줄 것을... 간바떼쿠다사이~ 그리고 아리가또고자이마스~
2018.11.18. 일본 제8회 고베 마라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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