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대학도서관 '열람실' 운영에 관한 소고!
대학도서관에서 열람실을 없애야 합니다!!!라고 주장하는 순간,
필자에게 돌이 날아오고 고성이 오가는 험악한 분위기가 연출될 것은 명약관화하다.
대학도서관에서는 시험 기간만 되면 열람 좌석수 부족으로 자리 확보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열람실 자리를 맡기 위하여 새벽 별 보듯 개관 전부터 줄을 서는 진풍경이 펼쳐지고 있고, 좋은 좌석을 선점하기 위한 신경전도 심각하다. 이에 도서관에서는 1인 다좌석 점유, 대리 좌석 확보, 소지품만으로 자리를 선점하는 등 부정 이용을 막기 위한 여러 방안들을 강구해 나가고 있다. 열람실 좌석배정시스템을 도입하여 운영하기도 하고, 특정 시간만 되면 독서실 총무처럼 열람실을 돌아다니며 이용자가 없는 좌석의 소지품들을 임의 수거하기도 하고, 일정 시간 자리를 비워야 할 때는 다른 이용자가 이용할 수 있도록 시간표를 작성하게 하는 캠페인을 벌이기도 한다. 대학도서관에서 열람실 좌석배정시스템이 시작되던 2000년대 초반에는 한 이용자가 여러 좌석 발급받는 것을 금지하기 위하여 지문인식시스템도 연동하여 지문 인식이 되어야만 열람실 좌석을 이용할 수 있던 때도 있었다. 또한, 열람 좌석수 증대를 위한 도서관 공간 확보를 도서관 최고의 해결 과제나 숙원 사업, 발전 방향으로 보고하고 요구하는 상황에서 열람실을 없애야 한다는 주장을 논하다니...
(물론 캠퍼스 공간이 넓어 열람공간이 풍부하게 확보되어 있는 대학에서는 이해가 안 될 수도 있다)
심지어 각종 도서관 평가에서 열람 좌석수를 주요 평가 지표로 삼고 있으며, 다양한 방송 매체에서도 대학별 열람 좌석수를 그 대학도서관의 수준을 평가할 수 있는 항목으로 보도하고 있는 마당에 열람실을 없애야 한다니...
그래도 이렇게 멍석을 깔았으니 돌 맞을 각오하고 대학도서관 열람실 운영에 관한 몇 가지 다른 시선을 제안해 보고자 한다.
첫 번째는 공간 활용의 고민이자, 전술했던 '열람 좌석수 부족'이라는 상황의 전제조건에 대한 고민이다. 앞 단락의 시작은 이렇다. '대학도서관에서는 시험 기간만 되면 열람 좌석수 부족으로 자리 확보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제 보이는가? 열람 좌석수 부족은 시험 기간!!! 에만 발생하는 문제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1년 중 시험 기간이라고 할 수 있는 기간은 과연 얼마나 되는 것일까? 또한, 시험 기간이 아닌 일반 학기 중에는 열람실 활용도가 어느 정도일까?
K대학의 경우 연간 중간고사 기간은 2주(학기당 1회 1주), 기말고사 기간은 4주(학기당 1회 2주)로 1년 중 시험 기간은 총 6주이며, 학생들이 많이 몰리는 시험 기간 전 주까지 다 포함시켜도 연간 총 10주에 불과하다. 그 외 기간(연간 50주로 계산했을 때 나머지 40주)의 활용도를 들여다보면 요즘 대학생들 정말 공부 안 한다는 소리가 바로 튀어나올 정도로 이용률이 저조하거나, 아니면 오히려 이용자 수보다 더 많은 열람 좌석이 확보되어 있어 텅 비어 보이던가 둘 중 하나인 상황이 연출된다. 가령 대학도서관 열람실을 이익 창출을 위한 유료 상업시설로 본다면 현재 대학도서관 열람실을 소유한 주인들은 연간 20% 기간만 활용도가 있고 나머지 80% 기간에는 파리만 날리는 이 사업을 당장 포기하고 그 공간을 타업종이나 다른 열람 서비스로 전환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연간 총 10주에 해당하는 시험 기간 동안만 학생들이 공부할 수 있는 장소가 제공될 수 있다면, 예를 들어 학교 차원에서 시험 기간 동안 개방 가능한 공간을 수합하여 축제 기간과 유사하게 총학생회, 학생처, 총무처, 도서관 등 공동 협력으로 24시간 교내 불 켜고 공부하는 캠퍼스를 운영할 수 있다면, 현재 대학도서관 열람실 공간은 부족 문제를 논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용률에 맞게 최대한 축소하고, 그 잔여 공간을 다른 열람 서비스나 자료 소장 공간 등으로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는 말이다.
두 번째는 '열람실(閱覽室)' 단어의 정의 및 활용에 대한 고민이다. 사전적 정의에 의하면 '열람실'은 도서관 등에서 책 따위를 열람하는 방을 말하며, '열람'은 책이나 문서 따위를 죽 훑어보거나 조사하며 보는 행위를 말한다. 문제는 거의 모든 대학도서관이나 도서관에서, 소장되어 있는 자료들을 열람하며 지식을 습득해 가는 열람의 행위가 아닌 자신의 개인 공부를 위해 혹은 시험공부를 위해 자리 잡고 학습하는 독서실 또는 학습실(이하 학습실로 통일하여 부른다)도 열람실로 통일하여 사용함에 따른 혼란이다. K대학의 경우에도 도서관 내에 자료 열람 공간(자료실)과 학습실 형태의 독립 열람실 공간이 혼재하고 있으며, 도서관 이외 건물에 있는 학습실도 모두 열람실로 명명하고 있는 실정이어서 이에 따라 대학의 모든 열람실은 도서관이 관리해야 한다는 관리체계의 혼란마저 가중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열람실과 학습실 명칭을 용도에 맞게 구분하여 사용한다면, 도서관 내 열람공간은 전문적인 학습 공간으로 진화해 갈 수 있으며, 도서관 소장 공간 부족 문제도 자관의 환경에 맞게 스스로 제어해 나갈 수 있게 될 것이다. 또한, 다양한 건물에 다양한 환경에 다양한 전공에 다양한 인원수에 맞춘 교학팀 주도의 학습실이 배치되어 제공된다면 이용자 편의성 증대와 더불어 첫 번째 논의했던 시험기간 중 도서관에서의 열람 좌석수 부족 문제도 해결해 나갈 수 있는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세 번째는 도서관 열람실 운영의 법적 기준에 대한 고민이다.
현재 도서관이나, 대학도서관 관련 법령 상에서 열람 좌석수에 대한 법적 기준은 없으며, 다만 대학설립운영규정에 의하면 기본시설로 도서관 열람실을 두고 도서관 열람실은 학생 정원의 20%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좌석으로 규정하고 있다. 전술했던 바와 같이, 규정에서 말하는 열람실이 어떤 형태의 서비스까지를 포함하는 것인지, 그리고 반드시 열람실이 도서관 내에만 존재해야 하는 것인지... 만약 시험기간 동안 교내 모든 가능한 공간을 24시간 개방하여 학습이 가능하도록 지원한다면 열람 좌석수 기준을 적용할 수 있는 것인지... 고민이 필요한 부분이다.
학습실이 꼭 도서관에 있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자료를 이용하는 것이 아닌, 단순히 개인 공부를 위해 필요한 공간을 도서관에서 관장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서관에 있어 학습실 형태의 열람실이 필수 불가결한 서비스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현재 이용자에게 있어 도서관의 열람실은 도서관을 찾는 주요 목적 중 하나이며, 도서관에서 가장 많이 이용하는 중요 장소이기도 하다. 도서관 입장에서도 학습실 형태의 열람실을 통하여 많은 이용자들이 도서관을 찾게 만들고, 도서관에 머무르면서 추가적인 활동(다양한 자료 이용, 다양한 행사 참여, 다양한 도서관 프로그램 연계 가능 등)을 제공할 수 있게 된다. 이에 대한 진지한 논의와 학습실 형태의 열람실이 아니더라도 많은 이용자들을 도서관으로 유인할 수 있는 다양한 정책들이 함께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도서관 건축물, 공간에 관심 많았던 한때 읽었던 책들 중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자크 보세 글)이나 지상의 아름다운 도서관(최정태 글)에 보면 세계 유명하고 아름다운 도서관 소개와 함께 도서관 내. 외부 사진들이 보여지고 있다. 책을 읽으며 아 우리나라 도서관들이, 우리 대학도서관도 이런 도서관의 모습을 간직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느낌도 든 반면, 현실적으로 우리 도서관 상황과는 거리감이 크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었다. 그나마 우리 대학도서관들의 아름다운 사진들 속에는 넓은 학습실 형태의 열람실 사진이 꼭 자랑스럽게 들어가 있는 반면, 세계적으로 유명한 도서관들의 대열람실은 말 그대로 서가 속에 자리하고 있는 열람 좌석 이미지여서 부러웠던 기억이 난다. 정말로 벽처럼 꾸며진 서가에서 무슨 책이라도 뽑아내고는 열람 좌석에 앉아 바로 책을 펼쳐보고 싶은 충동이 강하게 들 정도로...
대학도서관에서 열람실을 없애야 합니다!!!라고 주장했던 첫 문장은 수정되어야 한다.
그리고 연간 20% 기간만 활용도가 있고 나머지 80% 기간에는 파리만 날리는 학습실 공간을 진정한 지식 탐구, 정보 활용, 커뮤니케이션 열람 공간으로 변화시켜 나가는 노력도 검토되어야 한다.
자신의 개인 공부를 위해 혹은 시험공부를 위해 자리 잡고 학습하는 학습실을 대학도서관 전유물이 아닌 교내 전체 공간으로 확장하고, 도서관에서는 말 그대로 소장되어 있는 자료들을 열람하며 지식을 습득해 가는 열람의 행위에 충실할 수 있는 아름다운 열람실을-그래서 도서관에 아무 생각 없이 들어오는 많은 이용자들이 아 여기서는 서가의 책들을 훑어보고 원하는 책을 뽑아내어 무작정 책을 읽고 싶다는 충동을 느낄 수 있도록-만들어가고 보존하고 확장해 가는 노력을 경주하기를 바라본다.
따라서 이렇게 그 문장을 수정하며 마무리한다.
"이제 대학도서관에서는 학습실은 없애고 대신 아름다운 열람실(閱覽室)로 변화시켜 나가야 합니다!!!"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