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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나 Jan 17. 2022

친구가 될 수 있을까, 나와 개의 시간

2020년 7월의 그림책 | 나와 개의 시간 (카예 블레그바드)


책을 읽다가 페이지 안에 끼어있던 신간 소개 팸플릿을 발견했다. 거기서 소개하는 "나와 개의 시간"은 새까만 표지에 개의 실루엣과 제목만 금박으로 된 아주 심플한 표지였다. 표지에서 그 어떤 정보도 얻을 수 없어 오히려 그 팸플릿을 펼치게 되었다. 팸플릿에 그려진 흑백으로 그려진 개의 그림, 블랙독은 우울을 상징한다고 했다. 그것에 흥미가 가서 도서관에서 빌려보게 되었다.

블랙독과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 라고 서두를 여는 이 책은 흑과 백 외에는 다른 색이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흑백 그림으로 표현한다. 블랙독에게는 표정이 있지만, 주인공으로 나오는 여자는 표정이 거의 없이 이집트 벽화 같은 표정 뿐이다. 단순한 선과 꽉 차지 않고 여백을 남긴 그림은 우울을 표현하기에는 건조해보인다. 작가가 의도한 게 바로 그것 같았다. 덤덤하게, 정말로 자신이 키우는 말썽쟁이 반려동물을 소개하듯 말이다. 지나치게 우울(블랙독)을 악마적으로 묘사하지 않았다. 개를 키우는 일이 일반적이듯, 우울과 함께 하는 것도 일반적인 일처럼.

블랙독이 우울을 상징한다는 건 이미 유구한 은유지만, 혹시 블랙독이 우울을 상징한다는 걸 모르고 이 책을 읽으면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다. 이럴 때 '안 본 뇌 삽니다'라고 하면 될까. 나는 블랙독이 우울을 상징한다는 것을 알고 읽기 시작했지만, 중간부터는 작가의 우울이 아닌, 나의 불안을 투영하며 읽게 되었다. 아마 각자 다른 것을 대입하여 볼 수 있을 거 같다. 자신의 가장 약한 부분, 그렇지만 죽을 때까지 함께 살아야 하는 것 말이다. 나의 경우에는 그게 불안이라, 많은 부분 공감하며 읽었다. 하지만 동시에 아리송한 부분도 있었다. 예를 들어 '블랙독은 믿을 만한 존재'라는 말이나, 그로 인해 '혼자가 아니'라고 느끼는 부분이었다. 이건 아마 내가 아직도 나의 불안을 미워하고 공존하고 싶지 않은 것으로 부정하고 있어서 그런 걸까, 혹시 나중에 나의 불안을 잘 다루게 된다면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의 희망이 생기기도 했다. 건조해보이는 그림과 덤덤한 묘사가 오히려 위로가 될 수도 있다. 이 검정이 더는 무섭게 느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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