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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나 Jan 08. 2022

안식처가 되어주는, 파도는 나에게

2020년 5월의 그림책 | 파도는 나에게 (하수정)


가끔 그런 날이 있지 않은가. 모든 걸 다 던져버리고 새파란 바다를 보고 싶을 때가. 그저 밀려 왔다 밀려 가는 것을 반복하는 파도가 잘게 부서지는 모습을 아무 생각없이 바라보고 싶을 때가 있다. 그림책 속 화자도 아마 비슷한 생각을 했나보다.

차례차례 보여주는 이불에 파묻힐 듯한 잠자리, 잡다한 물건이 가득한 가방, 현관의 운동화, 버스에서 밖을 바라보는 풍경은 바다를 가기 위한 일련의 준비 과정 같기도 하고, 일상의 순간순간에서 바다를 떠올리는 것 같기도 하다. 물건으로 가득하고 다양한 색으로 채워진 꽉 찬 세계에서 '나를 부르는 그곳으로' 가는 순간 색은 파랑으로 단순해지고 우리가 기대하는 만큼 푸르러진다. 마침내 한 장을 넘기면, 내가 기다린 만큼 바다도 나를 기다렸다는 듯 "너 왔구나." 하며 나를 맞이한다. 새파란 바다의 색 아래 뭍에 부딪히는 파도를 파란색, 하늘색, 하얀색 색색으로 실감나게 묘사한 것과 더불어 '파도 모양'으로 자른 종이를 통해 표현했다. 파도 모양 페이지를 하나씩 넘기다 보면 내 귓가에 파도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마지막 파도 모양 페이지를 넘기면 모래 사장이 나타나 내 발이 그곳에 푹 푹 빠질 것만 같다.

한참 눈앞의 바다를 만끽해봐도 우리는 바다에서 언젠가 일상으로 돌아오듯, 끝을 향해 책장을 넘겨야 할 때가 있다. 그때 바다는 우리에게 언제든 안식처가 되어주겠다는 듯 '다음에 또' 오라고 말을 건다. 한여름밤의 꿈처럼 끝난 듯한 바다 여행은, 그것이 꿈이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처럼 다음장에 작은 종이 주머니에 담긴 조개를 통해 이것이 우리 안에 흔적을 남겼음을 보여준다. 그때 파도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모두가 다르게 들었을 것이다. 그것이 위로이든, 무엇이든, 각자가 원하던 걸 얻고, 혹은 원치 않던 걸 바다에 내려놓고 왔으리라.

작가의 말을 보면 작가 또한 비슷한 경험을 했기에 이런 이야기를 전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여름의 문턱에 읽기 좋은 그림책이자, 바다에 직접 가지 않아도, 바다에 다녀온 듯한 느낌을 선사하는, 여러 말이 필요없는 그림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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