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이야기

04. 대학도서관 음식물 반입에 관한 소고!

by 해보기

음식은 그 자체로도 충분한 맛과 향을 가지고 있지만, 더불어 함께 했던 그 시간과 공간, 분위기, 추억을 공유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무더운 여름날 누구와 함께 먹었던 그 음식, 길을 가다 갑자기 쏟아진 소나기에 흠뻑 비를 맞은 채 벌벌 떨며 거리에 서서 허겁지겁 먹었던 그 음식, 결혼기념일이나 크리스마스, 생일날 등 무언가를 기념해야 하는 특별한 날에 주문했던 특별한 음식들에 대해 추억하고 그냥 좋았을 느낌들을 품게 된다. 대학도서관에 근무하는 사서로써 슬픈 일은 대학도서관과 음식 간 상호 작용이 거의 전무하다는 사실이다. 도서관하면 함께 떠오르는 음식이 있을까? 커피향 진한 아메리카노 정도? 책을 읽을 때 함께 떠오르는 차 한 잔, 따뜻한 햇살, 전망 좋은 창, 편안한 의자 이미지들... 그러나 현실의 공간으로 돌아오면 대학도서관에서 커피를 마시며 책을 볼 수 있는 장소는 없!다! 별도의 휴게공간이라면 모를까 자료실 내에서의 아메리카노는 규정상 금기인 것이다. 모든 대학도서관이 그렇다. 아쉽지만 아마 그럴 것이다.


캡처.JPG K 대학도서관 안내 자료


K 대학도서관의 경우에도 규정에 의한 관내 수칙에서 열람실 내 취식 행위를 금지하고 있으며, 도서관 내 음식물 허용 기준을 다음과 같이 안내하고 있다. 물론 도서관마다 음식물 반입에 대한 규정을 적용하여 운영하는 당위성은 정당하다.


첫째, 도서관의 주요 기능 중 하나인 자료 관리 및 보존 업무에 위협적이다. 소중하게 다뤄야 하는 자산으로써의 자료에 음식물이 함께 했을 때 예상할 수 있는 피해는 심각하게 느껴지며, 이에 따른 자료 보존 기능의 약화가 가장 큰 이유가 될 것이다. 둘째, 음식물 종류에 따라 나타날 수 있는 냄새와 소음이 함께 도서관을 이용하는 타인에게 방해가 될 소지가 있다. 비록 역겨운 냄새와 소음은 아닐지라도, 그 누군가는 향긋한 커피향 냄새를 맡고도 죽을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당장 민원을 제기할 수 있으리라. 셋째, 이용자의 수준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어떤 공간이든 음식물이 함께 함에 따른 쾌적한 환경의 이미지가 저하될 것이다. 음식물 쓰레기, 찌꺼기 등 미관을 해치는 장면이 많이 연출될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넷째, 도서관 시설, 가구, 장비 등에도 훼손율이 증가할 가능성이 크며, 이에 따른 관리 인원 및 예산도 추가로 필요해질 것이다. 결국 음식물 반입은 도서관 이미지나 이용 만족도를 저하시킬 우려가 더 크다는 당위성이 충분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도서관 내 음식물 반입 규정에 대한 재검토를 물음표로 던져 보고자 한다.


첫째, 음식물로 인한 자료 훼손의 문제는 도서관 내에서만 막는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요즘 이용자들은 카페에서 차 마시며 책을 읽고 공부도 하며, 집에서는 저녁, 간식과 함께 베란다에 앉아 편한 환경에서 대출한 도서를 이용하고 있는데, 이렇듯 도서관 외부에서는 대출한 도서의 다양한 훼손 가능성에 대하여 그저 대출자가 지켜야 할 책임으로 맡겨두면서, 왜 유독 도서관 내부에서만큼은 도서관 이용자가 지켜야 할 매너로 맡겨두지 못하고, 음식물 반입 금지라는 관리자적 시선 모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인지...


둘째, 도서관 이용자가 줄어들고 있음을 걱정하고, 분석하고, 대안을 마련하려는 도서관 입장에서 이용자들의 이용 행태에 따라 변화를 적극 수용해야 하는 건 아닌지... 현재 이용자들은 유료 스터디룸, 북카페, 커피숍 등으로 발걸음을 돌려 개인학습, 정보검색, 과제작성, 집단토론 등을 수행하고 자유로운 분위기, 자유로운 환경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도서관은 아직도 유료 스터디룸, 북카페, 커피숍 등을 경쟁 상대로 생각하지 않고, 우리는 고고한 상아탑이라고 자위하며 배 두드리고 앉아 있는 것은 아닌지...


셋째, 도서관 음식물 반입에 대한 여러 논문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도서관의 형태에 따라, 이용 주체에 따라, 소장 자료에 따라, 시설 구조에 따라, 음식물 반입에 대한 찬반과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는 바, 대학도서관 내 음식물 반입에 대한 이용 만족도도 어떻게 운영하느냐에 따라 저하될 수도 있고 반대로 제고될 수도 있는 것 아닌지... 따라서 이제는 일방향적인 규정 통보가 아니라 더 많은 의견 수렴을 통하여 만족도를 제고시킬 수 있는 방안들을 고려해야 하는 것 아닌지...


넷째, 전술했듯이 실수로 장서가 훼손될 가능성은 도서관 내부와 더불어 관외 어디서든 노출되어 있기 마련인데, 도서관 내부에서는 무조건 금지하니 따르라고 하는 건 과거의 행정 편의적 발상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건 아닌지...


얼마 전 읽은 한 신문 기사에 의하면, 런던의 화이트 채플 아이디어 스토어(영국 런던의 타워 햄릿 자치구에 세워진 다섯 개의 아이디어 스토어 중 화이트채플에 있는 공공도서관)에서는 커피를 들고 와 마시며 책을 보거나 전화를 받는 것, 음악 듣기, TV 보는 것도 소리가 너무 크지 않는 한 누가 뭐라고 하지 않는다. 규제하지 않는 게 규칙. 어차피 책을 빌려 가서 집에서 볼 때는 차도 마시고 음악도 듣고 하는데 도서관에서 그러면 안 될 이유가 없다는 규칙이다. 물론 이 규칙을 대학도서관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불가함에 동의하지만, 그렇다고 지금처럼 무조건 반대!하는 것도 동의할 수 없기에 이제 조금은 유연한 시선으로 함께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 보기를 희망한다. 이용자가 정말 도서관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내고, 그 요구와 도서관 규정 간의 격차를 줄이는 노력이 이어지기를 바라본다.


음식물 반입 관련해서는 대학도서관별 특성에 맞게 공간별 허용 기준을 세분하여 정의하되 좀 더 유연해져도 좋을 것이다. 예를 들어 K대학도서관의 경우 로비 공간은 좀 더 자유롭게(식사류 제외하고는 허용), 나머지 공간(자료실, 열람실)은 생수, 음료, 커피까지 허용해 주는 건 어떨까? 위에서 본 것처럼 음료 용기 형태에 따른, 관리자 입장에서의 기준이 아니라, 이용자가 도서관과 함께 할 수 있고, 도서관을 친구처럼 친숙하게 대할 수 있고, 훗날 도서관 안에서의 추억을 그리워할 수 있도록 그 추억 안에 커피향 정도는 같이 선물해 주는 건 어떨까? 도서관 출입구에서 수색하듯 이용자 손에 든 음식물을 검사하고, 음식물을 들고 있는 경우 도서관 출입이 안 된다는, 그래서 도서관 출입을 위해서는 음식물을 밖에서 다 먹고 들어와야 한다는, 그래서 도서관을 이용하기 위해 찾아온 이용자들을 입구에서부터 쫓아내듯 나무라는... 그런 모습을 벗어나 달콤한 초콜릿을 나눠 먹으며 공부하는 커플을 향해 미소 지어주듯 음식물과 함께 도서관을 찾아온 이용자들도 따뜻하게 맞아줄 수 있는 대학도서관이 되어 보는 건 어떨까? 냄새, 소음, 기타 불쾌감 없는 기본적인 음식물 이용에 대한 매너모드 기준을 마련하고, 도서관을 입장하는 모든 이용자들과 함께 매너모드를 외치며 도서관 이용을 독려해 보는 건 어떨까?


몇 년 전인가 한 이용자가 본인이 대출한 도서관 장서를 훼손하여 자발적으로 도서 변상을 위해 필자를 찾아온 적이 있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집에서 읽다가 커피가 쏟아져 최대한 책을 보호했으나 끝부분에 묻은 커피 자국이 지워지지 않는다는 이유였는데, 사실 필자가 그 책을 보았을 때 본인이 직접 말하기 전에는 훼손 여부를 전혀 알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미안한 마음으로 찾아왔다는 얘기였다. 걱정 말라고 오히려 찾아와 주어서 고맙다고 이용자를 돌려보내면서 이런 이용자들만 있다면 도서관의 여러 규정, 제한 기준들이 좀 더 자유로워질 수 있겠다는 흐뭇한 생각을 해 보았다. 결국 중요한 건, 음식물이면 무엇이든 안된다고 막는 것보다 장서를 받아들이는 이용자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 아닐까?


결론적으로 장서의 훼손은 음식물 반입으로 발생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겠으나, 필요한 부분을 찢어가고, 낙서하고, 내 것인 양 문제 풀고, 아예 도난을 계획하는 등 다양한 가능성이 존재하는 바, 이제 과거에 그래왔으니 음식물 반입은 무조건 금지하고 제재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전체적인 장서 훼손에 대하여 고민하고, 이용자와 대화하고, 편한 도서관 이용을 도모하고, 공공 도서를 이용함에 따른 이용자들의 책임감과 매너를 기분 좋게 알려주고 분위기를 유연하게 만들어 가는 대학도서관의 여유가 필요할 것이다. 음식물이 되었든 다른 상황이 되었든 정말 고의가 아닌 실수로 장서가 훼손되었다면, 이용자를 믿고 도서관 예산으로 다시 구입하면 된다는 여유도 가져 볼 때이다.


이제 대학도서관에서도 책을 읽으며 차 한잔할 수 있는 분위기가, 향기가, 음식이 추억으로 어우러지기를 기대해 본다. 그래서 언젠가 대학도서관에서의 여유와 추억을 간직한 이용자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그 자리를 그리워하며 찾아오기를 바라본다. 향기 나는 추억의 한 페이지에 우리 대학도서관이 지금보다 좀 더 진한 향기로 함께 하기를 꿈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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