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난나 Jan 23. 2022

'뻔한 것'도 재밌을 수 있다, 여자 주인공만 모른다

2020년 8월의 읽고싶은 책 | 여자 주인공만 모른다 (듀나)

책속의 말

게다가 이들은 ‘진짜 남자 친구’보다 여러모로 더 좋습니다. 생각해보세요. 여러분의 ‘진짜 남자 친구’와 정말로 말이 통하기는 하는 건지. (게이 친구)
<스타트렉>의 외계인들은 다들 같은 달력을 쓰는 것 같습니다. ‘나는 29살이다’하면 모두가 알아들으니까요. 설마 그 외계인들 모두가 공전 주기가 365일인 행성에서 사는 건 아니겠죠? (날짜와 시간)
가장 좋은 건 이미 가지고 있는 배우와 캐릭터의 가능성을 가장 잘 살리는 길을 찾는 것이지 주인공에게 무조건 양푼 비빔밥을 먹이는 게 아닙니다. (망가지는 연기)
최근 들어 순전히 일 때문에 이런 설정의 이야기들을 연달아 읽어야 했고 전 그 때문에 화가 좀 나 있습니다. 도대체 이 사람들은 자기가 만들어낸 절세미인, 미소녀들이 불쌍하지도 않는 걸까요? 그 절세미인, 미소녀들에게 조금 나은 상대를 제공해줄 수는 없는 거예요? (매력 없는 남자 주인공에게 달려드는 여자들)




한때는 영화관을 가는 걸 제법 좋아했다. 집 근처에 영화관이 있기도 했고, 가끔은 멀리 있는 영화관까지 가서 상영횟수가 적은 영화도 보고 오곤 했다. 그러다보니 영화관 VIP가 되기도 했는데, 그것도 다 옛날 이야기가 된 것은 당연히 코로나 때문이다. 지난 겨울에 영화관을 간 이후로 영화관을 가질 않았다. 나는 그래도 내가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영화관에서 영화 보는 게 좋았던 건가보다.

영화관을 가는 걸 좋아한다 해도 난 옛날 옛적에 영화에 대한 교양 수업 하나 정도만 들은 적 있는, 씨네필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종종 영화 관련 팟캐스트도 즐겨 듣지만 고전 영화는 거의 본 게 없었다. 그래서 영화 클리셰 사전이라는 부제를 보고 내심 걱정했다. 영화의 ㅇ자도 모른다고 해도 좋을 내가 이 책을 읽어도 뭐 이해나 할 수 있을까? 결과부터 말하자면 나의 기우였다.

클리셰가 클리셰인 이유는 그만큼 많이 반복되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아무리 영화를 많이 보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클리셰를 하나도 접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 생각보다 영화는 많은 부분을 클리셰에 의존하거나, 클리셰의 변형이고, 완전히 새로운 것은 드물기 때문이다. 약 한 세기의 영화사에서 이미 시도될 것은 대부분 시도되었으며, 영화처럼 영상(드라마나 애니메이션도 포함해서) 뿐만 아니라 많은 책, 연극과 뮤지컬에서 시도되었던 것들이라 영화를 많이 안 봤다고 해서 이 클리셰가 낯설지는 않을 것이다.

이 책은 영화에서 자주 사용되는 약 90개의 클리셰를 소개한다. 보다보면 웃음이 터지는 경우도 많다. 특유의 시니컬한 '듀나체'가 지루한 클리셰를 통쾌하게 비판할 때 그 신랄함에 웃고 마는 것이다. 어쩐지 그 클리셰를 쓴 작품들의 감독이나 작가가 약간 안쓰러워지기도 한다. 내가 전혀 모르는 작품을 듀나는 예로 들지만, 그래도 크게 문제는 없다. 그 클리셰가 쓰인, 내가 아는 다른 작품을 떠올리면 되니까 말이다. 아, 그런데 나는 클리셰를 그렇게 싫어하지 않는다. 이게 뭐야, 뻔해~ 하면서도 익숙한 데서 오는 안정감도 있는 법이다.

작가의 이전글 어느 하나로 정의하고 싶지 않은 소설, 돌이킬 수 있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