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대학도서관 도서 대리대출에 대한 소고!
(사례)
타인학생증 대리대출 제재 안내!
1. 타인에게 학생증을 빌려주는 행위
2. 타인의 학생증을 사용하는 행위
타인학생증 사용 시 학생증을 회수함과 동시에 아래 내용과 같은 제재가 가해짐을 안내드립니다.
- 처음 적발 시: 경고 조치로 빌려준 학생과 사용한 학생 모두 도서관 개인정보 주기사항에 대리대출 1회
경고를 부여합니다.
- 두 번째 적발 시: 학생증을 빌려준 학생과 사용한 학생 모두 사유서 제출과 함께 60일간 도서관 출입과
대출, 열람실 좌석 사용을 금지합니다.
학생증은 학교 내의 신분증과 같습니다. 명의를 빌려주는 행위는 삼가주세요.
어느 한 대학도서관 도서 대출 창구에 안내되어 있는 도서 대리대출 제재에 대한 내용이다.
말 그대로 남의 명의를 훔쳐 특정 서비스나 이익을 취하는 행위는 부정행위이며 다수의 일반 이용자들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이며, 공식적인 대학 명의로 발행된 문서(학생증)에 대한 남용, 부정, 위조로 볼 수 있다.
이 업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대출실에서 도서 대출을 해 주는 직원 선생님들은 중요한 시험에 투입된 감독자처럼 모두 매의 눈을 가져야 한다. 도서 대출을 하기 위하여 직원에게 걸어오고 있는 저 이용자가 정말 본인이 맞는지를 빠른 시간 내에 스캔하고 확인해 내어야 한다. 다가오는 이용자를 이용자로 반갑게 맞이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상대해 주어도 되는 이용자인지 의심부터 해야 하는 절차가 되었다. 중요한 건 내가 의심하고 있음을 들켜서도 안된다. 상대를 기분 나쁘게 한다는 건 사서로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이렇듯 대출실에서 이용자와의 만남은 보이지 않는, 그러나 아주 끈끈한 긴장감 속에서 진행되는 것이다. 만약, 매의 눈으로 부정 이용자를 찾아내게 되면 그때부터는 또 다른 전쟁이 시작된다. 규정대로 제재를 가해야 하고, 반발하는 이용자와 보이지 않는 싸움을 벌이며 한바탕 체포 작전을 수행해야 한다. 휴... 이러한 싸움을 하루에 몇 번이나 해야 하는 것인가... 이제 직원 선생님들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이용자가 무섭다. 두렵다. 자기 창구로 안 오기만을 속으로 바라고 기도한다. 저쪽으로 가라. 가라. 가라...
가라. 가라. 가라... 대출실 직원 선생님의 바람대로 이용자가 방향을 틀어 도서 대출을 위한 전산화 시스템(일명 무인대출반납기)으로 이동하면, 그때부터는 새로운 반전이 벌어진다. 이용자에게는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모든 대학도서관에서 공식적으로 설치하여 서비스하는 무인대출반납기에서는 앞서 살펴보았던 대출실에서의 보이지 않는 전쟁이 없는 것이다. 공!식!적!으로 본인 확인을 위한 의심의 눈초리가 없다. 이용자는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 대리대출 형식으로 도서 대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아니다. 다르게 말하면 무인대출반납기에서는 공!식!적으로 이용자 스스로가 알아서 본인일 경우에만 대출반납을 하도록 자율성을 부여한 것이며, 도서관에서는 그저 이용자를 믿고 묵인해 주는 것이다.
(K대학도서관의 경우 은행 ATM기와 같이 도서 대출을 위해서 반드시 본인 패스워드 인증이 되어야만 가능하기 때문에 무인대출반납기를 통하여 도서 대출을 했다는 것은 본인만 가능하다는 전제를 달고 있다.)
그러고 보니 은행 ATM기에 돈을 인출하러 갈 때 반드시 본인만 가야 하는 것일까? 비근한 예로, 필자는 우리 어머니의 은행 ATM 심부름을 많이 다녔던 기억이 있다. 어머니는 기계 사용에 익숙지 않을뿐더러 은행까지 가는 것도 힘들어하시고 항상 바쁘셔서 난 어머니의 카드와 비밀번호를 받아들고 심부름을 다녀왔었다. 카드와 비밀번호를 받았다!는 건, 어머니께서 나에게 어머니의 권리를 위임해 준 것으로 이후 위임에 따른 모든 결과와 책임은 어머니에게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무인대출반납기나 은행 ATM기 같은 기계에서의 사례가 아니더라도, 은행, 동사무소, 공항 등에서 대리인이 권한을 위임받아 처리할 수 있는 업무들은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다. 공식적인 절차를 통하여 본인과 대리인의 권한 위임을 확인하고 이를 통하여 대리인이 받을 수 있는 범위 또는, 본인이 대리인을 통하여 권한을 위임하는 것에 대한 동의 여부와 그 이후 결과에 대한 책임 인정까지를 하나의 서비스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생각해 보면, 도서관의 무인대출반납기는 암묵적으로 위임 대리대출을 인정하는 시스템이 아닌가. 무인대출반납기에서는 타인의 학생증을 이용하여 패스워드를 위임받은 경우에 대리대출을 가능하도록 하면서, 중앙대출실에서만큼은 위임 대리대출을 인정할 수 없고 도서 대출을 할 때에는 반드시 본인이 와야만 함을 규정하고, 이에 대한 제재를 가하려 함은 서비스 어패가 아니던가. 이제 대학도서관도 은행, 동사무소, 공항 등처럼 공식적으로 위임 대리대출을 인정하고 정당한 위임, 대리인 제도를 검토해 볼 필요성이 있지 않을까? 물음표를 던져 본다.
'대리대출'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부정'과 '위임'으로 구분하여 정의한다면 대출실에서의 서비스 변화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1. 부정 대리대출: 부정한 방법으로 습득한 타인의 학생증을 이용하여 도서 대출 등 서비스를 이용하는 행위. 이것은 전술한 것처럼 남의 명의를 훔쳐 특정 서비스나 이익을 취하는 부정행위이며 다수의 일반 이용자들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이고, 공식적인 대학 명의로 발행된 문서(학생증)에 대한 남용, 부정, 위조로 볼 수 있다.
2. 위임 대리대출: 본인의 권리를 타인에게 정당하게 위임하여 대리로 서비스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행위. 이것은 공식적으로 서비스를 위임하는 정당한 행위로 볼 수 있다. 이를 인정하게 되면 이용자 측면에서 다양한 도서관 이용에 대한 기회 부여 및 도서관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 제고 등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대출실 직원 선생님들의 업무 측면에서도 좀 더 편하게 이용자를 맞이할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하는 것으로서 결국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기반이 될 수 있다.
대학도서관(대출실)에서는 도서 대출에 필요한 개인 패스워드 입력 절차를 통하여 인증된 경우 위임 대리대출로 공식 인정해 줄 수 있으며, 혹 발생할 수 있는 패스워드 유출에 대한 민원이 우려되어 망설여 지거나 부정적이라면, 부정 대리대출과 위임 대리대출을 구분해 내기 위한 위임장 제도(위임하는 자와 위임받는 자에 대한 명확한 확인 후 정당한 대리대출 제도 인정) 등을 통하여 최소한 위임 대리대출에 대한 절차를 공식화할 수 있을 것이다. (교수 신분의 경우 조교 등을 통하여 대리대출 요청하는 건수가 오히려 많으며 이 경우 비공식적으로 확인을 통하여 대리대출을 해 주는 경우가 있으므로 위임장 제도 등을 통하여 이러한 비공식적인 업무도 공식적인 업무로 전환시킬 수 있을 것이다.)
중앙대출실에서 근무해 본 적이 있다면, 상당한 인내와 봉사와 서비스 마인드를 요구함을 체감할 수 있다. 이용자와 실제로 대면하여 서비스가 이루어지는 접점인 만큼 대출실에서의 업무 처리에 따라 전체적인 도서관 이용자 만족도가 좌우될 가능성이 크다. 이에 대출실에서의 직원 선생님들은 이용자 서비스에 민감할 수밖에 없으며, 반대로 다수의 이용자를 상대해야 하는 만큼 도서관 규정대로 이용자를 제재해 가며 업무 처리를 진행해야 하는 이중적인 어려움에 노출되어 있게 된다. 그래서 이들은 힘들다. 어렵다. 불안하다(중앙대출실 업무 절차 개선에 대한 세부 사항은 다른 챕터에서 다루어 보기로 한다.).
위임 대리대출에 대한 공식적인 인정 절차는 이용자와 관리자(중앙대출실 담당자)를 모두 웃게 만들 수 있는 제도라고 생각한다. 물론, 위임에 대한 확인 절차, 안내, 다른 도서관 서비스(도서 대출이 아닌 도서관 출입, 열람좌석 이용, 시설 예약 등) 위임에 따른 수위 조절 등 검토해 나가야 할 문제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어떤 식으로 운영해 나가는 것이 우리 대학도서관을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 할 것인지에 대한 다른 시각에서의 접근이 아닐까... 싶다. 쉽게 생각해 보자. 은행, 동사무소, 공항 등 주요 기관에서 가능한 서비스에 대하여 대리인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데, 대학도서관이라고 못할 거 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