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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나 Jan 08. 2022

인생은 언제나 무너지기 일보 직전?

2020년 5월의 읽고 싶은 책 | 인생은 언제나 무너지기 일보 직전

책속의 말

사랑이나 우정으로 이룩되는 공동체의 마음도 있을 테지만, 투쟁이나 연대로 이룩되는 연인들의 마음도 있을 것이다. 사랑을 사랑이라 말하기 이전에 투쟁이라고 말해야 하는 사람들을, 존재를 존재라 말하기 전에 존재-한다, 라고 말해야 하는 사람들을, 결혼을 결혼이라 말하기 전에 동성 결혼이라고 밝혀 말해야 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는 일이 여전히 문학의 몫임을, 믿고 싶다.
세상의 모든 짝꿍이 자유롭게 손잡을 수 있기를. (김현 작가노트)
사람에게 인정이란 무엇일까. 왜 혼자서도 괜찮다고 마음을 다잡아도 가끔은 참을 수 없이 누군가에게 자신을 드러내고 싶고, 이야기를 하고 싶어지는 것일까, 찔리고 피가 나고 붕대를 감을 일이 생길 걸 알면서도. (정원사들)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의 눈으로 그저 자연스럽게 보고 행동하는 게 편견이야. (라디오를 좋아해?)




큐큐퀴어단편선 두 번째 이야기, 인생은 언제나 무너지기 일보 직전은 첫 번째 단편선처럼 텀블벅을 통해 구입했다. 사실 작가진만 보고,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지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로 구입했다. 지난번 단편선에 비해 다양한 퀴어의 모습을 담았다. 에이섹슈얼과 트랜스젠더의 이야기에 무척이나 반가웠다. 그 중에서도 에이섹슈얼을 다룬 윤이형 작가님의 "정원사들"은 더욱 그랬다.

"정원사들"은 내가 처음으로 읽는 에이섹슈얼 주인공의 이야기였다. 아니다, 생각해보니 무성애자 이야기를 모은 독립출판물을 몇 개 가지고 있으니 아예 처음은 아닐지도 모르겠으나, 이제껏 에이섹슈얼이 주인공인 작품은 도통 만나보기 힘들었던 게 현실이다. 퀴어소설이라고 해도 유성애자가 주인공이기 마련이고, 사실 나마저도 에이로맨틱, 에이섹슈얼의 이야기는 기대하지 않았다. 큐큐퀴어단편선 전작만 해도 대부분 이야기가 게이와 레즈비언 중심이었다. 대부분 퀴어 영화, 드라마, 소설도 아마 그럴 것이다. 그런데 에이섹슈얼 주인공이라니? 세상에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이 보이는 사람이 에이섹슈얼, 에이로맨틱이었다. 누군가는 그들이 왜 퀴어냐고 하기도 한다. 퀴어가 힙해보이니 그걸 액세서리처럼 걸치려는 거냐고. 등장인물 중 한 명인 팀장님도 나와 마찬가지로 소수자 정체성을 걸치려고 하는 거냐, 이미 결혼도 했으면서. 이런 반응일까봐 고민을 했었다. 그녀는 기혼자에 아이도 있지만 사실 호모 플렉서블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이 가짜처럼 느껴졌다고 고백을 한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정원을 가꾸는 사람이다. 정원이 하나인 사람도 있고 두 개인 사람도 있고 그 정원에 어떤 꽃과 나무가 피고 자라는 지도 모두 다르다. 누군가는 그 정원을 발견한 것만으로도 기쁘기도 하고, 모두에게 정원을 보이고 싶기도 하다. 그건 정말 사람마다 다 다른 것이다. 1년에 한 번, 자기 자신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위해 퀴퍼에 가는 팀장님을 보며 나를 떠올렸다. 겉으로 봤을 때는 그다지 티가 나지 않는다. 내가 어떤 정원을 가지고 있는지 그 정원에 어떤 유리 벽이 있는지 아무도 모르겠지만, 나는 나의 나만의 정원을 가꾸고 있고 거기에는 다른 사람은 드나들지 않는다. 예전에는 그게 두려웠지만 이제는 그만큼 두렵지는 않다. 그냥 이런 정원도 있구나 생각할 따름이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 전혀 다를 바 없는 정원, 가끔은 그 이유로 배제되겠지만 이야기 속 팀장님처럼 1년에 한 번 정도, 또 나를 아는 친구들 사이에서는 내 정원이 조금 다르기도 하며 사실은 같다는 걸 보여주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하게 된다.

다른 이야기도 마음에 와닿는 이야기가 많았지만 사실 나는 이 단편 하나만으로도 마음이 충만해지고 만다. 나와 비슷한 사람을 책 속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에 고양감을 느끼고 들뜨고 말았다. 들썩이는 마음에 다른 단편은 소개하지 못했지만, 이 단편 말고도 마음에 남는 단편은 많으니 꼭 읽어보셨으면 한다. '인생은 언제나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라는 어떻게 보면 절망이 느껴지는 제목도 실제로 책을 읽어보면 마냥 그렇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책 뒤표지의 '너무 환하지 않게, 너무 그늘지지 않게 삶을 제자리로 데려가는 아홉 편의 퀴어 소설'이라는 소개는 정말 적절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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