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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레리뇽 고원, 선함의 뿌리를 찾아서

2025년 4월 여성 작가의 책 | 비바레리뇽 고원 (매기 팩슨)

by 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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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의 말

우리는 문화가 무엇을 의미하고 무엇을 의미하지 않는지를, 한 사람이 동시에 많은 것이 될 수 있다는 것과, 그중 단 하나로 그 사람을 정의할 수 없다는 것을 이야기했다. 우리는 특정 국가 출신일 수 있지만, 그 사실 하나로 정의되지는 않는다. 우리는 특정 언어로 말하지만, 역시 그 사실 하나로 정의되지는 않는다. 종교도 마찬가지다. 직업도 마찬가지다. 계급이나 인종, 젠더를 비롯한 모든 것이 마찬가지다. (p.131)
누가 누구와 무엇을 하는가? 신성한 인간은 없는 듯 보인다. 어쨌거나 땅에 묶여있는 무리는 신성하지 않다. 특정 철학이나 생각, 종교를 지녔다고 신성한 인간인 것이 아니다. 오로지 인간만이 존재하며, 그 인간이 사랑함으로써 신성해질 뿐이다. 그리고 신성한 장소도 없다. 그 어떤 국가도, 마을도, 사막도, 섬도, 심지어 고원도, 그 자체로, 그 경계만으로 신성하지 않다. 오로지 장소만이 존재하며, 그 안에 사랑의 행위가 모여 신성해질 뿐이다. 그럴 때 사막은 한 송이 장미처럼 피어난다. 그것이 바로 과학이다. (p.512)




‘선함’의 뿌리는 무엇일까? 인간이 얼마나 추악해질 수 있는지 우리는 충분히 목격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힘든 상황에서도 선함을 택하는 이들을 보며 경이를 느낀다. 저자는 전쟁을 연구하다가 포기하고 선함의 뿌리를 찾아나선다. 책의 제목인 ‘비바레리뇽 고원’에서.

프랑스의 비바레리뇽 고원은 특별한 곳이다. 세계 2차대전 당시 이곳에서 다니엘 트로크메라는 한 남성이 유대인이든 누구든 할 것 없이 아이들을 보호하고 가르쳤다. 그는 나치에 의해 정치범으로 체포되었고, 결국 수용소에서 목숨을 잃었다. 세월의 간극이 지나 이곳은 현재 CADA라는 단체에서 난민 신청자를 보호하고, 그들을 돕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과거에도 아이를 보호하던 공간이 이제 난민을 보호한다니, 이 공간만이 지니는 특수성이 있는 걸까?

사회과학자인 저자는 직접 비바레리뇽 고원으로 가 CADA와 함께 난민을 돕는다. 직접 난민의 이야기를 통역하고, 난민을 돕는 이들과 함께 일하고, 고원의 아이들을 가르친다. 그 과정에서 저자는 자신이 직접 겪고 느낀 것을 기록한다. 저자는 관찰자이자 동시에 구성원이 된다. 쉽게 답을 제시하기 보다는 자꾸 질문하며, 질문은 또 다른 질문을 낳는다. 동시에 이 질문은 선함의 뿌리 뿐만이 아닌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이 되기도 한다. 트로크메의 먼 친척이자, 유대인이자, 사회과학자임에도 종교를 가지고 있는 저자 자신에 대한 개인적인 질문이다.

이 모든 질문에 대해 쉽게 답을 내기 어렵다. 선함의 이유이든, 나 자신의 모순이든, 단순한 답은 원래도 없었기 때문에. 그저 그 안으로 들어가 경험한 ‘나’가 있을 뿐이다. 저자는 독자에게도 답을 말해주기보다 보여주기를 택한다. 독자는 저자를 따라가며 자신에게 질문을 던진다. 선한 행동을 하게 만드는 요소는 무엇인가? 모두 생각하는 바가 다를 수 있다. 우리 역시 답을 찾고 있으나 답을 찾기는 어렵다.

지상 천국처럼 느껴졌던 고원에서도 여느 곳과 다르지 않게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고원 역시 낙원이 아니며, 공간에 특수성이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우리는 마주해야 한다. 절대적인 답이 없다는 사실을 알면 절망하게 된다.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게 있다면, 사람과 함께 부대끼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선함은 어떤 뿌리가 있는 게 아닌, 사랑으로 인해 선한 행동이 생길 뿐이다. 뿌리가 있다면, 장소에 존재하는 인간의 사랑, 그것이 어쩌면 뿌리에 가까울 것이다. “오로지 인간만이 존재하며, 그 인간이 사랑함으로써 신성해질 뿐이다.”

어쩌면 의문이 들지도 모른다. 그 두꺼운 책의 결론이 사랑이라니? 마치 성경에나 나올 것 같은 구절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사랑이 중요하다는 걸 누가 모르냐, 라고 되물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도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것은 저자가 직접 보여줬기 때문이다. 다니엘 트로크메의 삶을, CADA의 삶을,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의 삶을 바로 그 안에 들어가 보여줬기 때문에 나도 다시 한 번 뛰어들 준비를 한다, 타인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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