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대학도서관 = 감성 도서관: 글판
필자가 일하는 곳에서 광화문까지는 그리 멀지 않은 길이다. 퇴근 후 광화문행 버스를 타고 창밖을 바라보며 앉아 있으면 여기가 서울인가 싶을 정도로 붐비는 인파도 없고 오히려 밤이 되면 산속에 들어앉은 듯 더욱 고요해지는 평창동, 부암동 마을을 지나간다. 계절에 맞게 옷을 갈아입는 삼각산과 인왕산이 형형색색 인사하고, 주변으로는 옹기종기 모여 앉아 따뜻한 저녁밥 지어 먹으며 하루의 피로를 이야기로 풀어가는 듯한 사람들. 그 길은 마냥 조용한 길이다. 가라앉는 길이다. 그 속에 편안함과 포근함이 함께 하는 길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되어 여행하다가 어느 순간 현실의 터널을 빠져나오면 순식간에 왁자지껄한 울림이 몸을 감싸고 그제야 서울 사람들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한다. 부스스 광화문을 향해 내릴 때가 되었다.
사실 그를 만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그쪽으로 발걸음을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산이 거기 있으니 오르는 것처럼, 계절에 따라 삼각산의 꽃 내음, 나무 향기가 솔솔 풍겨 나오듯, 우연인지 필연인지 구별 못할 만남처럼 어느새 그 앞에 서 있는 내가 보일 뿐이다. 광화문 글판! 교보문고 글판! 그가 있기에 필자는 광화문에 내릴 때마다 설렌다. 흥분된다. 긴장된다. 기대된다. 요즘 단어로는 그저 심쿵 하다. 그리고 그가 내 앞에 나타나면 잔잔한 호수에 큰 돌을 던지고 스스로 놀라는 어린아이처럼 내 가슴에도 쿵, 돌이 내려앉는다. 새롭게 만나는 그여도 좋다. 얼마 전 만났던 그가 똑같이 그여도 좋다. 변화도 좋지만, 너무 좋아 암송하며 뒤돌아섰던 그가 그대로 자리하고 있어 다시 내 기억 속의 그를 쌍둥이처럼 불러보는 느낌도 너무 반갑다. 그래서 나에게 광화문 글판은 감성이다. 그대로 아날로그다.
대학도서관에도 이런 감성이, 만년필을 끄적거릴 때의 거슬리지 않지만 기분 좋게 사각사각하는 아날로그적 느낌이 풍겨 나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대학도서관이 지금보다도 훨씬 따뜻해지지 않을까?
인터넷과 스마트폰 없이 오프라인으로 40일을 살아보았다는 '아날로그로 살아보기' 저자 크리스토프 코흐는 책의 말미에 아날로그로만 살아보는 도전 이후 자신에게 남은 것 중 하나로 도서관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진 점, 도서관의 침묵과 탁한 공기를 기억하고 익숙해지게 되었음을 말하고 있다. 인터넷이 일상화되기 전으로 되돌아가거나 아님 현재의 정보 환경에서 일정 기간 네트워크를 중단해 버리는 국가적 이벤트가 실행된다면 사람들은 도서관 냄새를 그리워하게 될까? 왕년에 말이야 내가 공부할 때는 말이야 인터넷이 흔하지 않고 스마트폰이라니 글쎄 전화가 걸리는 무전기만 들고 있어도 우와 하던 그때는 말이야 그래서 무언가 정보를 찾기 위해서는 도서관 서가 사이를 뒤지며 다녀야 했던 그때는 말이야 그게 아날로그라고 굳이 표현할 필요도 없었던 그때는 말이야... 식으로 과거의 감성을 되짚어 볼 여유가 생길까? 우리의 이용자들은 분명 필자를 꼰대라 부르리라. 어려서부터 인터넷과 스마트 기기로 책을 보고 학습하며 디지털 환경이 친숙한 세대에게 아날로그 운운이라니...
이제 디지털 이용자에게 걸맞게 대학도서관도 디지털화되었다. 도서관=전산화가 필수적이고, 나아가 전산화가 우수한 도서관이 최고의 도서관으로, 최고의 서비스로 인정받는 시대가 되었다. 혹시 아직도 아날로그가 남아있는 부분이 있다면 반성하고 빠른 시일 내에 디지털로 변화 시켜야 하는 도서관이 되었다. 지금 세대는 본 적도 없을 목록 카드, 손으로 직접 쓰던 도서 정보, 도서 뒷면에 부착해 놓던 대출 카드(대출 히스토리가 고스란히 기록되고 공유되는 대출 카드는 지금 시대 기준으로 보면 개인 정보 유출 사례로 잡혀갈 운명이라는 안타까운 생각도 든다...)들의 전산화, 모든 도서관 서비스의 디지털화, 도서를 제외한 사물의 디지털화(이제는 도서마저도 전자책으로 구입 서비스되고 있지만...), 이용자 소통 채널(공지사항, 게시판, 참고봉사 등)의 전산화, 사서의 디지털화까지... 책의 역사, 감성, 향기마저도 0과 1로 표현하는 시대가 되었다. 당연한 일이다. 나쁘다는 것도 절대 아니다. 그저 어딘가 마음 한구석에 작은 구멍이 뚫린 것처럼 바람이 새어 나오는 기분? 뭔가 할 일이 있었는데 기억이 나지 않아 계속 찜찜한 느낌? 어쩌다 한 번 구멍 뚫린 양말을 신고 출근했는데 하필 회식 자리가 따끈한 방바닥 자리일 때의 왠지 모를 불편함?
대학도서관 어디 작은 한구석에라도 0과 1이 아닌, 감성의 숫자들을 모아보면 어떨까 싶다. 광화문 글판처럼 대학도서관 외벽에 큼지막한 글판이 하나씩 달렸으면 좋겠다. 서로 자신의 글판을 뽐내듯 예쁘게 꾸며 보았으면 좋겠다. 디지털 게시판이 아닌 아날로그 화면에 글자를 담아 보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 안에서 이용자들이 잠시 따뜻해 지거나, 잠시 쉬어가거나, 잠시 생각하거나, 잠시 추억하거나, 잠시 눈을 감거나,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거나, 잠시 아무도 몰래 눈물을 훔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글판에 담을 내용은 구성원들에게 수시 모집하고, 선정위원회에서 분기별로(분기가 가장 적당할 것 같다) 계절에 맞게, 분위기에 맞게 선정작을 발표하고, 선정작을 추천한 구성원에게는 선물을 제공한다면 충분히 실현 가능한 서비스가 될 것 같다.
요즘 8살, 7살 두 아이에게 국어사전을 넘겨 가며 단어 찾는 법을 알려주고 있다. 아이들은 단어 하나 찾기 위해 몇 번이나 손에 침을 묻히고, 많은 시간을 소요하고 있다. 아이패드 전원을 누르고 포털 검색에 키워드 입력하면 바로 정답이 나오는데... 디지털이 익숙한 요즘 세대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의문이지만, 그래도 동전의 양면처럼 디지털의 뒷면에는 아날로그도 있음을 느끼게 해 주고 싶은 마음이다.
대학도서관에도 0과 1뿐만 아니라 감성과 향수, 냄새가 그대로 묻어나는 아날로그 서비스가 공존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이번 글의 주제가 되어 버린 대학도서관 글판을 시작으로 해서 어느 책 제목처럼 대학도서관에 아날로그의 반격이 일어나기를 상상해 본다.
푸른 바다에는 고래가 있어야지
고래 한 마리 키우지 않으면
청년이 아니지
(2011년 겨울 광화문 글판 - 정호승의 고래를 위하여)
울타릿가 감들은 떫은 물이 들었고
맨드라미 접시꽃은 붉은 물이 들었다만
나는 이 가을날 무슨 물이 들었는고
(2001년 가을 광화문 글판 - 서정주의 추일미음)
나였던 그 아이는 어디 있을까
아직 내 속에 있을까
아니면 사라졌을까
(2013년 여름 광화문 글판 - 파블로 네루다의 44)
얼굴 좀 펴게나
올빼미여,
이건 봄비가 아닌가
(2009년 봄 광화문 글판 - 고바야시 잇사의 한 줄도 너무 길다)
꽃 피기 전 봄 산처럼
꽃 핀 봄 산처럼
누군가의 가슴
울렁여 보았으면
(2015년 봄 광화문 글판 - 함민복의 마흔 번째 봄)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2011년 여름 광화문 글판 - 정현종의 방문객)
대추가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천둥 몇 개, 벼락 몇 개
(2009년 가을 광화문 글판 - 장석주의 대추 한 알)
눈송이처럼 너에게 가고 싶다
머뭇거리지 말고
서성대지 말고
(2009년 겨울 광화문 글판 - 문정희의 겨울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