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8월의 여성 작가의 책 | 붕대감기 (윤이형)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자기 삶에 무엇이 필요한지 잘 알지 못했다. 그것을 숙고하는 데 들일 시간과 집중력과 에너지가 없었다. 타인이 선택을 하고 먹기 좋게 만들어 입에 직접 떠 넣어줘야 소비를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화를 내다가, 무언가를 하니까 또다시 당신은 자격이 없다고 비난하는 건 연대가 아니야. 그건 그냥 미움이야. 가진 것이 다르고 서 있는 위치가 다르다고 해서 계속 밀어내고 비난하기만 하면 어떻게 다른 사람과 이어질 수 있어?
"붕대 감기"는 어떤 하나의 주인공 위주로 전개되는 책이 아니다. 처음에 나온 등장인물이 주인공이지 않을까 막연하게 추측했던 나는 곧 틀렸다는 걸 알았다. 해미가, 은정이, 지현이, 그 누구도 주인공이 아니면서 주인공이었다. 이 책이 고등학교 친구인 진경과 세연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건 맞지만, 마치 붕대를 둘둘 풀듯 여러 여성 등장인물이 등장한다. 남성은 배제하듯 여성만 오롯이 나오는데, 연령대는 젊은 층부터 노년층까지 다양하다. 그 다양한 인물들이 페미니즘이라는 하나의 결을 따라 얽히고 설킨다.
젊은 세대와 늙은 세대 간 갈등, 기혼과 비혼의 갈등, 탈코르셋에 대한 생각 차이 등 작가는 아주 첨예하면서도 가장 최신의 갈등을 다룬다. 나만 해도 학교를 다닐 때 머리는 귀밑 몇 cm여야 했고, 화장은 흔히 말하는 '노는 애들'이 주로 하는 거였다. 그런데 갑자기 수능을 치자마자 마치 진경과 세연이 그랬듯, 다들 화장을 배우러 다녔다. 나도 대학에 들어갔을 때 화장이라는 걸 처음 해보고, 머리도 꾸며보았다. 그런데 요즘 중, 고등학생들은 꾸미지 않으면 또래들에게 압박을 받는다니 그 몇 년 사이에 너무나도 많은 것이 빠르게 바뀌었다. 몇 년 전만 해도 '이렇게 입으면 기분이 조크든요'가 밈으로 유행했지만, 지금은 그 밈이 비판받는 경우가 더 많다.
페미니스트라고 해서 모두 생각이 같을 수는 없다. 같아서도 안 되지만. 그런데 가끔 나와 생각이 너무나도 다른 페미니스트를 보면 생각이 다른 차별주의자를 만날 때보다 실망하는 경우가 많은 듯 하다. 왜 페미니스트이면서 저렇게 생각을 할 수가 있어? 라는 억지스러운 생각이 들면서 말이다. 사실 사람마다 처한 환경이 다르고 상황이 다른데 어떻게 모두 같은 뜻을 품을 수 있을까. 설령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다르다는 걸 인정하는 수밖에는 없다. 이 소설에서도 분열과 갈등의 시대에 이것이 해결책이라고 선뜻 제시하지 않는다. 모두 싸우지 마세요, 하는 착한 메시지도 아니다. 그저 보여줄 뿐이다. 세상에는 이런 여성도 존재하고, 저런 여성도 존재한다고. 그리고 그 재현은 가끔 우리에게 큰 힘이 되기도 한다.
cf. 제목은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의 패러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