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난나 Jan 17. 2022

눈으로 먹어야 맛있다, 생강빵과 진저브레드

2020년 7월의 읽고 싶은 책 | 생강빵과 진저브레드 (김지현)

책속의 말

어렸을 때 세계 명작 소설이나 소녀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책 속에 등장하는 낯선 문물에 열광했다. 특히 음식 이야기는 언제나 나를 사로잡았다. 소설 속에서는 내가 한 번도 맛본 적 없고 만져본 적 없는 음식이 쏟아져 나왔다. 그것들이 무엇인지는 알 길이 없었다. (중략) 나는 결국 그 낯선 음식과 물건 들의 신비로운 이름을 입안에서 굴려보며 상상만 할 따름이었다. 근사한 맛, 냄새, 색채, 감촉, 소리. 그건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내 멋대로 만들어낸 환상일 뿐이었지만, 동시에 나만의 마법이기도 했다. 언제 어디서든 다른 세상으로 떠날 수 있고, 다른 사람으로 변신할 수 있는 마법 말이다. (p. 4-5)
마찬가지로, 맛있는 것을 가리키는 단어는 입 안에서 굴려보면 볼수록 좋은 맛이 나는 것 같고, 향긋한 것을 가리키는 단어는 활자에서도 향내가 나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런 단어들이 놓인 문장들을 보고 있으면 별 내용이 없어도 그냥 기분이 좋아진다. 마치 마법의 주문처럼. 
이를테면 이런 주문을 외워볼 수도 있다. "시나몬, 정향, 육두구, 코리앤더, 후추, 월계수, 사프란, 바닐라, 커민, 감송향, 머틀, 딜, 팔각, 소두구......" (p. 279)




이 책의 머리말을 읽자마자 나는 이 책을 사랑할 거라는 느낌이 왔다. 

책 속에 등장하는 낯선 이름의 음식에 열광했던 나는 시나몬, 정향, 육두구, 코리앤더 따위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마치 이 책의 작가처럼 주문을 외우듯 중얼거렸던 기억이 난다. 난생 처음 들어보는 이름의 음식은 부모님께 여쭤봐도 답이 나오지 않았고 그저 혼자 상상을 하며 즐거워했다. 그런 즐거움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생강빵과 진저브레드"는 어떻게 보면 동어 반복 같지만, 우리는 그 두 단어가 주는 느낌이 다르다는 걸 알고 있다. 저자야말로 이런 것을 골똘히 고심하는 번역가이니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 차이에서 오는 막연한 느낌을 구체적인 언어로 풀어 우리에게 전달해준다. 이 책의 목적은 그 음식이 어떤 음식인지 낱낱이 밝혀내는 것은 아니고, 우리가 어릴 적 향유한 문학에서 나온 신비로운 음식의 느낌을 함께 나누는 데 있는 듯 하다. 그래서인지 이 책을 읽다보면, 지금 우리가 육두구가 무엇인지, 시나몬이 무엇인지, -더는 그것이 낯선 향신료가 아니고 외국(주로 1세계지만)의 음식을 먹어본 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릴 적 내가 그 음식의 이름을 마주하고, 나의 상상만으로 만들어냈던 음식의 맛을 맛보는 것 같다.

커다랗게 빵과 수프, 주요리, 디저트와 그 밖의 음식들로 나눠진 챕터 아래 문학 작품에서 나왔던 음식을 하나둘 선보인다. 마치 실제로 플레이팅 되어있는 따뜻한 일러스트로 음식을 묘사해, 글로만 알았던 음식의 실제 모습을 처음으로 보기도 했다. 각 소제 마지막 부분에는 실제로 그 음식에 대한 객관적 정보도 담고 있어, 미처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는 재미도 쏠쏠하다. 하지만 그 어느 것보다 내가 처음으로 낯선 이름의 음식을 글로 접했을 때 감상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주는 책이라 그 점이 제일 좋았다. 

게다가 아이들의 생각은 대부분 비슷한가보다.이국적인 음식의 이름을 접했을 때 저자의 느낌과, 저자가 상상했던 어른의 모습이 너무 내가 상상했던 모습과 닮아있어 공감의 웃음을 터트리며 보았다. 어릴 적 모험 이야기에 가슴 떨리고, 그다지 중요한 부분은 아니지만 신기한 이름의 음식이 나오는 것에 설렜다면 좋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전부 답해 드립니다, 뉴욕도서관으로 온 엉뚱한 질문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