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대학도서관 = 감성 도서관: 도서관 길
하정우의 '걷는 사람, 하정우' 책에 보면 주인공 하정우는 많이 걷는다.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걷고, 답이 없을 때마다 그저 걷고, 힘들 때 무작정 걷고, 생보(생활 속 걷기)와 제뛰(제자리 뛰기)를 습관처럼 실천해 가고 있다. 내가 가는 곳이 길이 된다는 말처럼 집이나 회사 주변부터 시작하여 국내 한강, 다양한 길들을 넘어 해외 이탈리아, 스페인, 하와이에서도 걷고 또 걷는 주인공, 걷기와 함께 인생의 길을 만들어 가고 있는 주인공, 걸어가는 그 길의 주인 그 인생의 주인이 바로 주인공임을 느꼈던 책이었다. 책장을 덮으며 문득 대학도서관으로 향하는 길 위의 주인공들을 응원해 주고, 주인으로 대접해 주고 싶다는 바람으로 꿈꾸는 듯한 이 글은 시작되었다.
첫 번째 꿈.
대학도서관으로 향하는 그 길에 레드카펫을 깔아 놓자!
공식 행사에서 극진한 환영과 영접의 의미로 이용되는, 각종 시상식이나 영화제에서 주인공으로 대접해 주는 용도로 사용되는 레드카펫이 도서관에도 필요하다. 대학도서관으로 향하는 길에 선 우리의 이용자들은 바로 도서관의 주인공이 아니던가.
레드카펫을 밟으며 도서관을 이용하기 위하여 걸어오는 이용자들의 기분을 상상해 보자. 가벼운 발걸음을 느껴보자. 만약 레드카펫에 이용자들의 당당한 기분, 발걸음의 상쾌함을 측정하는 센서를 달아 놓는다면, 아마 백이면 백 긍정적인 에너지 최대치가 나오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이 수치가 공식적으로 집계되어 대학도서관 평가에 반영된다는 상상은 너무 지나친 것이겠지. 설사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고 해도 최소한 이 도서관의 주인은 자신이라는 기분 좋은 분위기 정도는 가지고 도서관을 이용하게 되지 않을까?
1월 1일 새해 첫날 도서관의 레드카펫을 첫 번째로 밟고 들어온 이용자!
시험기간이 시작되는 날 무거운 전공서적과 같은 마음으로 도서관을 향하다가 마침 그날 행운의 숫자 13번째 레드카펫의 주인공이 되어 깜짝 선물을 받게 된 이용자!
첫 눈이 오는 날 마법처럼 깔린 레드카펫 위에서 뒹굴뒹굴 눈사람이 되어버린 이용자!
한 해의 마지막을 알리는 크리스마스 혹은 연말에 턱시도, 연미복을 차려 입고
레드카펫 위에서 한껏 포즈도 취해보고 포토존에서 와인 한 잔과 함께 멋진 사진도 찍고, 올 한해 잘 살았다고 수고했다고 자신에게 보내는 수상 소감도 준비해 오는 이용자!
아! 대학도서관으로 향하는 그 길에는 레드카펫이 필요하다!
두 번째 꿈.
대학도서관으로 향하는 그 길에 감성을 뿌려두자!
걸어가다 보면 명언들이 눈에 들어오면 좋겠다. 광화문 글판처럼 주기적으로 감성이 느껴지는 글귀, 명언들이 여기저기에서 함께 했으면 좋겠다. 걷는 동안 심쿵한 기분을 느껴볼 수 있도록 감성을 뿌려두면 좋겠다. 요즘 지하철역에 보이는 시 항아리 단지처럼, 언젠가 다방이나 옛 카페에 가면 운을 뽑을 수 있는 기계가 있어 동전을 넣으면 돌돌 말린 작은 종이가 하나씩 나와 나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열어보고는 했던 그 느낌처럼, 힘든 시절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향하는 골목길에서 뜬금없는 다소 이상 야릇한 벽 낙서 하나에 나도 모르게 빵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던 그때처럼, 오래된 책 정리를 하다가 고이 끼워둔 은행나무 잎과 함께 전하지 못한 연애편지를 발견하고는 얼굴이 붉어지던 그 느낌처럼... 그 길에 아름다운 명언 단지가 있어도 좋겠다. 그 안에 대학도서관으로 향하는 주인공 이용자들을 위한 선물로 명언, 시, 힘나는 글귀, 꽝! 등 다양한 추억과 웃음과 응원을 함께 담아두면 좋겠다. 오늘은 어떤 응원을 받게 될까 궁금해하며 발걸음이 더 가벼워지도록... 꽝이면 어떠하리 웃음은 또 하나의 응원인 것을...
어릴 적 읽었던 책들을 보며 향수에 젖어보고도 싶다. 연도별 베스트셀러나 30년 전 오늘 출판되었던 책 들이나, 책의 역사와 함께 하는 컬렉션들이 전시될 수 있으면 재미있겠다. 어렸을 적 한번 읽고 잊어버린 책을 오랜만에 다시 만났을 때 아 내가 언제, 어디서, 어떤 느낌으로 이 책을 읽었었는데... 하는 과거의 한 페이지가 불쑥 떠오르기도 하고, 그래서 그 책을 다시 읽다 보면 어? 이 책이 이런 내용이었어? 내가 기억하고 있는 느낌과 완전히 다른데? 하는 세월의 흔적 속에 당황해하던 느낌... 다들 그런 경험이 있지 않은가?
필자가 커서 다시 읽고 가장 당황해했던 책은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성자가 된 청소부, 어린 왕자였다... 어릴 적 읽을 때는 그저 재미있다고 느꼈었던 그 책이, 시간이 지나 다시 만나보니 철학이었고 삶이었고 슬픔이었고 외로움이자 고전이었다. 그 길에 이런 책들이 함께 할 수 있다면 아마도 그 길은... 아름다우리라...
세 번째 꿈.
대학도서관으로 향하는 그 길에 철학을 담아두자!
무작정 걷고만 싶어지는 길.
아무 것 하지 않아도 되는 길.
왠지 사색과 철학 두 단어가 먼저 떠오르는 길.
생각이 많아지기도 생각이 없어지기도 하는 길.
해외 유수 관광지나 대학 근처에 명소로 알려진 철학의 길처럼... (사실 누군가는 그 길에서 감흥을 받을지 모르겠으나 해외여행을 목적으로 간 여정에서의 철학의 길 탐방은 조금 아이러니하다는 생각도 든다. 한 번 놀러 가서 철학과 아름다움을 느끼는 길이 아니라 아마도 수없이 그 길을 오가며 삶과 사랑을 생각한 사람들만의 철학적 공간이 아니겠는가.)
사색과 철학, 삶과 사랑이 녹아든 길은 이미 우리 대학도서관 캠퍼스 내에 많이 존재한다. 이미 만들어져 있는 그 길들에 이름을, 의미를 부여하면 되는 것이다.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듯, 길을 길들이듯, 관계를 맺듯...
개개인의 이용자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그 길을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혼자 있고 싶을 때 찾아가고 싶도록, 반대로 선후배들과 진지한 토론을 해야 할 때도 그 길을 떠올리고, 그저 책을 읽고 싶거나 명상에 잠기거나 데이트를 할 때에도 떠오르는 길. 이제 그 길을 또 하나의 도서관이라 부르고 싶다. 보이지는 않아도 그 길을 지난 사람들의 삶과 추억과 지혜의 향이 우거진 나무 내음과 함께 어우러질 것이다.
필자가 다녔던 대학은 서울의 많은 대학들이 그렇듯 캠퍼스 경사가 심한 편이어서 삐질삐질 하며 오르막길을 걸어 다녔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중앙 도서관도 예외는 아니어서, 급격한 경사 속에 중앙 도서관까지 이어지는 무한 계단을 오르며 108번뇌를 생각했었다. 백수십 개의 계단을 오르다 보면 비밀 통로처럼 나타나는 도서관 건물 약간 아래로 평평한 나무숲길이 있고 양쪽으로 벤치가 놓여져 있던 그 길... 수많은 길 중 가장 좋아했고 가장 추억이 많은 길이기도 하다. 도서관 안에서 책 보는 게 지겨워지면 그 길에 앉아 있었다. 책을 보기도 하고, 나무만 쳐다보고 있어도, 숨만 쉬고 있어도 좋았다. 봄, 여름, 가을, 겨울마다 길은 계절에 맞게 옷을 갈아입었고, 따뜻한 봄 내음, 무더위 속 시원한 그늘, 수북이 쌓인 낙엽, 눈 덮인 벤치를 바라보며 계절을 느꼈던 곳.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도 그 길만은 계속 생각나고 그리워지고 그래서 다시 가보고 싶은 그 길!
이제 대학도서관으로 향하는 그 길도 누군가에게 그런 의미가 되었으면 좋겠다.
꿈같았던 대학도서관 길의 여정은 여기까지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