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이야기

01. 대학도서관 입구에 대한 소고!

by 해보기

어딘가에 천국이 있다면 도서관 같은 곳일 것이다 라고 남미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말했다.
천국, 굳이 종교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더라도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은 아니어야 천국의 존재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단어. 천국으로 향하는 길은 험난하고 제한적이고 최소한 살아있는 동안 한 번이라도 남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해 본 적이 있는, 그래서 헌혈 후 받아 챙겨드는 증서처럼 사는 동안 최소 착한 일 한 번쯤은 했다는 확인서라도 소지하고 있어야만 입장이 가능할 것 같은 곳. 혹은 물질적인 증거가 아니더라도 정신적으로 심적으로 천국 입장 기준에 부합하는 만족감을 누리고 있어야 가능한 곳. 아무나, 모두가 자유롭게 들어갈 수 있다면 그건 이미 천국이 아닌 것이다. 이러한 견지를 바탕으로 보르헤스의 말을 재음미해보면, 맞다, 대학도서관도 최소한 아무나 입장할 수 없다는 점에서, 천국과 같은 시스템이다.

내가 아는 한, 모든 대학도서관은 자신이 해당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는 이용자임을 인증해야만 입장이 가능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소속 도서관 이용자(대학도서관의 경우 대학 구성원 또는 출입을 허가받은 이용자)의 권리, 연대감, 특권의식 같은 존재감 우선. 일견 당연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대학의 구성원들은 어떤 식으로든 유료로 학적을 유지하고 있고, 이를 통하여 교내 다양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제공받고 있는 것이다. 교내 다양한 서비스에 도서관, 그리고 도서관의 정보들이 포함됨을 인정한다면 당연히 서비스 보호 차원에서 인증된 구성원만 입장하고 그 외 입장 기준에 미달되는 사람들은 출입 제한이 걸려야 하는 것이다. 이에 모든 대학도서관 입구에는 출입관리시스템, 게이트가 설치되어 있어 내가 이 도서관을 입장할 수 있는 자인지 아닌지를 우선 자신에게 자문하고, 결과가 좋다면 다음 단계인 게이트 통과를 위한 다양한 인증서를 챙겨왔는지 소지품을 확인하게 만드는 절차가 기다리고 있다. 도서관 이용을 위한 안내 가이드 1번 내용은 바로 다름 아닌 이 절차다. 자신을 들여다보세요! 도서관은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마치 내가 지금 죽는다면 천국에 들어갈 자격이 되는지를 심장 떨리게 고민해 보는 것과 유사하게 말이다.

도서관만이 특정 정보를 수집하여 제공하던, 그래서 도서관에 반드시 가야만 양질의 정보를 찾아낼 수 있었던 그때!에는, 호르에 루이스 보르헤스든 움베르트 에코든 레이먼드 카버든 도서관 안에서 천국을 발견하고 그 안에서만 책의 무한한 지식에 놀라고 감탄하고 갈구하고 탐구가 가능했던 그때!에는, 도서관이 일종의 '갑'이고 이용자는 '을'이어서 사서는 신문 보며 도서관 출입구를 인증하여 들어오는 이용자들을 기다리기만 해도 문제없던 그때!에는 가능했던 이야기다.
이제 더 이상 이용자들은 도서관에서만 정보를 찾아내야 하는 그때의 '을'이 아니다. 또한 도서관의 이용자가 매년 줄어드는 통계 수치를 분석하며 사회 변화의 한 폐해로만 떠넘기던 시절도 지나 이용자들을 어떻게 하면 더 많이 도서관으로 끌어들일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발전방향 1순위에 올려두어야 하는 이제 우리 도서관들은 그때의 '갑'이 절대 아니다.

'학생증이 없어도 도서관을 이용하고 싶어요' 어느 한 대학 설문에 담긴 이 한 줄은 이제 대학도서관이 창의, 상상, 소통, 협력, 문화 공간으로서의 새로운 변화 주도뿐 아니라, 이에 더하여 정말 기본적인 도서관 이용·출입관리시스템에 대해서도 물음표를 가져 주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목소리가 아닐런지...
실제 구성원들의 권리 보장을 위하여 설치된 출입관리시스템 때문에 정작 도서관을 이용해야 할 구성원들도 신분증이 없어 이용을 포기하거나, 불편을 겪고, 도서관에 대한 보이지 않는 어색함을 유지하는 것은 아닐까?
구성원임에도 이용 못 하는 도서관에 대한 인식이 결국 도서관에 대한 애착을 낮추고, 부정적인 인식을 만들뿐더러 장기적으로 도서관 이용률을 저하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제 대학도서관이 대학도서관의 눈이 아닌, 저 멀리서 대학도서관을 바라보고 있는 이용자 눈으로 출입구를 바라보고 그 눈이 원하는 방향을 좇아 변화를 주도해 나가야 할 때임을,,, 물음표를 던져본다.

현재의 출입 시스템에 본인 인증 시스템을 병행하여 운영하는 것은 손쉬운 대안이 될 수 있다. 신분증이 없는 경우 입구에 별도로 마련된 본인 인증 시스템을 통하여 교내 인증(학번/사번과 패스워드), 혹은 일반 인증(현재 온라인상에서 개인 정보 입력을 통한 휴대폰, 공인 인증 등의 본인 확인)을 가능하게 하고 인증된 이용자에게는 특정 시간 도서관 시스템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권한을 자동으로 부여하거나 아니면 해당 기간 동안만 이용 가능한 임시 신분증을 즉시 발급해 주는 것이다. 도서관 출입구의 이미지를 '통제'-공항에서 몸수색 받듯 두근두근 거리는 불편함, 두려움-받는 느낌에서, '도움'-공항에서 여권이 없어도 임시 여권이 발급 가능하다는 반가움, 고마움-받는 느낌으로의 전환이랄까 자신도 모르게 슬쩍 미소가 지어지는 따뜻한 느낌으로의 전환이랄까...

장기적으로는 대학도서관의 개방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입구부터 자연스럽게 개방하여 누구든 우리 도서관을 둘러볼 수 있게 하고, 나아가 특정 공간에서 커피를 주문하여 마시거나 휴게 공간에 앉아 따뜻한 햇살을 맞이할 수 있도록 해 줄 수도 있다. 다케오시도서관처럼은 아니어도 누구든 거부감 없이 환영하며 맞아주는 느낌의, 입구에서는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오래된 책 냄새와 갓 볶아낸 커피 냄새가 어우러져 있는, 이런 따뜻한 느낌의 개방된 대학도서관은 향후 우리의 숙제이자 내가 기대하는 대학도서관의 한 모습이기도 하다.
물론 이러한 따뜻함의 이면에 대학도서관이 걱정하고 준비하고 대비해야 할 문제도 많음을 인정한다. 특정 개인 서비스(자료 대출, 열람실 이용, 시설 예약 등) 이용에 대한 서비스별 인증 절차도 필요하고, 소속 구성원들의 불편함이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이용자 행동 강령 유지도 필수적이다. 이용자 통계도 고려해야 하고, 대학도서관을 이용하는 데 문제가 있는 무분별한 이용자들에 대한 관리도 대비해야 한다.
(대학도서관 개방에 대한 자세한 물음표는 다른 챕터에서 다른 모습으로 던져보기로 하고 넘어간다.)

어딘가에 천국이 있다면 도서관 같은 곳일 것이다 라는 말에 동의하고 그래서 감사하다. 그리고 그 천국과도 같은 도서관을 더 많은 이용자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바라는 마음이 이 글에 담겼다. 천국에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것은 분명 맞으나, '아무나'의 범위를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더 많은 이용자들을 더 편하게 천국으로 이끌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은 대학도서관의 몫이 될 것이다.
언젠가 우리 도서관,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가 도서관 입구가 되었으면 좋겠다. 엄마 품같이, 자기 집에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들어가는 것처럼, 카페에 앉아있는 친한 친구를 만나러 카페 문을 열 때처럼, 나른한 오후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잔잔한 햇살을 내리쬐는 소소한 여유를 느끼는 그 시간처럼,,, 그저 따뜻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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