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 금연과 금주에 관한 소고!
금연과 금주 중 어느 쪽이 더 성공하기 쉬울까? 담배를 알고 술을 아는 사람만이 고민해 볼 주제이기도 하고, 그렇기에 필자에게도 고민해 볼 기회가 주어진 셈이다. 아무나 접근할 수 없는 시스템에 인증되어 허가받은 사람처럼 두 가지를 모두 취해보지 않아 이 문제에 접근할 수 없는 사람들보다 굉장히 우월함 비슷한 자부심까지 느껴지는 데 대하여 어이없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아주 틀린 느낌도 아니라는 듯 펜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가는 걸 어쩌나 싶다. 기본적으로 흡연과 음주는 개개인의 의지와 적당한 이성적 판단으로 선택하는 기호품이라는 데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이에 장담하건대 이 글은 절대 금연이나 금주를 조장하거나 설득하려는 내용이 아님을 처음부터 밝힌다.
금연! 정말 쉽게 꺼내어서는 안되는 단어. 그래서 오히려 부담 없이 남발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주변 분위기도 극명하게 갈리기는 하지만 결론은 다를 바 없다. 금연하겠다고 선언했다가 실패했을 때 주변의 반응은, 다들 그런 거지, 금연이 쉬운 일이 아니지, 위로해 주던가 아님, 그럼 그렇지 니 주제에 무슨, 니가 하면 남들 다 하게, 하는 인신공격성 발언에다가 니가 금연을 하면 자기 손에 장을 지지겠다는 도박성 발언까지 서슴지 않지만 모두 금연이 쉬운 일이 아님을 서로 서로에게 다짐하고 확인하고 위로받고 있는 셈이다.
적은 자기 자신뿐이다.
보건소를 다니며 상담을 받고, 금연 유지를 위한 친구도 만들고, 온갖 금연패치, 보조제를 주변에 깔아 놓으며, 일종의 폐쇄병동 같은 금연 학교에도 들어가 같은 입소 동기들에게서 위안과 위로와 금연 욕구를 높이는 자극을 받기도 하지만, 결국 금연의 문을 통과하고 안 하고를 결정하는 것은 전적으로 자기 자신과의 대화뿐이다. 이 대화가 성공하면 문턱을 넘어서는 것이고, 이 대화가 삼천포로 빠지거나 아님 일종의 타협점에 도달하여 서로 좋은 게 좋은 것으로 마무리되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면 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금주는 금연보다 무찔러야 할 적이 많아지기에 더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 앞에서 전술한 것처럼 금연은 자기와의 싸움 위주인데 반하여(딱히 담배를 막 권하고 그러지는 않으니...), 금주는 보이지 않는 적이 수시로 나를 위협하고 찌르고 뒤에서 공격한다. 특히 술 권하는 문화가 통용되고, 술 취해서 하는 행동들이 아주 위협적이지 않는 한은 웃음으로, 가벼운 취중 실수로 용인되고, 나아가서는 오히려 술 취해서 상대방을 웃기고 즐겁게 해 주는 것이 능력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는 우리 사회에서는 더 심각하다.
그래서 우리는 술 마시던 사람이 갑자기 오늘 술자리에서는 금주를 하겠다고 하면 의아해하고, 이상한 눈초리로 무슨 일인가를 궁금해하다가, 점점 기분이 나빠지면서 어떻게든 이 사람을 술 마시게 해야 자신이 사는 것처럼 술을 강요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간다. 기분 나쁜 일이 있으면 더 한잔해야지? 아님 이 자리를 내켜 하지 않아서 그런가? 나를 무시하는 것인가? 한 잔이라도 하는 것이 예의 아닌가? 술자리에서 술을 안 마시면 이 자리가 뭐가 되나?... 이유 모를 금주를 넘어 이유가 타당한 경우- 약을 먹는다던가, 몸이 안 좋거나 병원에서 금주를 권유했다던가, 오늘 중요한 일이 있어 술을 마시면 안 된다거나-에도 마찬가지로 술이 만병통치약으로 둔갑하여 술만 마시면 모든 일이 해결되는 것처럼 이제 우리는 한 잔만 한 잔만을 외치며 금주를 막아야 하는 강력한 사명을 띤 부대원들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사실은 이런 분위기를 예상하고 아예 내가 마시지 않으면 상대방에게 피해준다고 생각하는 자기와의 타협이 더 무서운 적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금주를 막는 더 큰 적은 바로 추억이다. 담배와 달리 술에는 추억이 묻어나기 마련이다. 그날의 분위기, 사람, 냄새, 이야기, 안주, 술과 한 모든 시간과 공간이 좋은 추억으로 남아 그 기억 속에 술과 함께 자리하고 있다. 물론 실수한 기억, 나쁜 기억도 있지만 이런 안 좋은 기억들도 시간이 지나면 어느새 치기나 어린 날의 풋사랑 같은 아련한 추억으로 변색되어 머무른다. 금주를 하게 되면 앞으로 이런 추억들을 만날 수 없다는 불안감이 가장 큰 두려움인 것이다. 어느새 술은 아름다운 추억 속에 자리한, 힘들 때 꺼내보는 오래된 사진첩 속 가족처럼, 친근한 어린 시절 골목 친구로, 오래된 문방구 추억 속의 장난감처럼, 찢어지기는 했어도 신을 때마다 편함이 느껴지는 오래 신은 신발처럼, 미래까지는 아니어도 과거와 현재를 함께 고민하고 함께 걸어가는 파트너인 양, 내 인생의 마법의 약이 되어 좋은 의미로 내 옆에 자리하고 있는 셈이다.
짜릿한 그날만의 그 느낌이 술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 믿게 만드는 마법의 약. 그래서 금주를 하는 순간 술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추억이 사라지는 것이고 앞으로의 좋은 시간들이 사라지는 것이어서 이제는 어디서 이런 추억과 즐거움을 찾아야 하나... 한숨을 쉬게 되는 것이다. 한숨을 쉬며 다시 술을 찾게 되는 것이다.
물론, 금연이든 금주든 개인차는 있겠으나 일정 기간만 지나면, 그래서 산고개 몇 개를 넘어가야 하는 산악마라톤처럼 죽을 것 같은 고비를 몇 차례만 잘 넘기면, 어느 순간 고요한 평온이 찾아온다. 담배나 술이 없으면 죽을 것 같았던 느낌도 어느새 사라지고 오히려 술 담배 없이 사는 게 좋을 수 있구나 하는 환함이 나를 감싸준다. 그때가 되면 담배든 술이든 내 몸에 들어오는 것을 두려워하고 심장 떨려 하고 어지러워 하게 되며 오히려 내 정신을 흐리게 만드는 것들에 대하여 무섭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오히려 평상시의 내 모습, 걸음걸이, 말투를 그리워하고 지켜 나가게 되는 것이다. 단, 그때까지, 아무도 모르는 개인별로 다 다를 수밖에 없는 언젠가의 그때까지는 금연 금주한 사람들이 버릇처럼 되뇌이는,,, 방심은 절대 금물인 것이다.
금연과 금주가 나에게 어떤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지, 그에 반하여 무언가를 금하고 있는 데에서 찾아오는 부정적인 정신적 감정들이 나에게 어떤 해를 끼치고 있는지 그건 이 글에서 논의할 계제가 아닐뿐더러 알 수 없다라고 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수많은 책들이 금연이나 금주를 했을 때 단기간에 얻을 수 있는 여러 장점들, 그리고 장기적으로 받게 되는 안정과 건강 등을 해답으로 제시하고 있지만, 사실 그건 마치 수십 년 후에 내가 어떤 모습으로 늙어가고 있을까를 상상해 보는 것 혹은 내 아이들이 커서 어떤 직업, 어떤 모습으로, 어떤 고민을 하면서 살아가게 될까를 지금 궁금해하는 것과 같이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확실한 정답으로만 느껴지기 때문이다. 오히려 흡연이나 음주를 하면서도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는 사람들도 많지 않느냐는? 또는 금연 금주를 하더라도 당장 내일 사고나 다른 문제로 죽을 수도 있지 않느냐는? 당장 내 눈앞에 삶 or 죽음을 선택해야만 하는 YES OR NO의 심각한 문제는 아니지 않느냐는? 그래서 반드시 보험이 필요한 것은 알겠는데도 불구하고 갱신할 때마다 내는 보험료가 매번 아깝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처럼 금연, 금주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흡연, 음주에서 얻는 만족도 버릴 수는 없다는 반문도 설득력 있게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연 금주 이후의 그 답은 의사나 심리학자나 상담사가 개개인에게 답변해야 할 문제인 것이다.)
단, 나의 임상 경험으로 보았을 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시간이 선물로 주어진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단순히 흡연이나 음주를 멀리하면 그 시간 동안 난 뭘 하면 되지? 하는 생각을 했었다. 금연 초창기에는 단순히 남들이 담배 피울 시간에 난 뭘 하면 좋을까? 책이라도 좀 볼까?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하여 담배 피우는 약 3분의 시간만을 고민하다가 점점 종이에 물이 스며들 듯 시간의 범위가 넓게 퍼져갔다. 담배가 없을 때 담배 사러 왔다 갔다 하는 시간, 담배 피우러 나왔는데 라이터가 없어서 다시 돌아가거나 라이터를 빌려 줄 다른 사람을 기다리거나 하는, 담배 한 대 하러 나왔다가 아는 사람을 만나 이런저런 얘기들 나누다 보면 어느새 아이쿠 들어가야 할 시간이네 라고 느끼는(물론 이런저런 대화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다. 이것이 사회생활이고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주요한 시간임을 부인할 수 없다)... 이제는 담배 피울 장소를 찾아다니는 시간조차...
금주로 인해 주어지는 시간 선물은 금연 때보다 더 크게 다가온다. 단순한 술자리 시간 이외에도 저녁에 술 마시기 위해 점심부터 먹을 장소를 검색하는 시간, 이동시간, 그다음 날 숙취를 없애기 위한 노력의 시간, 화장실에 앉아 있는 시간, 잠 못 들고 뒤척이거나 반대로 잠이 안 들어 고생하다가 다음 날에 두 배로 보상 잠을 자야 하는 시간, 다음 날 무언가를 하기로 마음먹었다가 컨디션 난조로 취소하고 컨디션 회복을 위해 대신 쓰게 되는 시간들...
이런 시간들이 쌓이고 쌓여 어느 순간 눈덩이처럼 불어나 나에게 큰 시간이라는 선물을 주고 있음을 느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금연 금주의 장점인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선물 받은 이 시간을 어떻게 쓰는 게 좋을지를 고민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고민대로 시간을 활용해 나가다 보니 또 눈덩이처럼 쌓여서 그 옆에 생각지도 못한 결과물들이 조금씩 조금씩 축적되어 가고 있다.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금연과 금주를 했을 때 어떤 장점이 있는지를 설명할 수는 없지만, 분명히 눈에 보이는 건 선물처럼 나에게 주어지는 일정한 시간과, 그리고 그에 따른 결과물들인 것이다. 이런 거라도 있어야 금하는 것에 대하여 고민해 볼 여지가 있지 않겠는가?
필자 역시 나에게 주어진 일정한 시간을 활용하여 이 글을 썼고, 이 글을 당신이 읽고 있고, 이 글이 결과물로 남아 있다. 결국 금연 금주를 통하여 적어도 이 글 하나는 건진 셈이다.
이제 나에게는 담배와 술병 대신에 이 글이 남았다. 믿거나 말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